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7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마태복음 일장 3절 말씀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꽃이 피다'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 이야기를 드립니다.
6절: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아멘
경기도 일산이 한창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할 무렵, 일산에 처음으로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 근처에 이상하게 생긴 산이 있었습니다. 산이 높기는 하였으나 산의 모양이 직사각형으로 생긴 것이 보통의 산 모양과는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산이 아니라 서울의 쓰레기를 오랫동안 매립하여 쌓인 것인데 거기에 풀이 자라면서 산처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훗날 알고 보니 그곳이 바로 난지도라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난지도에는 월드컵 경기장이 세워져있습니다. 그리고 달리고 싶고 날고만 싶어지는 큰 공원인 하늘공원과 평화의 공원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강변에는 '난지한강공원'과 '난지천공원' 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4개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그곳에 만들어져있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으면, 그 공원 위를 거닐면서도 그곳이 파리가 날고 악취가 풍겼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난지도 같은 사람을, 세계적인 경기를 치렀던 월드컵 경기장 같은 사람으로 그리고 이름도 아름다운 하늘 공원이나 평화의 공원 같은 사람으로 만드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이십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다윗은 한때는 난지도처럼 쓰레기 매립장 같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 의하여 함께 쓰레기 더미에 빠졌던 여자는 밧세바였습니다. 예수님의 계보에는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아의 아내라 말씀함으로 부끄러운 다윗의 환부를 감추어 주시지 않고 나타내셨으며 또한 밧세바의 부끄러운 치부를 감추지 않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자에 대해 알아보게 했습니다. 알아보고 보고 하기를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입니다." 하고 알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하였으며 그 여인과 함께 잤으며 그 여인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여인은 다윗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전쟁터에 있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보내라고 요압 장군에게 전통을 보냈습니다. 요압은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다윗은 마치 일선의 상황이 궁금하여 우리아를 부른 것처럼 일선의 상황을 이것저것 물은 후에 "네 집으로 내려가 목욕하고 쉬어라" 하고는 왕궁의 음식까지 그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궁 문 앞에서 자기 주인의 부하들과 함께 잤습니다.
다윗은 우리아가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아에게 "네가 먼 길을 오지 않았느냐? 왜 집으로 가지 않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리아가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 있고 내 상관이신 요압과 내 주의 군사들은 들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혼자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아내와 함께 누울 수 있었겠습니까?" 하고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에게 "여기 하루 더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일 너를 보내겠다."라고 말했으나 우리아는 그날도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기어이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려고 우리아를 초청해 자신과 함께 먹고 마시며 취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도 우리아는 자기 주인의 부하들 사이에서 자고 자기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오게 하였으며 아무리 구슬려도 밧세바 즉 그의 아내가 있는 집에 잠을 자려 가지 않자 다윗은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려고 궤계를 꾸몄습니다. 이튿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쥐여 주면서 요압 장군에게 전해라 하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아를 싸움이 가장 치열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라 그렇게 하여 그가 맞아 죽게 하여라." 하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윗의 계략은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는 전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습니까? 남의 아내를 범한 것도 죄지만 악랄하다 할 정도로 아무 죄도 없었던 우리아를 죽게 하였으니 다윗의 죄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으며, 나라와 왕과 상관과 전우들을 매우 사랑했던 충성스러운 군인 중에 군인이었습니다. 이런 우리아는 억울하게 죽고..., 다윗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올라가있으니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도록 하실 분이 아니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하신 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듯이..., 육이오전쟁 때에 전사한 군인들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아니듯이 우리아의 죽음은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보 속에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이름이 올라있는 것도 놀랍지만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며 솔로몬의 이름이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있다는 것 역시도 놀랍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같은 이런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 많았을지라도 우리아의 아내를 체포해 오다시피 궁으로 데려와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그 일을 덮으려고 간악한 꾀를 썼던 것이며 그 꾀가 통하지 않자 결국에는 악한 계략을 썼어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윗은 참으로 악랄하고도 비열한 죄인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우리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다윗의 계보에서 오시고 우리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이라는 것 때문에 좌절과 절망을 해서도 결코 안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던 것 아닙니까? 숨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성경에서는 다윗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라는 꼬리표를 달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꼬리표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해 보면서 감사합시다. 나에게도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습니다. 꼬리표는 떼라고 있습니다. 목적지에 당도하면 떼는 것이 꼬리표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예수님이 떼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좌절과 절망 속에서 벗어나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쓰레기 더미 속에 꽃을 심으시며 열매를 거두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며 창조의 주님이십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려고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구원받은 감격과 감사 속에서 살면서 몸과 마음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기를 기도하오니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