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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자강불식'이 남학생의 전유물은 아니다.
'후덕재물'이 오로지 여학생의 몫은 더더욱 아니다.
남자도 너그러움과 포용력을 키워 '후덕재물'해야 하고,
여성도 스스로 강해지는 노력을 기울여 '자강불식'해야 한다.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이 서로 화합해야 길(吉)하다는 게
주역의 일관된 철리(哲理)다.
만물은 음양 조화의 산물이다. 아들이라고 해서 아버지만 닮지 않는다.
아버지의 엄격함도 갖고 태어나지만, 엄마의 따뜻함도 함께 이어받는다.
그 두 성질을 함께 발양해야 조화롭고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
남성은 더욱 남성적이고, 여성은 더욱 여성적으로 발전했다면
인간계는 남인류(男人類)와 여인류(女人類)로 나뉘었을 게다.
주역은 극단을 매우 싫어한다.
이 같은 주역의 '군자' 상은 유가 철학에 그대로 스며든다.
[주역] 하늘의 행함이 강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하여 쉬지 않는다 “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 하늘의 행함이 강건하니(天行健)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하여 쉬지 않는다(君子以自强不息) ‘하루를 새롭게 바꾸며(苟日新), 매일 새롭게 바꾸고(日日新), 새로운 것도 또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又日新) ‘어려운 일은 쉬운 것에서 도모하고(圖難於其易) 큰 일은 미미한 것에서 시작한다(爲大於其細). 천하의 어려운 일은(天下難事) 필히 쉬운 일로부터 시작되고(必作於易) 천하의 큰 일은(天下大事) 필히 미세한 일로부터 시작된다(必作於細) 출처:주역 <상전>에 말하기를(<象>曰), 하늘의 행함이 강건하니(天行健)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하여 쉬지 않는다(君子以自强不息). 용이 물밑에서 정기를 기르고 예기를 축적하니 잠시 역할을 하지 못한다(潛龍勿用, 陽在下也). 용이 이 땅에 나타나니 그 은혜를 천하에 베풀었다(見龍在田, 德施普也). 하루가 끝나도록 굳게 노력하면 도를 얻는다(終日乾乾, 反復道也). 용이 비약했다가 연못에 있으니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或躍在淵, 進無咎也). 용이 하늘을 나르니 위대한 사람이 큰 일을 만들 것이다(飛龍在天, 大人造也).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불운하니 가득 찬 상태로는 오래 갈 수 없다(亢龍有悔, 盈不可久也). 하늘은 만물을 낳으나 머리가 되지 않으니 용구이다(用九, 天德不可位首也). -<주역ㆍ건괘(周易ㆍ乾卦)>편 해석: “천행건(天行健), 군자이자강불식(君子以自强不息)”은 <주역(周易)> 중의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나온다. <상전>은 괘상(卦象)의 의미를 해석했다. 여기서 천행(天行)은 하늘의 도를 말하고 건(健)자는 끊임 없는 운행을 뜻한다. 사계절이 교체되고 밤과 낮이 바뀌는 하늘의 운행은 해마다 끊이지 않고 오차도 없다며 군자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스스로 강하며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곤괘(坤卦) <상전(象傳)>에는 “지세곤(地勢坤), 군자이후덕재물(君子以厚德載物)”이라는 설이 있다. 넓은 땅에 흙이 두텁게 쌓여 있으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자신의 덕을 깊고 넓게 쌓아서 만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914년 11월 양계초(梁啓超, 1873년~1929년)는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에서 연설하면서 “천행건(天行健), 군자이자강불식(君子以自强不息)”과 “지세곤(地勢坤), 군자이후덕재물 (君子以厚德載物)”을 인용해 군자는 자신의 덕을 깊고 높게 쌓아 만물을 수용해야 한다며 ‘진정한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학도들을 격려했다. 양계초는 군자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쉬지 않고 운행하는 하늘처럼 꾸준히 노력해야지 중도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군자는 이익을 보면 나아가고 어려움이 있으면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사욕을 버리고 어려움을 피하지 말며 쉬지 않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계초는 사물을 받아 들임에 있어서 군자는 넓은 땅처럼 넓은 흉금으로 모든 사물을 다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대하고 타인은 너그럽게 대하며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양계초는 넓은 흉금으로 새로운 문명을 받아 들이고 사회를 개진하며 정치를 추진해 역사적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청년학도들을 격려했다. 후에 ‘자강불식(自强不息) 후덕재물(厚德載物)’은 칭화대학교의 교훈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