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일부러 '애매한' 중 제재인가… 시름 깊어지는 삼성·SK하이닉스 / 12/1(일) / 중앙일보 일본어판
바이든 행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반도체 관련 중국 제재를 추가로 내놓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놓는 마지막 대중 반도체 제재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 정부의 선택에 따라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명암이 엇갈리는 양상이 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 애매한 제재? 미국의 계산
블룸버그는 지난달 27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대중 추가 반도체 수출 규제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미국의 규제 범위는 축소되는 분위기다. 최근 기술자립에 나선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SMIC를 비롯해 화웨이의 주요 공급망이 새로 제재 리스트에 등록될 전망이지만 상당수 중국 반도체 기업은 여전히 블랙리스트 망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고객으로 둔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로비를 펼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들 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40%가 넘는다. 제재로 인해 중국에 장비를 팔 수 없게 되면 실적 급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 정부를 상대로 필사적인 로비를 펼쳤다고 한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반도체 제조장비가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한다고도 전했다.
일견 모호해 보이는 미국의 제재 이면에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등 고성능 반도체와 최종 칩 생산만 확실히 조이면 된다는 게 미국의 전략. 구형 칩과 반도체 장비를 풀면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의 AI 반도체 기업과 장비 기업에 종속될 것이라는 계산까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쿄일렉트론과 네덜란드 ASML 등 미국 이외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 메모리는 제한하지 않는다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발전을 막겠다'는 기조에 바이든 행정부와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은 일치한 상황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조준에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CXMT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CXMT는 올해 구형 D램인 DDR4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메모리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AI를 제외한 시장 전반의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CXMT와 YMTC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1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0.59% 떨어진 1.35달러로 올해 최저 수준이다. 낸드 범용제품(128Gb MLC) 역시 전달보다 29.8% 떨어졌다.
이미 '정해진 미래'가 된 중국 D램 기업들의 물량 공세를 막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양상이다. 지난 3분기에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낸 삼성전자의 실적 쇼크 역시 중국 메모리의 공세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 당일 이례적으로 "중국 메모리 기업의 구형 제품 공급 증가로 실적이 하락했다"며 별도의 입장을 내놨다. 중국의 메모리 추격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광대역메모리(HBM)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비교적 빠르게 전환한 SK하이닉스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국 AI 산업의 발전을 막기 위해 미국의 세밀한 HBM 수출 제한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의 최종동 수석부사장은 "현재 중국이 주로 매입하고 있는 2세대 HBM2와 3세대 HBM2E는 대부분 삼성전자, 일부 SK하이닉스에서 생산된 칩이다. 만약 수출 제한이 걸리면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의 공세는 한국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지만 솔직히 미국에는 생각만큼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도 이제 중국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