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는 너무 짧다"면서도 "낙태 합법화 찬동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되면 IVF 지원" 민주당 "금방 탄로날 거짓말"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여성과 중도층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생식권(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는 권리) 보장을 위해 열심히 싸워 온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또 대통령에 당선되면 난임 부부를 위한 체외 인공수정(IVF) 시술 비용을 지원한다는 공약도 새로 제시했다.
트럼프는 낙태에 있어서도 보수적이었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관련 이슈에 있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여성 표가 부쩍 몰리는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경합주인 미시간주 포터빌에서 유세를 갖고 "신생아를 낳는 부모에게 관련 비용을 세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IVF 지원 계획을 밝혔다. 그는 "IVF는 비용이 많이 들어 시술 받기 어렵다"면서 "그들(민주당)은 내가 그것을 싫어한다고 하겠지만 그 반대다. 나는 처음부터 IVF에 찬성해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시간 유세에 앞서 진행한 NBC 인터뷰를 통해선 11월 대선 투표 때 플로리다주의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투표를 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트럼프가 거주하는 플로리다주는 임신 6주를 넘어선 태아에 대한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폐기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함께 진행된다. 트럼프는 6주를 넘어선 낙태 금지에 대해 "6주는 너무 짧다”고 말해 개정안에 찬성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후 낙태 반대 진영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트럼프 캠프는 ‘6주가 너무 짧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을 뿐 개정안에 어떻게 투표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3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낙태 허용 기간을 6주보다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개정안에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급진적이고 (낙태 허용 기간) 9개월은 그저 터무니없다”면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초강경 보수 유권자들 견해와 거리가 있는 공약을 잇따라 내거는 것은 경합주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여성 및 중도층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주)은 낙태 금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30일 CNN과 화상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가 IVF와 관련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2년 6월 여성들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역시 이를 엄청난 치적으로 포장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여론이 자신에 유리하지 않은 흐름을 보이자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 구체적으로는 임신 15주까지 낙태 금지를 공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 4월 '각 주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 왔다.
민주당은 30일 성명을 내고 트럼프와 밴스 공화당 후보들의 최근 발언과 반대되는 사례를 열거하며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렸다. 아이다 로스 민주당 대변인은 "밴스는 두 달 전 전국적으로 시험관 아기 접근을 보호하는 법안을 막는 데 투표했다"며 "트럼프와 밴스는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위험한 '프로젝트 2025' 의제를 내걸고 있다"고 공박했다.
민주당은 낙태를 여성의 '생식권'이라고 이름 붙이는 한편,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 사안으로 부각해 여성과 중도층 표심을 공략 중이다. 지난 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개최한 전당대회 첫날에는 다섯 살 때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열두 살 때 유산의 아픔을 겪은 23세의 낙태 권리 운동가 해들리 듀발이 올라 자신의 사연을 소개해 유나이티드센터 전당대회장 내부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노동절 다음날인 오는 3일 트럼프의 고향인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50번째 '생식 자유 버스 투어'에 나설 계획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태세 전환은 생명 옹호론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생명권 옹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한 엑스(X, 옛 트위터) 사용자는 “트럼프는 보수 운동과 생명권 운동을 모두 파괴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 “생명권 옹호자로서 난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디오 진행자 에릭 에릭슨도 X에 “트럼프는 오늘 밤 카멀라 해리스의 인터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공화당을 더욱 분열시키기로 했다. 이는 승리하는 데 좋은 전략이 아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뉴스는 “최근 몇 주 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생식권 문제의 지도자로 내세웠지만, 이는 핵심 사안에서 자신들을 저버릴까 걱정하는 보수적인 동맹들과 그를 진정성 없다고 비난하는 민주당 양측의 분노를 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