좋은 수필
김태길 (1920-2009)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외가 사랑방에는 바둑판이 있었다. 어른들이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구경하다가 동무들과 장난 바둑을 두기도 하여 바둑의 초보적 기초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 그러다가 말았을 뿐, 바둑에 몰두한 적은 없다.
교수 생활을 하게 된 뒤에도 동료들이 바둑 두는 것을 옆에서 관전한 적은 더러 있다. 그럴 때면 "김 선생의 바둑은 몇 급이요?" 하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언젠가 '문리대 교수 친선 바둑 대회'에 9급으로 나갔다가 1회전에서 나가떨어진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바둑이나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기사(棋士)'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기사'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원이 인정하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치열한 수업과 경쟁을 견디어 낸 사람만이 '기사'로서 인정을 받는다.
'수필가'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수필 쓰는 일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수필을 좀 쓴다고 아무나 '수필가'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 수필 전문지가 10여 개나 있어서 수필가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수필계의 현실이다. 본래는 선비를 연상케 했던 '수필가'라는 이름이 구정물을 뒤집어쓴 듯 초라하게 되었다.
등단패나 신인 상장을 벽에 걸어 놓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필쓰기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작품으로써 말해 주어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급선무다.
수필은 자화상(自畵像)의 성격이 강한 문학의 한 분야다. 화가들이 선과 색채로써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데 비하여 수필가는 글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주로 그린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음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음의 세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몇 가지 예를 드는 것으로 대신함이 좋을 듯하다.
수채화처럼 맑은 사람, 속기(俗氣)가 적은 사람은 수필쓰기와 인연을 맺기에 적합하다. 동심(童心)을 잃지 않고 때가 덜 묻은 사람은 수필쓰기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강한 선비 정신을 가진 사람, 불의(不義)를 보면 분노하기도 하는 지사(志士)도 수필쓰기에 적합한 인품이다. 마음이 털털하여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을 쓰는 사람보다도 빳빳한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의 글이 상품(上品)이다.
마음이 정직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진솔하게 그린 수필에 대하여 독자는 감명을 느낀다. 이미 도통하여 세속을 완전히 초월한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자주 쓰는 필자에 대하여, 존경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어린 독자의 편지에 애착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다.
유머 감각이 풍부한 것도 수필쓰기에 천부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의 한 조건이다. 독자로 하여금 혼자서 미소짓게 하는 따뜻하고 재치 있는 대목은 수필을 빛나게 하는 보석과도 같다. 그러나 억지로 웃기고자 하는 꾸밈은 유머가 아니다. 악의가 바탕에 깔린 익살도 유머가 아니다. 유머의 웃음은 남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유머의 웃음은 속이 따뜻하다. 유머의 대가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퇴계(退溪)를 자랑으로 여기고,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를 꼽는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해서 남다른 지식 또는 경험을 쌓은 사람들은 남이 흉내내기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자신의 전문 분야의 지식 또는 체험을 십분 살리는 것은 좋은 수필쓰기에 유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과시한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학적 태도는 애써 피해야 할 어리석음이다.
시심(詩心)이 풍부한 사람도 수필쓰기에 유리한 고지로 접근한 사람이다. 다만 산문에서는 의미의 전달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너무 난해한 글은 경계함이 좋을 것이다.
수필은 마음의 세계를 그리는 자화상에 가깝다는 전통적 견해를 따라서,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음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함이 긴요하다는 말을 적었다. 우선 그려질 대상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야 좋은 그림이 그려지기 쉽다는 상식을 따른 것이다.
비록 작가의 정신세계가 탁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타내는 글솜씨가 서투르면 좋은 수필의 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문학성을 존중하는 수필에 있어서 문장력의 연마가 중요하다는 것은 오랜 상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등단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글을 대부분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내가 읽어 본 범위 안에서는 그들의 문장력은 대체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문장력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수필 가운데도 작품 전체의 구성(構成)이 엉성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적지 않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는 말도 있으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구도(構圖)를 미리 생각하듯, 수필을 쓰는 사람도 짜임새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염두에 두고 글의 전체 모양을 미리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 구성 요령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며, 글의 짜임새가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여러 작품을 시도하는 가운데 자연히 자신에게 맞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품을 구성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타당한 조언(助言)이 하나 있다. 작품의 소재(素材)에 관해서 자기가 아는 바를 모두 기록하려고 들지 말고, 중요한 부분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다. 가지[枝]와 잎[葉]을 모두 그리려고 하면 말이 많아지고 독자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 나오기 쉽다. 수필로서의 글은 함축성이 많은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끝으로, 사족(蛇足)이 될지도 모르지만, 수필을 쓰는 데 장애가 되기 쉬운 마음가짐 또는 태도에 대하여 몇 마디 첨가할까 한다.
냉소적 태도, 꼬이고 뒤틀린 마음가짐은 수필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쉽다. 따뜻한 마음가짐이 수필쓰기에 적합한 성격이다.
자기가 마치 겨레의 큰 스승이라도 된 것처럼 훈계조로 나오는 태도는 좋은 수필에 적합하지 않다. 차라리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로 겸손함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는 듯한 자세도 삼가는 편이 바람직하다. 남편 자랑, 아내 자랑, 자식 자랑 그런 것들은 수필의 소재로서 적합하지 않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 남에 대한 배려에 인색한 사람도 좋은 수필을 쓰기에 적합한 인품이 아니다. 좋은 수필은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분노·증오·질투 따위의 격정으로 흥분한 심리 상태는 수필을 쓰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다. 흥분이 일단 가라앉은 다음에,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붓을 드는 것이 상책이다.
*김태길
충북 중원 출생. 일본 도쿄 대학 법학부, 서울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수필가
저서: '웃는 갈대',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 마음 흰 마음', '흐르지 않는 세월' 등.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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