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미야토 비치]시대는 1987년, 수케르, 보반등이 출전한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유고는 정상을 차지하면서, 한시대를 풍미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유고 내전에의해서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나라는 여럿으로 갈라졌으며, 내전으로 나라는 불안하기만 했다. 물론 이 1987년 세계청소년대회 우승의 핵심이였던 미야토비치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두치노스트, 파티잔 베오그라드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유고 리그를 정복하고, 스페인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발칸의 폭격기"라는 이름을 남긴 미야토비치. 결국 마지막은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한 발렌시아 지방으로(레반테) 돌아 왔다.
Super Savo! 스페인에서 맹위를 떨치다.
유로2000 네덜란드와의 8강전. 당시 클루이베르트에게 제대로 얻어맞은 유고가 대패를 하면서 꿈을 접게 된다.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을 달고 마지막으로 참가한 메이져대회
사진:미야토비치와 함께 87년 세계청소년 대회 우승을 일궈낸 수케르, 미야토비치의 가장 친한 동료라고 한다]막강한 공격력을 가졌던 유고였지만 아쉽게 좌절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막강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던 밀로세비치를 기억하기는 어렵지 않을것이다.
유고 강호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에서 3시즌동안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밀로세비치는 좁은 유고무대를 뒤로 하고 잉글랜드의 강호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게 된다. 물론 밀로세비치가 이적하는데에는 내전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져야할 선수가 전쟁터에서 쓰러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스톤빌라로 이적한 밀로세비치는 완전 부진은 아니지만, 그가 유고에서 보여준 플레이와 비교 했을때 기대이하였다. 결국 잉글랜드 생활을 뒤로하고 98/99시즌 스페인 사라고사로 이적. 첫시즌부터 17골을 성공시켰고, 다음 시즌에는 23골을 터트리는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난다.
폭격기, 이베리아를 흔들다
1998년 미야토비치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는데, 유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였다고 한다. 물론 같이 청소년대회에서 우승을 맛본 사비체비치가 있었지만, 미야토비치의 인기는 유고에서 실로 대단했다.
그야말로 전쟁으로 몰락한 유고 슬라비아의 영웅이였다. 하지만 그는 발렌시아에서는 영웅이 될수 없었던것 같았다.
때는 1993년. 유고내전이 터지면서 나라를 여럿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더이상 유고에서 축구를 할수 없었다.
이런 미야토비치에게 발렌시아가 이적제의를 해왔는데, 미야토비치는 유고에서 더이상 뛸수 없다는것을 알고 발렌시아로 이적하는데, 이때부터 미야토 비치는 무서운 선수로 발돋음 한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많았던 발렌시아.
결국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미야토비치를 최전방에 배치하게 되는데, 이것은 멋지게 적중했고 많은 골을 기록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94/95시즌 28골을 터트리면서, 스트라이커로써의 멋진 변신에 성공한다.
사진:유고 국가대표시절 밀로세비치]다시 중흥기를 꿈꾸던 레알마드리드는 세비아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준 다보르 수케르를 영입했고, 그의 파트너로써, 발렌시아에서 많은 득점은 올린 미야토비치를 낙점했다
그리고 미야토비치는 결국 레알마드리드행을 택하게 되는데, 이때 발렌시아 서포터즈들이 유다비치(성경에 나오는 사람으로 예수를 배신함. 즉 발렌시아를 배신했다라는 뜻)라는 악명스러운 별명을 지어주게 된다.
하지만 미야토 비치는 "다시 발렌시아로 돌아 오겠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미야토비치는 마지막에 이 약속을 지키고 떠나게 된다.
저무는 시대
유고 내전의 상처는 깊어만갔다. 안정되지 못한 도시와 정국. 하지만 유고 시민의 축구 사랑은 이어졌고, 유로2000역시 유고는 당당히 조별 토너먼트를 넘어서 8강전에서 강호 네덜란드를 만났다.
네덜란드의 투톱은 당시 최강이라는 "클라이 베르트를 전방에, 베르기를 후방에"배치하면서 막강한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유고도 무서울것이 없었다.
바로 발칸의 폭격기 미야토비치와, "슈퍼 사보"밀로세비치가 있었기때문이였다. 특히 밀로세비치는 많은 득점을 올리면서 유력한 득점왕 후보였고, 미야토비치는 노련함으로 유고를 이끌었다.
하지만 밀로세비치의 한골 이외에는 별다른 활약없이 네덜란드에게 심하게 두드려 맞고 6:1 패배로 결국 무너저야 했다.
유고 시민들의 희망이였던 유고 대표팀은 유로2000에서 결국 좌절을 맛보면서, 돌아갔다. 하지만 이 대회이후에 유고라는 이름은 완전 사라저버렸고, 지금은 축구팬들 머리속에 "과거의 강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고 만 별
유로 2000이후 파르마로 이적한 밀로세비치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라고사, 에스파뇰, 셀타등에서 활약하게 되지만, 예전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밀로세비치는 바스크의 작은 구단 오사수나에서 종반으로 향하고 있는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어느세 선수생활 종반으로 접어든 밀로세비치]레알마드리드에서 미야토비치는 약간의 노쇠화 기미를 보였다. 라울 모리엔테스등이 성장하고 있었던 레알마드리드는 미야토비치를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로 이적시켜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이적은 미야토비치에게는 큰 타격이였다. 레알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을 잃어버린 미야토비치는 결국 피오렌티나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다시 돌아 오겠다"라고 말했던 발렌시아 지방의 레반테로 와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보내게 된다.
물론 레반테로 온 이유는 자신의 아들의 병간호때문이라고도 한다.
미야토비치 "저는 시계모으는것을 좋아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요? 어린 시절부터 함게 축구를 해온 사비체비치 그리고 수케르와 절친하죠"
레알 마드리드의 박물관에는 왁스로 만들 미야토비치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레알마드리드 시민들의 사랑을 느낄수 있는 부분이다. 불우했던 유고의 90년대, 하지만 "축구"라는 종목에서 내전으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게 희망과 열정을 선사했던 미야토 비치와 밀로세비치. 그들은 마지막 "유고"의 이름을 달고 뛴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기억되길 바란다.
Soccer Street 김상준
유고는 정말 강팀이었죠 굉장히 그리운 팀
첫댓글 수케르 참 ...98년 월드컵때 인상깊이 남앗음
다보르 수케르....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선수......문제는 유고 선수들은 모두 한성깔한다는점......ㅋㅋㅋ
밀로셰비치.. 유로2000때 클루이랑 공동 득점왕먹었었죠..
으으으 유고만세~~~06꼭와라~
유고비치선수는 뭘하고있는지 정말궁금하네요 다른선수들은그래도 어느정도소식은있지만 ㅠㅠ
아.. 유고... (크로아티아의 수케르, 신유고연방의 미야토비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케즈만... 이들이 한팀이었다면) 전쟁이 뭔지, 종교가 뭔지, 인종이 뭔지.. 이들을 한 데 묶어줄 티토와 같은 리더는 어디에..
유고.....정말아쉽다...
케즈만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