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와 꼽등이
언젠가 비가 많이도 내리던 그해엔
꼽등이가 참 많았어
시골 헛간이나 습한 동굴의 어둠 속에서나 살던
꼽등이들이
아파트 주차장에 흘러들었지
흐르는 주차장의 어둠을 따라
아파트 베란다에 뛰어오르고
더러는 열린 창문을 뛰어넘어
싱크대 아래에 몸을 적시기도 하고
침대 밑으로 흐르는 빗물로
건조해가는 몸집에 물을 끼얹기도 했지
꼽등이를 처음 보는 우리들은
귀뚜라미처럼 귀엽게 보다가
바퀴벌레처럼 더러운 것은 아닐까 의심하다가
보았어
인터넷을 타고 몸집을 불려가는 연가시의 전설
꼽등이는 2센티미터도 못되는 작은 몸속에
30센티미터가 넘는 연가시를 품고
연가시는 가늘고 긴 몸을 내장처럼 둘둘 말아
꼽등이의 뱃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괴담을
연가시는 숙주인 꼽등이의 생식기능을 없앤대
그것도 모자라
꼽등이의 몸통을 가득 채우고
끝내는 숙주의 몸통을 터뜨리고 세상에 나온다지
그 연가시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면?
수 미터까지 자라 우리 몸속을 가득 채우거나
우리 뇌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가시에 지배되는 거야
살인기생충, 자신도 죽고 숙주도 죽이는
자살기생충
우리들은 베란다에 튀어오르는 곱등이에 기겁하고
어두운 주차장에서 꼽등이 퇴치에
긴 밤들을 보내야 했지
그해 비는 정초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내리고
꼽등이들도 줄기차게 도시의 어둠 속을 번식해갔어
숙주가 번식하면 기생충도 개체수도 늘어나는 법
꼽등이들이 가득한 도시
수 많은 꼽등이 몸속에서 번져가는 무리진 연가시떼
그런데 우리는 몰라
꼽등이의 몸속에서
숙주가 죽지 않길 바라는 연가시의 두려움
내 몸은 자꾸 커져만 가는데
내 몸이 크면 꼽등이가 죽고 나도 죽어야 하는데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내 몸이 크지 않기를 바라며
실낱같이 다이어트하는 연가시의 고통
끝내 엄마같은 꼽등이의 몸을 다 채우고 함께 폭발해버려야 하는
연가시의 길고도 긴 눈물 방울
첫댓글 나두 힘들고 너두 힘들고....
세상 사는 일이란 게..관계란 게 참 힘들유..ㅠ
어쩐지 무시무시하고 징그럽다는 느낌의 연가시와 꼽등이 둘다 생소한 이름이네요. 인터넷으로라도 찾아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