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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제 밤 열시 넘어 무렵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열 두시 전에 잠들었는데,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네요.
며칠 전부터 제주도에 와 있는데, 오랜만에 여행을 오니
과거에 다녔던 여행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번역 프리랜스의 큰 잇점 중 하나는,
전세계 어디서든 컴퓨터와 인터넷, 전화만 있으면
일하는 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는 겁니다.
2014년에는 그 잇점을 십분 활용하여
되도록 국내외 많은 곳을 여행해 볼 생각입니다.
1월 11일에 서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목포로 이동했는데,
총 소요시간은 약 3시간 15분 정도였습니다.
무궁화호는 220V 전원 콘센트가 있는 객실도 있고 없는 객실도 있습니다.
있는 경우, 객실의 맨 앞 좌석과 맨 뒷좌석에 있는데,
이 경우, 조금 흔들리기는 하지만,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포로 올 때 탔던 무궁화호에는 전원 콘센트가 없었습니다.
밀려 있던 번역 일이 있었던 까닭에,
목포로 내려가던 그 열차 안에서도 일을 해야 했는데
배터리 전원에 의존해, 이동 시간 3시간 15분 중,
2시간 정도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덜컹대는 완행 열차에 몸을 맡기고
목포로 가는 길자락들, 남도의 겨울 풍경을 즐겼습니다.
목포에서는, 제가 알기로는 목포에서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 '목포 1935'에 머물렀습니다.
그 앞에 게스트하우스 운영주가 운영하는 까페 '봄'이 있는데,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일을 하다가
다섯시 쯤 해가 많이 낮아졌을 때,
유달산에 오르기 위해 밖으로 나섰습니다.
기온이 이미 영하였던지라 싸늘했는데,
산을 오르다보니 금새 땀이 났습니다.
목도리를 풀고 자켓 앞 지퍼를 열었는데,
산 오르기를 잠시만 멈춰도 금방 추워졌기 때문에
목도리를 두르고 풀기를 반복해야 했네요.
유달산에는 등산로를 따라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해가 저문 뒤에도 오르고 내리는 것이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추운 탓도 있어서인지 그 시간에 오르는 이는
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산을 싫어하기 때문에 일부러 늦은 시간에 오르기도 했고,
야경을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대전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아침 계족산 정상까지 오릅니다.
중간에 팔굽혀펴기를 하는 시간까지 합쳐서 왕복시간은 약 80분입니다.
그리고, 사무실 빌려 쓰는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합니다.
자전거는 운동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실용적인 면에서 애용합니다.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자전거를 타면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많아서 25분 전후,
돌아오는 길은 대략 30분 전후가 걸립니다.
번역일을 하건, 글을 쓰건 모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다 보니
특별히 신경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수영이나 달리기, 등산, 자전거 타기 등 꾸준한 운동으로
스스로가 건강하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확인해 왔습니다.
내몽고에서 5년간 살았을 때는, 영하 20도 속에서도
시내 북쪽에 있던 징기스칸 대로를 약 7킬로미터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전날 밤에 빼갈에 쩔어 잠들었다가 여전히 취한 채로 눈을 뜬 아침에도
달리다보면, 알딸딸한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기도 했더랬습니다.
꾸준한 운동은, 혼자서 떠나는 여행에도 도움이 됩니다.
적은 예산으로 비교적 긴 여행을 할 때는, 여정에 무리가 있기 쉽고,
체력이 약하면 그걸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달산에서 내려와 숙소 쪽을 향해 걷다 보니 시장이 있고
'우정식당'이란 백반집이 있었습니다.
이 집 백반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잎새 소주(옛 '보해' 소주)도 한 잔 했습니다.
돼지고기 수육은 원래 백반에 없는 레파토리인 듯 했는데,
옆에 회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주머니가 특별히 서비스해 주셨습니다
국은 매생이 굴국...... 요즘 매생이가 유행하던데
어릴 적에 바닷가에 살 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음식이 비교적 짜지 않아서, 김치 빼고 거의 모든 음식을 뚝딱 해치웠더니
"워메... 이 아자씨 반찬을 다 묵어뿔네..."
아줌마가 놀라네요
게스트하우스 '목포 1935'의 까페 '봄'은
그 날 저녁 새해맞이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헤매는 바람에 콘서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도착했습니다
현악기와 피아노로 구성된 실내악 연주였는데, 연주자들의 호흡이 잘 맞아 흥겨운 연주였습니다.
사람들은 홀 테이블에 앉아 차나 맥주를 마시며 연주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과 몇몇 사람들은 회식을 벌였고
저는 한 구석에 앉아서 마저 다 처리하지 못한 번역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의 어느 중견 기업 현지 법인의 미디어 평판에 대한 월례 보고서로
중국어 ppt 화일을 똑같은 포맷의 일본어 버전으로 번역하는 건이었습니다.
화일이 복잡한 수식이나 편집 방식을 취하고 있지 않는 한,
ppt와 액셀 화일을 번역하는 데는 트라도스가 대단히 유용합니다.
트라도스는 기술번역사에게 필수입니다. 저는 논문을 번역할 때도 트라도스를 씁니다.
문장을 하나씩 끊어서 위에 보여주고, 그 밑에는 번역문을 넣는 빈 박스가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숫자와 부호 제외, 중국어만 5000여자, 번역료는 약 650RMB, 곧 1000자 당 130RMB, 소요 시간 약 4.5시간)
그 날 밤 4인실 도미토리에는 저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고, 그 중 25세 서울 청년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여행 중이라는데, 일주일 정도 왼쪽에서부터 U자형으로 목포와 해남, 부산, 울산 등을 여행할 거라고 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하긴, 직장이 있다면 일주일이나 여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다음날 12일 아침 8시, 목포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목포 1935'에서 준비해 준 빵과 바나나, 우유를 먹었습니다.
제주도까지 항해 시간은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라고 했고, 그 시간도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날과 같은 일이 아니라, 작년 9월에 마카오에서 열렸던 한국 불교 문화재에 관한 심포지움의 중한 번역문을 감수 및 수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중국어 약 2만자(감수는 1000자 당 65RMB지만, 이번 건은 워낙 엉망이어서 아예 번역료로 계산해 주기로 했습니다.
제주로 가는 배에서 온돌방 객실에 벽에 기대고 앉아서 작업을 하다가, 허리와 다리가 뻐근하면 잠시 선실 위나 옆으로 나가서 목포 앞바다 다도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제주도에서 가까운 추자도를 보기도 하면서,
또 눈이 피곤할 때는 그 자리에 널부러져 누워 눈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배로 하는 여행은 지루할 때가 있는데, 일하기에는 딱 좋습니다.
인터넷이 없으니, 검색이 많이 필요한 작업은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 사전을 번역사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신다는 번역사님은, 구글 번역기 번역문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어 번역이나 관용 표현 확인 등에 사용하신다는 걸 겁니다.
구글 번역기의 인터페이스는 그 어떤 인터넷 사전보다도 편리하고 빠릅니다.
더군다나, 저처럼 다국어 번역을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대단히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 사전, 저 사전 뒤적거리거나, 인터넷 창 여러 개 열어놓고 검색해야 되는 것을, 구글 번역기는 심플한 화면 하나로 다 처리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의 중국어 사전은 제가 아는 한, 한국 내 사전 중 최고입니다.
물론, 중국어는 중국 사회의 급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여, 엄청나게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단어가 홍수처럼 넘쳐나기 때문에 사전이 그 변화를 그때그때 반영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쓰여져 온 중국어 단어나 관용어 등을 네이버 사전은 대부분 커버해 줍니다.
참고로, 더 사전 이야기를 하자면, 영어의 경우는 구글 검색 자체가 거대한 코퍼스 역할을 해 줍니다.
검색 방법을 실수하지 않는 한, 구글 영어 검색을 이용하면 거의 대부분의 난독 문장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로 그 의미를 풀어내기 어려운 영어 표현이 있고,
해당 문장의 핵심 단어의 의미를 구글 검색에서 '영한, '영일, '영중', '영불'까지 다 검색하며 해결을 위해 유추 및 접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아무리 뛰어난 전문 번역사라도, 원어민이 아닌 이상 대부분 이런 경험을 자주 할 겁니다)
말그대로 '머리가 뽀개지는' 경험이죠. 분통함과 답답함, 좌절감을 동시에 혹은 순서대로 반복해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포기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익합니다.
왜냐면, 위와 같은 문제들은 그 당시에는 설사 해결하지 못 했다고 해도, 계속해서 번역일을 해 가는 과정에서,
어느날 갑자기 우연찮게 풀리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영어(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 혹은 노력에 의해 영어의 그 특성이나 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
그 특성이나 용법이 과거에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머리가 뽀개지도록 애써서도
못 풀어냈던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쓰라린 고통을 느꼈던 내 머리가 그 해답을 드디어 찾아냈을 때, 그 상처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번역사로서, 한 걸음 더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번역사라고 소개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한 최고 고수가 아닌 이상,
환골탈태하는, 혹은 골이 빠개지다가 치유되는 위와 같은 과정을 수년, 수십 년간 반복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열매가 달다는 것만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 열매란... 높은 언어 실력과 번역사로서의 명성(쉽게 말해, 번역회사와 고객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높은 수입입니다.
그리고, 번역사의 성장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번역사라는 직업이 가진 지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루는 언어에 있어 나는 정말 실력이 강하다고 자부한다. 내 한국어 실력도 최고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입니다.
자신은 이미 출중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보다도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살맛 날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위에 적은 골 빠개지는 경험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덤으로 치매 걸릴 일도 없습니다. 2개 언어 구사자들은 단일 언어 구사자들에 비해 치매 걸릴 확률이 2분의 1로 줄어든답니다.)
물론, 업무의 난이도를 생각할 때, 수입이 비교적 적고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실력과 조건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전업 번역사로 일하려 한다면, 위험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2일 오후 1시 30분 제주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예약해 둔 '휴먼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어디 나가지 않고, 밀린 일(감수건 이외에도 하나 더 중한 게임 번역 1만자 의뢰를 그 전날 접수했습니다.)을 하면서, 도미토리 룸 옆 침대에서 쉬고 있던 25세 청년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습니다.
이 젊은 친구는 25세,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고, 알바로 번 돈으로 여행 중이며,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가 있고, 장래의 꿈은 영화 제작자가 되는 것이랍니다.
연구 조사가 직업 중 하나다 보니, 몇 마디의 대화로 이런 정보들을 금방 습관적으로 확보해 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더 이어진 대화를 통해 이 친구에게서, 'CJ엔터테인먼트'를 능가하는, 흥행회사 책임 제작자가 되겠다는 구두계약까지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일하다가 놀다가 하면서, 저녁 무렵이 되어 제주시 연동 번화가 거리를 어슬렁댔습니다.
여기저기 중국어로 말하는 관광객들이 있고, 호객하는 사람들도 중국 사람이 많았습니다.
'홍빠'라는 스시집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찾아갔더니, '홍빠'는 없고, 고기뷔페집 '셀빠'가 있었습니다.
종업원에게 '홍빠'는 어디냐고 물으니, '홍빠'는 망했고, '셀빠'가 그 뒤에 입점했다고 합니다.
들어갔는데 나가는 게 좀 뭣해서 원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고기뷔페에서 배만 불룩해져 나왔습니다.
연동 거리를 다시 어슬렁대면서 해산물 식당 수조에 있는 엄청나게 큰 대게를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도미토리룸 이웃 침대 사람들하고 잡담을 나누다가, 잠들 무렵 '번역 사랑'을 들어가 게시판글을 몇 개 읽고 뭔가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져서 자판을 두들겨 댔더니 어느샌가 새벽 한시 반... 서둘러 잠을 청했습니다.
1월 13일 아침, 눈을 뜨니... 중국 시간 9시, 곧 한국 시간 10시까지 감수 화일을 납품해야 하는데...
아무리 스피드를 내려 해도, 책자로 출판할 예정인 건인 만큼 더 꼼꼼히 작업해야 해서, 아무래도 납품시간을 못 맞출 듯했습니다.
QQ(중국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메신저)에 담당 PM이 로그인하기를 기다려 납품시간을 늦춰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다행히 2시간 연장 받아서, 부지런히 감수해서 납품했습니다.
이제 급한 불은 껐지만, 1만 단어 게임 번역...저한테 게임 번역은 골치 아픕니다.
게임을 좋아하긴 해도 오랜 세월 거의 안 하고 살아 와서,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합니다.
실은, 얼마전에는 앞으로 게임 번역이 많아질 것이 분명해 보여서,'그라나다 에스타다'인가 뭔가 하는 게임을, 공부삼아서 시작해 봤는데, 길 헤매고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처음 몇 번 해 본 뒤, 다시 로그인 한 일이 없네요.
장담할 수 있는데, 게임은 번역계에서도 그 비중이 계속 커질 겁니다.
특히, 비교적 젊은 분들은 번역일을 위해서라도 게임에 친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회사에서는, 제 나이를 보면서 게임 번역을 하는 걸 신기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아무튼, 제주도는 제주도고 일은 일이니, 13일은 온종일 거의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일만 했습니다.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1만 단어가 넘으니 제 평균 속도로 하루만에 간신히 끝낼 수 있을까 말까는 분량이었습니다.
결국 어제 14일 한국 시간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습니다.
액셀화일을 트라도스로 작업했고, 번역에 걸린 시간은 약 10시간, 번역료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한국어 1000자 당(공백 포함) 40RMB입니다.
이 번역료는 5년 넘게 오르지 않고 있는데, 위의 중국어 1000자 당 130RMB는 작년 9월까지 100RMB이던 것을, 회사와의 협상을 통해 30퍼센트 인상하게 된 결과입니다.
위에 적은 3건 모두 중국의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의뢰 받았으며, 번역료도 제각기 다릅니다.
번역되어 나온 한국어 1000자 당 40RMB는 상당히 싼 번역료이지만,제게 처음으로 번역을 맡겼던 중국 회사이며, 제가 북경에 갈 때는 그 사장님 댁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이고, 따라서 돈보다 의리를 중시하여 싼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사와 처음 거래할 때, 중국어 1000자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반나절 이상 걸렸었습니다.
반나절에 만원도 못 버는 작업을 계속 접수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만큼 중국어 실력이 모자랐고, 그만큼 머리 뽀개질 것 같은 때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납기는 늘 '가능한 한 빨리'... 피말리는 조건이죠.
하지만, 중국어가 번역사로서의 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루어 짐작했을 때,
머리 좀 아프다고 돈 안 된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많이 머리 아팠던 만큼, 제 중국어 실력은 계속 성장했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중국의 다른 회사들과 직접 연락하여 테스트를 받고,
번역료를 협상하여 훨씬 높은 번역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저 낮은 가격의 번역회사와는 아무리 번역료가 싸도 계속 거래할 생각입니다.
중국어와 관련해서는 제게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기 때문입니다.
3건의 번역 작업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제주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심리상의 제주도 도착은 14일이라고 해야겠네요.
어딜 가듯 그렇듯 재래 시장에 가 보고 싶어서, 제주시 동문 시장에 가 봤습니다.
생선 대가리 보는 걸 좋아하는데, 배가 갈라진 채 대가리도 둘로 쪼개진 것들이 많아서 별로 재미없었습니다.
생물 고등어도 없어서, 아... 비슷한 게 있긴 있었는데 해동한 노르웨이산이라서 안 사고,
롯데마트에 가서 생물 고등어를 사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13일에 숙소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운동 삼아 근처에 있는 롯데마트에 가서 장을 봐 왔네요.
전날 밤에 먹은 고기뷔페 때문에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에, 저녁에는 밥을 지어 먹기로 했던 겁니다.
소박하지만, 맛있었습니다.
컵 안에 든 건, 실은 녹차가 아니라 소주입니다. 소주 먹는 것처럼 안 보이고 싶어서...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대략 하루 평균 5-6시간을 일했고, 총 수입은 대략 4000RMB였는데,
짭짤한 수입을 여행 중에 올렸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쪽 업체들에게서는 아주 작은 건들 말고는, 보름 이상 번역 의뢰가 없네요.
그래도 수십만원 쯤 되는 건들이 이제부터라도 몇 건은 들어와 줬으면 하는데,
한국쪽은 1, 2, 3 월이 확실히 번역 비수기인 것 같기는 합니다.
내일은 혼자서 한라산에 오를 생각입니다.
아침은 안 먹고, 주먹밥을 도시락으로 싸서 가져갈 겁니다.
지금 비가 오는데, 한라산에는 눈이 내릴테고, 안그래도 많이 쌓인 눈이 내일은 더 두터워지겠죠.
모레는 숙소를 서귀포로 옮기게 됩니다.
제주도도 관광 비수기라서 여러모로 다른 계절보다 싸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ppt 번역을 의뢰했던 회사의 PM한테서 연락이 와서, 고객이 번역문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한다고 피드백을 줬습니다.
해당 PM한테서는 처음 의뢰를 받은 건데, 좋은 인상을 준 듯해서, 그리고 고객이 만족해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왕관을 쓰신 '번역 사랑'의 어떤 분이, 번역사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자는 캣치프레이즈로 채팅룸을 만들기도 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하던데, 실은 이 글은 그 요청에 대한 제 개인적인 회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분은 제가 예전에 쓴 글이 너무 길다는 지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사의 지식이나 경험이라는 게 짧게 정리될 수 있는 거라면 짧게 쓰겠지만, 제게는 짧은 글로 그 주제를 다루라는 건, '미션임파서블'입니다.
스피드 면에서, 영어, 중국어, 일어 번역 모두 저는 가장 빠른 편에 속합니다.
번역회사에서 급한 건이 있으면 우선 저를 찾기도 합니다.
품질에 있어서도 자신이 있고, 실제로 번역회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어떤 회사들은 제게 번역사 평가 업무를 의뢰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피드는 번역사 경력이 쌓일수록 놀랍게도 계속 더 빨라지네요.
번역사로서의 성장은 늙고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해지고 날카로워지며 날쌔지는 것입니다.
수입이 적다는 건, 어찌보면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번역 단가가 싸기는 하지만, 노동 시간 대비 수입을 고려하면 결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피드가 느린 것은 번역사의 자질 문제입니다.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수입이 적은 경우, 낮은 번역료를 탓하기 보다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의 번역 스피드를 단축시키거나, 다른 일을 찾아 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번역 회사가 새로운 번역사에게 연락할 때는 급한 건일 경우가 많습니다.
빠른 스피드가 없으면, 번역 업무를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위와 같기 때문에, 번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문 번역사 수준의 스피드가 없으면 늘 수입이 적고 일은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늘 골이 빠개지는 느낌으로 겨우겨우 번역건을 처리하고 의뢰 받는 일도 적어서 걱정이 많다는 신세한탄만 이어지는 겁니다.
번역사의 삶이 쪼들리고 힘들다면서...
실은 번역사의 삶이 그런 게 아니라, 실력이 모자라는 번역사의 삶이 그럴 겁니다.
그리고, 늦게 번역계에 뛰어드는 사람이라면(저의 경우처럼),
되도록 여러 언어를 겸비하고 있어야 번역일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제가 번역회사와 처음으로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일 번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회사들과 거래를 틀 수 있었던 것도, 다국어 번역이 가능해서였습니다.
언어 하나를 제대로 번역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복수의 외국어를 공부하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당장에 그런 성취를 이뤄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내다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번 글에도 적었지만, 제가 번역에 투자하는 노동시간은 일반 직장인들의 노동시간에 비하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수입을 더 원한다면, 번역 일을 조금 더 늘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방법은, 한중일과 기타 여러 나라의 번역회사에 이력서를 돌려서 테스트를 받아 합격하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번역일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더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시간을 더 확보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일하는 시간은 지금 정도로 하고, 수입을 늘리려면 번역 요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미 거래 중인 회사는 올려 줄 생각을 안 하겠죠.
하지만, 실력 있는 번역사들이 모여서 조합을 만들어서 회사처럼 영업을 뛰고, 공정하게 수익을 나누면, 같은 시간만 일해도 수입은 많이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 전문번역사 협동조합'이라는 조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면, 번역사도 '갑'이 될 수 있습니다.
2013년에 번역에 좀 더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느 그저 그런 기술 번역사(기술 관련 번역은 실제로 적은 편입니다만)의 짧은 경험과 지식의 일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글이 그 왕관 쓰신 분을 포함해 한국의 번역사와 번역 업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새벽 네시에 눈이 뜨여, 다시 잠을 청해도 보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5시 30분부터 이 글을 썼습니다.
중간 중간 차와 커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이 글을 쓰는 데 소요된 시간은 대략 3시간 50분입니다.
이제 졸리네요.
여행하면서 일할 수도 있는 번역사라는 직업, 필요한 자질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우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래는 어제 찍은 제주도 사진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언젠가 효율적인 신체 단련법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게 바로 프리랜서의 장점이죠. 다들 너무 불평만 하지 맙시다. 좋은 점이 더 많으니....
부럽네요.
오랜만에 좋은글 감사합니다. (Thank you so much. This cafe really needed one lately!) 자세하게 적으셔서 얼추 거의 읽는 사람들이 마치 여행을 직접 한것 같네요.
글을 쓴 분의 경험과 생각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서 읽고 나서 뿌듯하고 글쓴이께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욕심이긴 합니다만 이런 글들이 카페에 더 많이 올라오기를 바래 봅니다.
제주도 여행 9일째인데, 정리해서 적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續 여행"을 써서 여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중국 게임번역을 주로 하는데, 번역에 상관없는 기호들을 태그로 묶어주는 기능이 있어 많이 도움이 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네. 아마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 중국 게임 업체의 업계 점유율은 이미 세계 시장 절반 이상이고, 갈수록 그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니, 중국어 게임 번역사의 앞날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히 중국 번역 업체에 이력서를 돌리실 것을 어드바이스하고 싶습니다.
수필 같네요. 번역사의 로망~
멋지게 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