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미디어영상학부 4910880 신철우
* 파이란(白蘭) : 하얀난초
파이란이라는 영화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게으른 내가 이런 기회로나마 시나리오를 접하게되서 기쁘게 생각한다.
사실 쓸데없는 웹서핑이나 하면서 죽은 눈으로 컴퓨터스크린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중요한 건 그래도 앞으로
크게 바뀌지않을 내 모습이 약간은 무서운것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감상평을 시작해볼까 한다.
파이란, 이 영화의 제목을 들으면 푸른 파도가 생각난다. 아주 파아랗고 아주 차가운 파도는 내가 도시안에 있는 지금도
끝없이 일렁이고 바위에 부딫칠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거리가 자아내는 향수와 같은 느낌.
나도 모르게 느끼는 그리움같은 것, 이 영화의 대한 개인적인 내 느낌은 그러하다.
이 느낌은 물론 영화를 보고난후 영화에게 받은 영향이 클 것이다. 시나리오의 처음부분을 읽어내려가보니 그렇게 대사위주의 영화가 아니라서 그런지 짧은 시간에 다 읽어버렸고, 화면으로 볼때의 그 절제된 미학이 느껴지지않았지만 순간순간 내 감정을 위태롭게 하는 몇몇부분들이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가슴아프게 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는 강재, 강백란, 경수, 용식이라는 주요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영화의 스토리를 연결시키며 이어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며 서로의 관계와 감정들이 엮이고 섞이는 과정들이 순서대로 얘기되며 전체 영화를 구성하게 된다.
먼저 강재라는 인물은 영화 "파이란"의 남자주인공이다. 그는 자주 유치장을 드나드는 3류깡패 아니 양아치이다.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한물간 노익장이며 후배 깡패들에게도 괄시당하고 무시당하며, 취미는 동네오락실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면서 오락이나하는 것이다. 그에겐 하나의 꿈이 있는데 고향에 내려가 어업을 하기위한 배를 살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는일 없고 할줄아는 것도 없는 그에겐 미래란 거의 보이지않는다. 개망나니처럼 살아가며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진 그의 삶에 향기같이 보이지않고 만질수없는 조용한 사랑이 다가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중국여성 강백란과의 위장결혼이다. 그는 별 생각없이 그녀와 서류상의 혼인신고를 올리고 만나지도않고 살지만 곧,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녀를 느끼게 된다.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과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후에 용식과의 약속을 거절하게되며, 용식에게 죽임을 당한다.
강백란이라는 인물은 여자주인공으로 영화제목인 파이란의 원단어인 백란의 이름을 가진 여성이다. 이 백란이란 하얀난초를 뜻하는데 이 여성은 정말 이 하얀난초처럼 난초향기를 풍기는듯하고, 난초같은 성품과 외모를 지니고있다.
백란은 어머니를 여의고 유언에 따라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지만 친척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린 후이다. 그래서 국제결혼이라는
방법으로 한국에 오게되고 3류깡패인 강재와 혼인신고를 올리게 된다. 그녀는 강재와 혼인신고를 올린뒤 그의 사진만 보며
힘든 한국에서의 생활을 견디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려 하지만 병에 걸리고 악화되어 죽게된다. 죽기전엔 항상 강재에 대한
고마움과 연모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죽기전 그에게 쓴 편지가 그에게 배달되고 강재의 내면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킨다.
경수는 강재의 친한 동생으로 예술사업(?)으로 포르노를 찍고 팔며 3류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나마 찌그러져있는 강재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며 도와주고,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강재의 죽음을 지켜주지못한다.
용식은 강재와 함게 젊은 시절 깡패를 시작한 동기이지만, 용식은 급속도로 커버려 조직의 대장질을 하게되며 강재와는 다른
길을 가게된다. 뱀처럼 차갑고 악하며 속을 알수없을만큼 계산적이다. 후에 상대조직에 조직원을 살해하게되어 강재에게
죄를 뒤짚어씌우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강재를 죽이게 된다.
작은 수의 캐릭터들로 얘기를 만들어가는만큼 이 영화는 스토리적인 부분에서 절제되어있지만, 반면에 굉장히 탄탄하다.
시나리오를 보면 이야기는 순서대로 진행되지않고 강재의 이야기와 백란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진행시키고, 백란의 이야기에서 백란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강재이야기속에 강재 또한 그녀의 가장 깊은 삶의 흔적들로 거슬러올라간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백란은 죽음으로 가는 삶의 정점에 밟아가고있고 그러한 장면들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의 구조는 상당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강재는 생각지도 않았던 그녀의 삶을 어리둥절하게 밟아가지만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삭막한 삶과 그녀의 삶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품었던 그에 대한 고마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현실에 부재해 있는 존재에 대한 막연함을 슬퍼한다.
그녀에 대한 향기를 더 진하게 맡아갈수록 그녀의 부재함도 더욱 진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지않았던 서류상의 아내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를 치루러 그녀를 찾아왔지만 인간의 죽음이 어떠한 간단한 절차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분노의 불씨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존중되지못하는 세상의 더러움을 느끼며 자신이 잃었었던 인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 영화는 기-승-전-결 이라는 4가지의 구조적 단계로 나눌수가 있다.
기 - 3류 깡패, 양아치인 강재는 정말 한심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동기인 용식에게 무시당하며 호구짓을 하고산다. 그러던 중
용식과 상대조직원의 싸움에서 용식은 상대조직원을 죽이게되고, 용식은 자신의 죄를 강재에게 뒤짚어씌우기위해 대신 감방에
들어가 주길 제의하며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강재에게 배한척을 사줄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승 - 용식의 부탁을 승낙한 강재는 뜬금없이 서류상의 아내인 백란이 죽었다는 통보를 듣게된다. 위장결혼이었던 결혼은
들키지않고 죽음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를 치루어야했기에 그는 백란이 살았던 동네에 찾아가기위해 기차를 타고 그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녀의 고달픈 생활을 짐작하게 된다.
전 - 백란이 일했던 세탁소에 도착하게 된 강재는 세탁소주인아줌마에게 백란이 죽기직전 쓴 편지를 전달받고 그녀의 편지를
읽게된다. 그녀는 힘든 생활을 강재를 생각하며 버티고 있었고, 고마움과 연모의 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통곡한다.
결 - 백란과의 일로 결심을 한 강재는 인천에 내려와서 용식의 부탁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한다. 짐을 꾸리려 자신의
집에서 강재는 백란의 비디오테잎을 보게되고 회상에 젖는다. 하지만 강재는 용식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4가지의 구조로 나눌수가 있지않을까 한다. 파이란의 스토리를 시작하는 기와 그 시작부분을 이어주는 승의 스토리, 그리고 승의 스토리에서 한층 심화된 감정을 느끼게 하기위한 이야기의 변형단계인 전과 여운을 남기게 되는 결로써 파이란의
이야기구조를 나눌수 있지않을까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배우 최민식씨가 찍은 영화중 최고의 연기력은 파이란이라고 한다. 정말 영화속에서 최민식씨는 연기가 아닌 실제의 인물처럼
강재를 연기해낸다. 이 영화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출중함에 더해 뼈대있는 이야기적 구조가 정말 우수한 명작이 되게끔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백란이라 하여 하얀난초의 뜻을 지닌 파이란의 제목을 생각하니 공자가 했던 말중 "산속에 피어있는 난초가 알아주는 이가 없다하여 향기롭지않은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극중에서의 백란처럼 또 영화의 제목처럼 영원히 나에겐 늘 향기나는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