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월 22일 화요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입니다.
‘소설’ 절기를 전후해서 추위가 찾아오지만
요즈음 날씨는 예년과 달리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눈 소식도 없음입니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의 갈림길인
‘소설’ 절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갑자기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추운 겨울로 접어들게 됩니다.
추위가 닥치는 환절기에
특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눈)소설 [小雪]
‘소설(小雪)’은 입동(立冬)이 지나면서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이라 했습니다. 즉 ‘소설’에는 눈이 작게, 대설
(大雪)‘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설’은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드는 24절기 중 스무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서 양력으로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240˚에
이르는 11월 22, 또는 23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10월
중에 듭니다.
또 ‘소설’은 겨울의 문턱이라는 입동 후 약 15일,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12월 7일) 전 약 15일에 해당하며 이때
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며, 첫눈이 내리는
등, 점차 첫 겨울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눈이 내려
첫 추위가 몰려오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합니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쬔다고 하여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립니다.
‘소춘’이란 음력 시월을 달리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소설은 대개 음력 10월 중 하순에 드는데, “초순의 홑바지
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입동 후 5일씩을 묶어 3 후(三候)로 삼았습니다.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며, 중후(中候)에는 천기는 오르고 지기는
내려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末候)가 되면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히면서 겨울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소설 무렵, 음력 시월 스무날 무렵에는 해마다 강하고
매서운 바람이 일면서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때 부는 강한
바람을 '손돌바람', 이때의 강한 추위를 '손돌이추위'라
라고 합니다.
‘손돌바람’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 23대 고종(高宗) 때 몽골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하게 되었는데, 손돌(孫乭)이라는 사공이
왕을 모시고 뱃길을 서둘렀지만, 왕이 보아하니 손돌이
자꾸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물살이 급한 뱃길을 잡아
노를 젓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왕은 자신을 해코지한다는 의심이 들어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배를 저어 나갔습니다.
왕은 의심스러운 터에 어명을 거역하자 선상에서 손돌을
참수(斬首)토록 하였습니다. 손돌은 죽기 전에 그곳은
다니던 뱃길이라며 억울함을 하소연하였지만,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래도 죽기 전에 바가지를 내놓으며
바닷물에 띄운 후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뱃길을 잡으라고
알려 주곤 주검을 맞았습니다.
물살이 점점 세게 되어 다급해지자 일행은 손돌이 가르쳐
준 대로 바가지를 바닷물에 띄웠습니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
을 따라 흘러갔으며, 왕을 실은 배도 그 뒤를 따라가 무사히
뭍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손돌을 죽인 후에 더더욱 세찬 바람이
불고 물살이 급해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싣고 가던 말의
목을 잘라 제사를 모셨더니 파도가 잠잠해졌다고도 합니다.
뭍에 도착한 왕은 그제야 비로소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뒤늦게 알고 후회하였지만 손돌의 목숨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왕의 경망함이지요,
그래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장지(葬地)를 정해 후하게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 뒤 매년 이쯤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는데, 이는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하는
속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추위를 ‘손돌 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바람,
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합니다. 강화지역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날은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편, 음력 시월은 모든 농사일을 마치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쯤에 모든 추수를 끝내고 타작한 벼를 말려 곳간에
쌓아 두고, 농사일이 별로 없으므로 아무 걱정 없이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 있는 달이라 하여 '공(空) 달' 또는 '상달’
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농사철처럼 바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조촐하고 자질구레한 잔일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농가월령가에도 겨울 채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 배추 캐여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 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속담에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라고 했듯이 첫얼음
과 첫눈이 찾아들므로 김장을 위한 무· 배추 수확· 저장,
겨우내 소 사료용 볏짚 모아두기, 시래기를 엮어 달기,
멍석에 무말랭이 널기, 호박을 가늘고 길게 썰어 오가리
만들기 곶감 말리기 등 월동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줄줄이 곶감을 매달아 말리느라 처마
밑이 온통 곶감으로 출렁이기도 했습니다.
또 소설 무렵에는 김치를 담그는 김장철입니다. 많은 월동
준비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김장이 가장 큰 일입니다.
오죽하면 "김장하니 삼동(三冬-겨울 석 달))을 걱정 덜었다.“
라고 했겠습니까,
천지의 생물이 잠들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철, 김치는
싱싱한 채소 대용으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훌륭한
우리 전래의 음식입니다.
김치는 새 나물이 돋아나는 이듬해 봄까지는 더할 수 없는
영양분이자 겨울철 가장 사랑받는 찬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김장을 하는 집이 하나둘 줄어들며
김치 등 겨울 밑반찬 거리를 손질한 것을 사다 먹어가며
옛 풍속들조차 하나둘씩 사라져 가니 한 편은 아쉽고
허전한 마음뿐입니다.
※參考文獻
①韓國民俗大百科事典
②韓國民族文化大白科
③韓國歲時風俗事典,
④斗山百科事典
⑤韓國民俗의 世界5, 2001년
⑥農家月令歌 寫本
-2022.11.22.(火) ‘雪峯-
[091116, 修訂 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