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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 주변 명소
일시:2023년 5월 1일 월요일
장소:충주 탄금대.탄금공원.라바랜드.능암늪지대생태공원
* 충주 탄금대 입구
탄금대에 드러어서니 탄금대 안내문과 우륵유적비 넓은 무대 등이 있다. 이곳이 원래는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이다. 기암절벽과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좋다. 탄금대는 2008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충주 땅에서 머물며 가야금을 연주했다. 가야금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는데, 그때 탄금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우륵은 가야국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을 뽑아 보내 음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즉 탄금대 마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무장 신립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탄금대 전투를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탄금대는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다. 역사적인 곳에 탐방 온 것이 참으로 흐뭇하다. 이제 자세히 둘러보며 바우고 갈 것이다.
* 충주 탄금대 사연 노래비
탄금대 입구에 탄금대 사연 노래비가 있다 주현미 노래를 비석으로 제작해 놓았다. 가사도 새겨 놓았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가고 물새만이 슬피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 진 남한강에 임 부르는 탄금 아가씨
* 충주 탄금대 충혼탑
충북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한국전쟁 때 희생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탑이다. 1955년 대한민국 상이군경용사회 충북 충주분회와 재향군인회에서 해방 후 전몰한 충주 지역의 장병, 경찰관 등 2,838위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충혼탑 건립했다. 1956년 9월 완공하였다. 2004년 충주시에서 호국영령의 위패 안치실을 건립했다. 그 위에 탑을 그대로 원형 복원하였다. 화강암으로 만든 상석을 놓고 상석 앞에는 향로석이 있다. 탑신의 아래쪽에는 전면에 무궁화를 양각하고 그 위로 ‘충혼탑(忠魂塔)’이라고 음각한 뒤 그 위에 태극기를 조각하였다. 맨 위의 돌은 탄환 모양으로 만들어 탑신을 마무리지었다. 전체의 석재는 모두 화강암이며 높이는 8.5m이다. 충혼탑(忠魂塔) 글씨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친필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어서 더욱 소중하다. 웅장하게 오롯이 솟은 충혼탑에 깊은 애국심이 서려 있다.
* 충주 탄금대 팔천고혼 위령탑
충혼탑 바로 곁에는 팔천고혼 위령탑이 높이 솟아 있다. 탑신 상단부의 혼불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과 함께 일본과 맞서 싸우대가 산화한 8천 영령을 추모하는 모습이다. 하단에 마련된 신립 장군과 4인 군상은 최후를 맞았음에도 굴하지 않은 호국충절을 상징한다. 그날이 재현되는 서러운 역사의 현장 앞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용감하게 전사한 신립 장군과 8천 병사들의 드높은 위용이 휘날리고 있다.
* 충주 탄금대 감자꽃 노래비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노래비에 적힌 동시는 충주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인 동천 권태응(1918~1951) 선생이 지은 동시 '감자꽃'이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에 반항해 아무리 창씨개명을 할지라도 그 뿌리는 한민족 즉 하얀꽃이라는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감자꽃』은 1948년 글벗집에 의해 처녀 출간된 동요집이다. 수록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1부 ‘감자꽃(1948, 시 30편)’, 2부 ‘춥긴 머 추워(1947~48, 시 28편)’, 3부 ‘아기는 무섬쟁이(1949, 시 17편)’, 4부 ‘공일날(1950, 시 19편)’로 구성되었다. 유종호의 해설 「티 없는 노래」와 연보가 있다. 권태응 선생은 1918년 1월 30일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34세에 병으로 사망했다. 경성고보 재학시절 민족의식을 키워 친일성향의 학생들을 구타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시절 경성고보 33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33회'라는 비밀결사조직을 구성, 항일독립운동을 했다.일본인의 부당행위에 저항하다 퇴학 당했다. 1939년 독서회사건으로 도쿄 스가모형무소에 1년간 투옥됐다. 폐결핵에 걸려 1940년 5월 14일 풀려난뒤 귀국하여 고향에서 투병하다가 1951년 사망했다. 1968년 탄금대에 '감자꽃 노래비'가 건립됐고 2005년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유년시절 무심코 불렀던 동요 감자꽃에 이토록 깊은 애국정신이 담긴 줄은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오래도록 기억될 권태웅 시인과 소중한 동요다.
* 충주 탄금대 탄금대기
감자꽃 노래비를 보고 탄금대 토성과 토성을 지나 구릉에 오르니 산길 옆에 육당 최남선이 지은 탄금대기비(彈琴臺記碑)가 있다. 울창한 숲의 짙은 그림자로 잘 판독은 되지 않지만 값진 유적이다.
* 충주 탄금대 탄금정
충북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2층 정자로 명승 제42호로 지정된 충주 탄금대라 불리는 곳에 있다. 충주 탄금대는 대문산 또는 태문산으로 불리던 곳이다.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절벽이 있고 숲이 우거져 있다. 탄금대에는 충주문화원과 야외 음악당을 비롯하여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조웅 기적비, 탄금대비, 충혼탑, 감자꽃 노래비, 영의정 김지순 묘, 탄금대기비, 탄금대 토성, 대흥사 등이 있다. 탄금대 토성도 있고, 우륵이 가야금 탄주를 하였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 신립이 전투를 벌였던 장소다. 충주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탄금정 정자에 올라보니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남한강이 보인다. 그날을 재현하듯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여전히 청청하다. 탄금정에서 열두대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신립 장군 순절비가 있다. 신립 장군 순절비에는 도순변사 신립 장군이 종사관 김여물 장군과 함께 8,000명의 군사로 왜적 10수만을 맞아 싸우다 이곳 열두대에서 47세로 순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충주 탄금대 열두대
충북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북쪽 남한강 변의 절벽 위에 있는 바위다. 탄금정 오른쪽 아래로 계단이 나 있는데, 이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절벽 끝 지점에 열두대 우람한 바위가 있다. 신립 장군이 1592년 탄금대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설에 근거해서 후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과 열두대 사이의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열두대 앞 남한강에는 용섬이 있고 강 건너편에는 중앙탑면 유송리와 오석리가 있다. 남한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달천과 탄금대 지역에서 합류한다. 이곳 탄금대 합수머리에서 남한강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주조정지댐 쪽으로 흘러간다. 열두대에서 보면 이러한 남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한강을 따라 왼쪽으로 중앙탑면 창동리 청금정과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등이 있고, 더 북쪽에 있는 중앙탑면 탑평리에는 중앙탑이 있다. 이곳은 다음 기회에 가 볼 것이다. 열두대 바위 앞에 서니 신립 장군의 피맺힌 애국이 절규한다. 저 아래 낭떠러지로 8천 병사와 투신하였다 하니 기막힌 전장이다. 남한강은 변힘없이 흘러 푸름 청청하게 그날의 역사를 재현한다. 눈앞의 용섬과 저 멀리 보이는 충주의 경치가 비경이다.
* 충주 탄금대 신립 옥관자 이야기
열두대에서 올라와 하산하는 길에 용섬을 가까이서 보려고 강변으로 다가가니 의자 같은 구성물에 옥관자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어느날 잉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신립장군이 사용하던 옥관자가 나왔단 것이다. 옥관자는 조선시대에 당상관 이상의 관리들이 망건에 달고 다니던 장식물이다. 그것은 바로 신립 장군의 것이었다. 그래서 신립 장군의 시신을 찾지 못했는데 이 옥관자를 시신 대신 묻어 장례를 치렀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나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충주 탄금대 대흥사
충북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1956년 3월에 건립되었다. 1968년 10월에 화재로 인해 대웅전이 소실되었는데 다음해 5월에 다시 지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 진흥왕 때 용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거란족의 침략을 받아 소실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주변에는 네 개의 석등과, 종각, 9층 석탑, 석비, 석불 등이 있다. 그 외에 2동의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다. 역사 깊은 사찰이 탄금대 안에 잘 건립되어 있다. 깨끗하고 정숙한 사찰은 주변 풍경과 함께 비경을 그려낸다.
* 충주 탄금대 유래비
탄금대 탐방을 마치고 중식 식당으로 가늘 길에 대문산 산자락에 설치된 탄금대 유래비를 만났다. 탄금대에 깃든 우륵의 이야기와 신립 장군의 애절한 투신 등을 적었다. 다시금 탄금대의 깊은 역사를 배우고 간다.
* 충주 탄금공원 입장문
중식을 마치고 탄금공원으로 갔다. 입장문이 매우 웅장하다. 입구에는 탄금공원에 대한 안내도가 있다. 모두 자세히 살펴보고 입장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 충주 탄금공원 정원
탄금공원은 세계무술박물관, 야외공연장, 연못과 물레방아, 수석공원, 돌미로원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드넓은 공원이다. 곁에는 남한강이 흐르며 잘 조화되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탄금공원에는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야외 돔 메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돌미로공원은 남한강 정비사업 중 체취된 호박돌을 활용하여 조성된 국내 최장 미로공원이다.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와 태극문양을 모티브로 총 길이 2.090m로 구성되었다. 세계무술박물관도 곁에 있어서 세계 무술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다.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여서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다.
* 충주 탄금공원 월남참전기념탑
탄금공원 대문산 곁에 월남참전기념탑이 오롯하게 세워져 있다. 그 당시 활약했던 여러 군부대에 대한 설명과 전쟁부조 등 전란에 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소슬한 정경이다.
* 충주 탄금공원 호국탑
월남찬전기념탑 경에는 호국탑이 있다. 횃불 모양으로 구성된 탑이 치솟아 타오는 졍경이다. 작품명은 피어오르다라고 적혀 있다. 충주 지역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탑이다.
* 충주 탄금공원 연못
연못이 잘 조성되어 있다. 나무판 길을 따라 걸으며 연못에서 치솟아 오르는 분수와 물레방아의 하얀 물이 분무하는 정경를 보았다. 상큼한 비경이다.
* 충주 탄금공원에서 본 대문산
충북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산이다. 조금 전 보았던 탄금대를 품고 있는 산이다. 대문산에 서린 유래가 있다. 천지개벽할 때 달천강의 상류인 속리산에서부터 작은 산덩어리가 떠내려 오는데, 그 위에 개가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개가 충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서 견문산(犬門山)이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견문산이라고 하던 것이 어느새 점 하나가 빠져 대문산(大門山)이라고 쓰여 왔는데, 견문산으로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양에서 충주를 찾아들 때 이 산이 대문의 역할을 했으므로 대문산이라 지은 것이므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어서 현재 대문산으로 부르고 있다. 해발 108.3m의 구릉성 산이다. 탄금대가 위치한 대문산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류점에 있는 고립 구릉이다. 이 산을 탄금공원에서 보니 아담한 산덩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 충주 탄금공원 메인무대
탄금공원 중앙에 설치된 메인무대가 매우 아름답고 웅장하다. 각종 행사를 치른 곳이다. 하얀 돔 양식의 조형물이 공원을 빛내고 있다.
* 충주 탄금공원 세계무술박물관
탄금대 공원 바로 곁에 있다. 웅장한 건물이다. 충주에 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것은 택견 때문이다. 충주는 중요무형문화재 76호 택견의 고장이다. 택견의 계보를 잇는 송덕기, 신한승 등이 1970년대 충주에 터를 잡고 택견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1983년 택견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송덕기와 신한승은 초대 예능 보유자가 됐다. 송덕기는 신한승의 스승이며, 신한승의 제자 정경화가 2대 택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택견은 고구려의 무용총과 각저총 고분벽화에서 나온다.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택견상도 택견이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무술이라는 알려준다. 고려 때 택견은 어전 시합 경기 종목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수박희라고 불렀는데, 병사를 뽑는 정식 종목이었다. 일반인이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력을 기르는 수단이었다
충주 세계무술 박물관 입구에는 엄청난 크기의 북이 있다. 21세기 한반도 중심을 상징하는 북으로 직경 220 cm, 높이 240cm다. 제작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나, 현재는 두번째 크기다. 세계무술박물관 1층에서는 세계무술과 풍물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무술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여러 무술 단체들이 기증한 민속 공예품과 무기들도 있다. 그동안 열렸던 충주세계무술축제의 순간을 담은 사진들도 있다. 전시실 2층에는 세계 무술의 기원과 역사가 있다. 고구려 시대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전통 무술인 수박과 택견도 볼 수 있다. 택견의 계보와 여러 동작을 동영상과 조형물로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택견은 1983년 주요 무형문화재 제 76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전시실 3층에서는 다양한 세계무술이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무술을 소개하고, 여러 나라의 무기와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베는 무기, 찌르는 무기, 방어용 무기 등 다양하게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술인 택견의 시작과 전수에 대해서 신한승 선생님의 모형물과 함께 관련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늘은 휴일이어서 문을 닫아 내부는 모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와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충주 라바랜드
충주 라바랜드는 충주 세계무술공원 내 설치된 실내 키즈카페, 야외 놀이동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키즈 문화 콘텐츠이다. 유쾌하고 코믹한 악동 라바 친구들과 함께하는 어린이 테마파크로써 국내 최대 규모의 교육 체험 클래스, 이벤트 공연과 다양한 복합 놀이 시설이 어우러진 곳이다. 탄금대에서 1km 거리에 있다. 외부만 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 충주 국립중원문화재 연구소
탄금공원에서 능암늪지대로 가는 길에서 충주 국립중원문화재 연구소리는 큰 건물을 만났다. 중원문화권의 문화유산 발굴과 보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연구기관이다. 충북·강원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및 연구를 통하여 중원문화의 역사와 발전 과정 등을 밝히기 위해 2007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 중원문화의 실체를 정립하기 위해 기초 자료를 확보하여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 옛 흔적을 복원하여, 국민들이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실증적인 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건물이 매우 웅장하다.
* 충주 능암 늪지 연못
능암 늪지대로 들어오니 맨처음 능암 연못이 보인다. 내려가보니 물레방아가 정겨운 옛향수를 자아낸다. 고운 풍경이다.
* 충주 능암 늪지대 나무판 길
늪지대 호수 위에 나무판 길이 놓여있다. 아주 길로 아름다운 길이다. 걸어서, 걸어서 계속 늪지대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 충주 능암 늪지대 능바위 폭포
인공으로 바위를 조성해 놓고 시간대별로 물이 흐른다. 들어갈 때는 물이 안 나왔는데 나올 때는 폭포물이 흐른다. 자연 바위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대로 멋진 풍경이다.
* 충주 능암 늪지대 생태공원
남한강 안쪽 습지에 2012년 조성된 공원이다. 매우 길고 나무판길이 간간이 이어져서 경치가 아름답다. 남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산책이나 자전거 도로다. 충주 지방정원으로 2025년까지 조성계획이 추진 중이다. 탄금대에서 2.1km 거리에 있다. 오늘 능암 늪지대 생태공원을 완주 목표로 탐방 와서 힘들지만 그 목표에 성공했다. 너무 규모가 크고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도중에 나올까도 잠시 생각했는데, 언제 여기를 또 올까 스치는 대목에서 걸음을 재촉하여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목표대로 완주했다. 능암늪지대를 온전히 좌우 길 한바퀴를 돌며 살펴보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호수와 늪지대다. 참 보람되고 뜻깊은 탐방이었다. 계획했던대로 빠짐없이 오늘의 충주 탐방을 잘 마무리하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