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년∼1308년)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년~1308년)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콜라 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복자이며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고 불렸다. 주요작품으로 ‘Opus oxoniense’와 ‘Opus parisiense’ 2부로 구성된 명제집 주석서가 있다.
기독교인으로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에 입회하고 옥스퍼드에서 배웠으며, 학업을 마친 다음에는 그곳에서 교편을 잡았고, 1305년부터는 파리에서 가르쳤으며, 1308년 쾰른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일어난 새로운 자연 연구의 영향과 프란치스코회의 신학적 노선 아래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아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반대하고 중세철학을 점차 르네상스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기독교의 유신론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에 대한 존재의 논증을 비판하였다. 본래 논증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거꾸로 결과로부터 원인을 증명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의 증명은 이성적인 논증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이성의 논증을 행하는 철학과 계시에 바탕을 두는 신학을 가르는 길이 열렸다. 또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개별성을 존중하여 개별성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을 완성시키는 최종적 요소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칸 신학적 성향을 따르면서 ‘사랑’을 기초로 하고 사랑의 빛으로 받은 새로운 사고의 종합을 이루었다. 의지의 우월성을 두는 주의주의를 펼쳤다. 의지는 독립적이고, 정신활동을 지배하며 인간에게 개성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았다. 프란치스칸 그리스도중심주의는 스코투스의 종합안에서 ‘육화이유’와 더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즉, 말씀은 우선적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자신 밖에서 찾아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동등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여 종래의 보편성 우위에 반대하고 개별성의 입장을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렸다. 이것은 후에 윌리엄 오컴에 의한 개별성 우위의 사상으로 발전한다. 지성과 의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직관(直觀)의 인식을 중요시하여 의지의 우위를 말하고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인식을 존중하였다. 그의 논법은 미세한 점까지 파고들었으므로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그의 독창적 사고는 스콜라 철학에 머무르면서도 토마스주의를 비판하여 새로운 철학의 길을 준비하였다.
1224년에 태어나 1274년에 숨을 거둔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지만 성향은 많이 달랐다. 둘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견지한 안셀무스와 어거스틴의 전통을 물려받았지만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진 인물들이다. 아퀴나스가 신앙 위에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했다면, 스코투스는 철학으로 신앙을 증명해 내려고 노력했다.
제일원리론은 ‘신을 가장 탁월한 존재이자 최초의 작용인인 동시에 궁극적 목적인’으로 본다.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인과론의 입장을 취한다.
스콜라 철학이 왕성했던 시기의 마지막 주자였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고 1281년 프란치스코에 입회했다. 그는 신비주의 성향으로 보이나 벤투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302년 즈음에 스코투스는 파리에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303년 6월에 프랑스 국왕과 교황 사이의 논쟁에 끼어들게 되고, 교황의 편을 들다 프랑스에서 추방되고 만다. 다음 해 다시 프랑스로부터 허용되어 프란체스코 수도회 신한 교수로 임명된다. 그 후 4년 후인 1308년 11월 8일, 무슨 원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된다.
스코투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결과에서 원인을 추적한다. 하지만 스코투스는 아퀴나스의 그러한 방식을 비판하며 원인에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과에 의해 원인을 찾아가는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한 논증을 배척하고, 원인에서 결과를 도출하는 아프리오리(a priori)한 논증을 참이라고 주장한다. 《제일원리론》은 스코투스의 플라톤적 철학 사조가 깊이 스며있는 책이다.
스코투스의 아프리오리(a priori)한 논증은 이성을 의지 아래에 두게 되는데,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이성을 최고로 두었던 ‘앎’에 대한 의미를 의지의 문제로 사유의 축을 옮긴 것과 같다. 비록 둔스 스코투스가 원하는 방식대로 철학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시기마다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사유방식은 스콜라적 방식을 따르면서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구분된 것들이 적시된다. 구분된 것들 간의 상호 배타성이 보여야 한다. 결과들은 구분되는 것의 내용을 망라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모든 결과에는 선행성과 후행성에 기초한 하나의 본질적 질서가 여전히 있다. 후행자는 선행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그것 자신에 대해 본질적으로 질서를 세우지 못한다. 질서는 위에서 부과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본질적 질서에서도 순환은 불가능하다. 만약 선행자보다 선행한다면 선행자는 후행자가 된다. 이것은 모순이다. 선행자보다 선행하는 것은 없다. 후행자는 선행자에 의존한다. 필연적으로 후행자는 선행자의 인과성에 의존한다.
인과성이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것은 목적인이 존재하며, 이것은 인과성에 의한 질서이다. 목적인은 결과를 도출한다. 목적은 인과에 있어서 제일 원인이다. 원인들의 원인이라 부른다. 목적은 인과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제일 원인이다. 목적은 사랑이고, 지향한다.
자연은 목적을 위해 행위한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목적인에 의해 그 질서가 세워진다. 진리를 실질적으로 포함하는 목적은 결론의 주체보다 더 완벽하다.
제일원리가 제일 작용인이고 제일 탁월한 자이며, 궁극적 목적이라는 점에서 3중의 수위성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열여덟 가지 결론을 증명한다.
존재하지 않은 것은 원인이 될 수 없다.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제일자이다. 그것은 작용될 수도 없고,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덕에 작용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한한 순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일자의 수위성이 불가피하다.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본성에 속한다. 만일 우주가 하나이면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곳은 유일한 제일자가 있는 곳이다. 제일 목적은 원인과 지워질 수 없다. 제일이기에 그보다 선행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가장 탁월하다. 탁월한 본성은 단순히 제일이다. 최고선의 본성은 원인과 지워질 수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질서 지우는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본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는 유일무이의 어떤 본성에는 앞서 이야기한 삼중의 본질적 질서, 즉 작용인, 목적인, 그리고 탁월성의 질서에 있어서 삼중의 수위성이 있다.
당신은 단순하고, 무한하고, 지혜롭고, 의지를 지니고 계신 분이다. 먼저 제일인 본성은 그 자체로 단순하다. 본질은 질료와 형상을 갖지 않는다. 제일 본성은 어떤 유(類)에 속하지 않는다. 최고의 본성은 그 어떤 것도 최고의 것이다. 제일 본성은 완벽하다. 어떤 지식도 제일 본성에게 우유적(우연적)일 수 없다.
“당신은 제일 작용인이십니다. 당신의 궁극적 목적이십니다. 당신은 완벽성에 있어서 최상이요, 당신은 모든 것들을 초월하십니다. 당신은 완전히 인과 지워지지 않으며, 그러므로 생성될 수 없고, 소멸될 수도 없으십니다. 당신은 필연적 존재이십니다. 당신은 지적이고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은 한없는 선이시고, 당신의 선함을 가장 자유로이 전해 주시는 빛이시며, 가장 사랑할 만한 당신에게 모든 존재들은 그것의 궁극적 목적으로 향하듯 그 자신의 방식으로 되돌아갑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당신 외에는 신이 없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지성도 하나, 의지도 하나, 능력도 하나, 필연적 존재도 하나, 선도 하나입니다.”
둔스 스코투스의 논리 전개는 이전의 안셀무스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안셀무스가 현상에서 신의 존재로 나아갔다면, 스코투스는 신 존재의 필연성으로 현상을 파악했다. 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존재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목적을 가지며, 그로 인해 다양한 인과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스코투스가 말하는 제일원리론의 핵심이다.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잇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 방식과 둔스 스코투스의 플라톤적 사유 방식은 앞으로 일어날 종교개혁의 철학적 토양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을 단지 철학서로 보는 것은 너무 작게 보는 것이다.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스코투스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의 쇠망과 더불어 일어나는 새로운 철학 사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