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善惡)의 근본은 삼업(三業)의 결과
불제자들의 예경 의식 중에 “귀의불 양족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데 그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가 구족(具足)하신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며
또는 두 발을 가진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하신 분이신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합니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 부처님과 제자들의 의복인 한자 말로는 복전의(福田衣)라 하여
일반 중생들이 복을 심고 부처의 열매를 거두는 밭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불교를 폄하하고 낮추어 부를 때
기복 불교라고 흔히 지적하고 복을 비는 것을 낮은 차원이라고 매도하지만,
이는 복이 갖춰지고 나서야 지혜가 성숙 되는 도리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옛 노인들이 머리에 인 쌀 한 말을 산중 암자에까지 이고 가면서도
공양미를 내려놓지 않고 정성으로 가는 것은,
그 복덕 종자를 허술히 하지 않고자 했던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절 마당에까지 차가 쑥쑥 들어가는 편리한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간절한 정성이 결여(缺如)되기에 출가자나 재가자들이
복덕을 짓고 지혜를 닦는 수행은 옛사람보다 뒤처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처럼 불교는 현세의 삶에서 행복하고 복 있는 생활을 누리고자 하면서도
깨달음을 실천하는 지혜의 길도 아울러 추구합니다. 경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아니룻다가 출가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설법 회상(會上)에서 아니룻다는 꾸벅꾸벅 졸게 되어 부처님은 아니룻다에게 물으십니다.
“아니룻다여 너는 어째서 편안한 집을 뛰쳐나와 도를 배우느냐?”
“예 부처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근심 걱정 등의 괴로움이 싫어서 그것을 버리려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는 설법을 듣는 자리에서 졸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아니룻다는 허물을 뉘우치고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졸지 않겠습니다.”
이후 아니룻다는 끊임없는 정진으로 잠을 자지 않아
무리하면 실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아니룻다를 불러서
“잠을 좀 자거라. 중생의 육신은 먹지 않으면 죽는 법이다.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고 귀는 소리로, 코는 냄새로, 혀는 맛으로, 몸은 감촉으로,
생각은 현상으로 먹이를 삼는다. 그리고 여래는 열반으로 먹이를 삼는다.” 하셨습니다.
그때, 아니룻다는 “부처님 그럼 열반은 무엇으로 먹이를 삼는지요”하고 묻고,
“열반은 게으르지 않음으로 먹이를 삼는다.”라는 대답을 들은 후에 끝까지 정진하여
마침내 육신의 눈은 실명하고 마음의 눈을 뜨는 깨달은 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눈먼 아니룻다가 옷을 꿰매고자 할 때 바늘귀를 꿰지 못해 어려워하면서
“복 지을 사람은 누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이때 얼른 바늘과 실을 받아 옷을 기워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부처님인 사실을 늦게 안 아니룻다는
“부처님께서는 무슨 복을 지을 일이 있으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니룻다여 복 짓는 사람 중에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
중생들이 악의 근본인 몸과 말과 생각의 결과를 참으로 안다면 결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모르기에 악도에 떨어진다. 나는 그들을 위해 복을 지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힘 중에서 복의 힘이 가장 으뜸이니 그 복의 힘으로 불도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아니룻다여 모든 수행자는 그대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부처님과 아니룻다의 대화를 생각합니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절망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아니룻다의 끊임없는 정진이나 부처님의 격려하심,
또 복덕과 지혜의 보고요 원천(源泉) 이신
부처님께서 불편한 제자를 위해 직접 옷을 기워주심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아니룻다-뿐만이 아니라 문둥병에 걸려있던 제자의 몸을 손수 깨끗이 씻기시기도 하고
똥통에 빠진 니이다이를 물가에 데리고 가 씻겨주시고 마음의 눈을 뜨게 이끌어 주시기도 하며
빈부 노소에 차별 없이 대인의 깨달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분에게 있어서는 건조한 지혜의 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따뜻한 자비의 손길과 더불어 이미 완성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을 위하여 더 이상 지을 복이 없는 것을 지으시고
더 이상 깨치실 지혜가 없는 것을 깨치시고자
80 노구를 이끌고 중생 세간을 부처 세상으로 만드신 크나크신 은혜만이 있습니다.
아아 누구라서 그분과 마주하면 감읍하지 않는 이 있을 것이며
누구라서 그분의 원음을 듣고 법희선열(法喜禪悅)에 잠기지 않을 사람 있을 것이며
그분 마음의 파장(波長)이 영겁(永劫)을 두고 이 사바세계를 진동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누구라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길 주저하겠는지요.
우직한 소의 걸음에 호랑이의 바른 눈을 뜬 구도자요,
보살들의 행렬이 이 집 저 집에서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이 도량 저 도량에서
둥그렇게 빛나는 깨달음의 광명을 찾아 함께 나아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 일타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