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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
예수님의 가족관
막 3:31-35절, 222.304.305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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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가정을 통해서 안식과 평안을얻습니다. 가정은 사랑으로 엉켜 있는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가정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든 것이며 가정은 그래서 하나님의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을 이루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평안하고 아름다워야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평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정에 죄가들어오고 가정에 불신이 들어왔을 때 가정은 불행과 고통이 왔습니다.
인류의 최초의 가정은 죄 때문에 엄청난 불행이 왔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형제는 종교적 문제로 말미암아 큰 비극을맞았고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었고 큰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이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을 시기 질투하다가 인류의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가정은 믿음과 사랑과 위로와 순종으로 꾸밀 때는 행복의 보금자리이며 인생의 안식처이지만, 가정에 불신과 미움과 증오가 자리잡을 때는 불행과 고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위기는 가정의 위기에서 출발합니다. 오늘날 가정은 변질되어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의위기는 가정의 위기를 가져왔고, 가정의 위기는 사회와 국가의위 기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는 물음과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 건설 뿐만아니라 영적인 가족인 교회에 대해서도 함께생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가업인 목수일을 했습니다. 그는 가정의 장남으로서 사명을 다 했습니다.
막 6:3에 보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때 이미 요셉은 세상을 떠난것 같고, 남동생 넷에 여동생이 최소한 두 명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성경구절을 해석하면서 형제들은 사촌들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녀의 몸에서 낳고 그 후에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면서 여러 자녀를 낳은 것으로서 성경이 말한 그대로 여러 형제 자매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가, 하나님의 나라 선포와 복음증거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구속사역을 위해서 공생애에 들어가자 가정은 큰변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형제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분주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병고침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성경의 표현대로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갑작스런 변화 때문인지 그의 가족들도 예수를 미쳤다고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에게 대한 비판 세력들을 예수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까지 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답은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막3:29)고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모두가 성령의 사역으로된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예수님은 여전히 말씀 증거와 병고치는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의 모친과 그의 형제들이 밖에 와서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사람을 시켜서 예수를 불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중에 당하신 가장 마음 아프고 난처한 장면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찾아온 것은 예수의 행동이 미쳤다고 하면서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중단시키려고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당시의 장면과 상황을 가감없이 진실되게 그대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마당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서 그의 일을 중단시키려고 하니 정말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중단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소홀히 대접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때 하나님의 지혜로 영원한 진리를 가르칠 기회를 삼으셨습니다. 참된 가족은 예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어머니와 그 형제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깊고 오묘한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그들과 인연을 끊은 것이 아니고 그들이 예수를 그때까지 안 믿는다고 섭섭해 하신 것이 아니라 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 깊은 진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과 거룩한 관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신령한 가족관계여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는 이 표현은, 어찌 보면 대단히 냉정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 이뜻은 영적인 가족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피를 나눈 것이 가족입니다. 그런데도 신앙 생활에서만은 모두가 다를수 있습니다 신앙만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남편과 아내도 신앙만은 서로 다릅니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신앙만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형제간에도 신앙이 서로 다릅니다. 친척간에도 신앙이 서로 다릅니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참으로 가까운것 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한 가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이미 한 가족 곧 영적으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피를 나눈 가족은 중요합니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원리와 교회의 원리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정이 복되어야 하듯이 교회도 복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활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가족 생활이 더욱 중요합니다.
찬송가 278장에서와 같이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내몸 같이 환난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사랑하는 주님앞에 온갖 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마음조차 하나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이 찬송은 어쩌면 이 본문의 설교와 완전히 일치되는 찬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영적으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영적으로 가족입니다.사실은 때로는 육신의 가족보다 더 끈끈하고 깊은 사랑의 동아줄로 매어 있습니다.
가족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는 한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의 명령으로 살아갑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한 가족이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다니는 자는 가족으로 곤란합니다. 마치 가정에 질서가 있듯이 영적인 가정에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지만 우리가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사랑하듯이 목사도 말씀으로 섬기지만 영적으로는 부모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버지 중에도 엄한 아버지도 있고, 자상한 아버지, 과묵한 아버지 인자한 아버지 등 여러가지 유형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서든지 가족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므로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가 좀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한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질서를 무너뜨리면 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흔히들 고개 숙인 아버지란 말이 유행 합니다만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진 것은, 현대 가정의 위기 이듯이 목사의 권위가 떨어지면 그것은 곧 영적 가족인 교회의 위기를 가져옵니다. 목사의 권위는 목사 자신의 인격에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있습니다.
비유컨데 판사의 권위는 판사의 개인의 인격에 있는 것이아니라 그가 가진 법전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의 권위는 억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또는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할 때 참된 권위를 갖게 되는줄 믿습니다.
교회는 갖난 아이도 있고 유년도 있고, 청년도 있고, 장년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나이를 두고 말하는 것보다 신앙의 수준을 두고 말합니다 나이 많아도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 있는가 하면 신앙의 연륜이 짧아도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기도하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영적 가족으로서 아름답게 성장하려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수칙이 필요할 것입니다.
첫째로 모든 가족은 곧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부모 말을 불순종하는 자녀가 속을 썩이고 걱정을 끼치듯이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주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가족들 곧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줄 알아야 합니다. 가족은 사랑으로 하나 되듯 교회도 사랑이 넘치고 서로 감싸주고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수근대고 남의 결점을 자꾸 말하는 사람이 한 두사람만 되어도 영적 가족 전체에 상처를 줍니다.
무심코 뱉어논 미움의 한마디, 비방의 한마디가 단둘이서 속삭이며 하는 말이지만 몇주일 가지 않아서 온 구역이 다 알고 전 교인이 다 알게됩니다. 친한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서 나눈 이야기가 온 교회를 싸늘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시간 문제이지 결국은 목사도 알게되고, 전 교인이 다 알게 됩니다. 그럼으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말을 절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영적 가족 곧 성도들은 신령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나눔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한 가족을 이루면서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일하지 않고 나누지 않고 남의 앞을 가로 막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먼저 붕사하려고 하고 서로가 먼저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봉사에는, 앞장서고 봉사에는 다투어서 하려고 해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 있어야 다른사람이 큰 힘을 얻습니다.
넷째는 영적가족 곧 성도들은 서로 위로와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위로가 없는 가정, 돌봄이 없는 가정을 어찌 가정이라 하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위로하고 먼저 돌보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곧 영적인 생활이 기쁘고 평안하고 만족해야 우리의 가정도 평안하고 육신의 삶도 즐겁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영적 가정 건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사명입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이해하고 궂은 일은 내가 먼저하려는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낮은 곳에서 섬기려할 때 융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성도는 영적인 생활에 기쁨이 있고 평안할 때 여러분의 가정도 직장도 사업장도 윤택하게됩니다.
자녀들의 앞길에도 형통하게 풀립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예배생활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실패의 길이냐? 성골의 길이냐? 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인정받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