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1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 이슬에 새벽 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 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새벽편지>(1997)-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비유적
◆ 표현
* 반복적 표현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그대의 존재를 부각시킴.
* 감정이입을 통해 슬픔의 정서를 극대화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 그대가 이미 충분히 별처럼 빛나는 존재임을 강조한 말
그대는 살아있을 때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존재였음을 인정한 말
*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을 흐르고 / 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나타낸 말
*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 그대의 죽음을 나타냄.
* 피울음 → 그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극대화한 강렬한 느낌의 시어
*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 감정이입, 그대의 죽음에 온 세상이 슬퍼함.
*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 새벽 이슬에 새벽 하늘이 다 젖었다.
→ 그대의 죽음에 세상이 멈춘 것과 같은 슬픔을 느낌을 표현함.
* 잎새에 이는 바람 → 자연 현상으로, 인생살이를 의미
* 새벽이슬 → 눈물의 이미지
* 찬 비에 젖고 → 고난과 역경의 인생
*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 순리대로 흘러가는 세상의 모습
*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고난과 역경의 현실에 고뇌하며 치열하게 살다가 그대의 삶에 대한 인정
◆ 제재 : 그대(연인, 치열하게 살다가 시대를 앞서 간 사람)
◆ 화자 : 그대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이
◆ 주제 : 그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추모
[시상의 흐름(짜임)]
◆ 1~4행 : 그대가 별이 되지 않아도 좋음
◆ 5~9행 : 그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 10~13행 : 치열하게 살다 간 그대의 삶에 대한 인정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그대'의 죽음으로 슬픔에 젖은 화자가 '그대'에게 보내는 애도의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화자는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라는 표현을 통해 치열하게 살다 간 '그대'의 삶과 영혼이 이미 별처럼 빛나는 가치고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대'의 죽음에 온 세상이 눈물이 젖고,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은 화자의 슬픔을 자연물에 이입하여 표현하고 있다.
● 부치지 않은 편지2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 1998년에 백창우씨가 곡을 만들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고 노무현 추모곡으로도 불림.
[작가소개]
정호승 Jeong Ho-seung시인
출생 : 1950. 1. 3. 경상남도 하동
학력 :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수상 : 2008년 제23회 상화시인상, 2001년 제11회 편운문학상,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작품 : 도서, 오디오북, 공연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등이, 동시집 『참새』,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모닥불』, 『기차 이야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