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서 비 맞으며 흐느꼈던 金 총리
세월호 사고 후 면도조차 않고 유족과 밤새 대화했던 李 장관
자전거 유세로 승리한 李 당선자… 그들의 眞心이 民心 움직였다
# 2011년 11월 대전 현충원에서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행사 시작 10분 만에 비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이 우산을 꺼내 드는 속에서도 굵은 빗줄기를 몸으로 맞는 사람이 있었다. 김황식 당시 총리였다. 경호원이 우산을 씌워주려 하자 그는 "됐다. 치우라"며 물리쳤다. 김 총리는 추모식이 열린 40분 내내 고스란히 장대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양복이 몸에 달라붙고 안경 위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전사자 묘역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기도 했다. 온 국민을 감동시킨 이 장면은 '비 맞는 총리'란 제목으로 오래도록 사람들 기억에 남았다.
김 총리가 발탁될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기가 없었고 정권 후반기였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대타로 기용된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김 총리는 2년5개월간 재임해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그의 장수 비결은 진정성이었다. 자기 몸을 낮춰가며 '이슬비'처럼 조용히 현장을 챙기는 진정성이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총리실을 떠나는 날 많은 언론이 그에게 '명재상(名宰相)'이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 세월호 사고 직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온 국민의 '공적(公敵) 1호'였다. 실종자 가족에게 멱살 잡히고 고성(高聲)과 폭언을 듣기 일쑤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 면전에서 이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다들 이 장관이 이리저리 얻어터지다가 곧 잘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개각에서 살아남았고, 경질은커녕 더 오래 장관을 시키라는 여론까지 생겼다. 그에게 분노를 폭발시켰던 세월호 가족들도 이젠 마음을 열고 신뢰를 주고 있다.
가족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4월 24일 밤이었다고 이 장관은 기억한다. 실종자 구조 작업이 더디자 이날 가족들이 진도군청 상황실로 몰려왔다. 격앙된 가족들 앞에서 이 장관은 "도망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이 장관과 가족들은 수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가족들은 세월호 안에 있을 자녀들의 추억담을 많이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효도했던 일이며, 얼마나 공부도 잘하고 착했는지 같은 얘기들이었다. 이 장관은 밤새도록 함께 울면서 가족들의 말을 들었다. 이때부터 가족들이 조금씩 이 장관을 믿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사고 후 100여일 동안 국회에 출석한 것을 빼고는 한순간도 진도를 떠나지 않았다. 면도 안 한 얼굴은 흰 수염으로 뒤덮이고, 염색기 빠진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다. 영락없이 귀양 가는 '노(老) 죄수'의 몰골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죄인 된 심정이라서…"라고 했다. 이렇게 몸을 낮추며 자신을 내던진 자세가 가족들의 마음을 열게 한 듯했다.
# 7·30 재·보선 순천·곡성에서 승리한 이정현 당선자의 선거 구호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였다. 선거 전날 마지막 방송 연설에선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저는 호남 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 미치도록, 정말 미치도록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제 손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 온몸을 던진 읍소이자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다.
이 당선자의 선거운동은 경쟁 상대인 서갑원 후보와 대조적이었다. 서 후보는 선거운동원을 병풍처럼 앞에 세우고 트럭을 개조한 유세 차량에 올라 연설했다. 파란 점퍼를 입은 청년 운동원들이 피켓을 흔들고 화려한 율동을 하면서 주민들 눈길을 끌었다.
반면 이 당선자는 선거 차량 대신 자전거로 선거구를 누볐다. 차를 타면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플라스틱 확성기로 유세하고, 유권자가 보이면 내려서 손을 잡았다. 그냥 악수가 아니라 두 손으로 맞잡고 포옹하며 몸으로 부딪쳤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다녔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옷이 물에 젖어도 그 차림으로 주민에게 다가갔다. 온몸을 던져가며 "머슴이 될 테니 2년만 써봐 달라"고 호소했다.
이 당선자는 피켓 들고 거리 홍보하는 선거운동원을 두지 않았다. 대신 자원봉사자들로 하여금 골목 청소를 하고 경로당에 들러 안마 봉사를 하게 했다. 유세 차량 대신 자전거를 타고, 퍼포먼스 대신 자원봉사를 한 이 당선자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예산 폭탄' 공약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선자가 이긴 가장 큰 비결은 그가 주민들에게 진정성을 입증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불신받는 소통 부재의 시대, 열쇠는 결국 진정성이었다. 알고 보니 국민 쪽에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공직자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 온몸을 던져주기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