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4일 화요일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 1,57-66.80
우리 역시 바람잡이일뿐입니다!
언젠가 초보 수도자들의 선생 노릇을 할 때였습니다.
수도자들에게도 문화 예술 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젊은 형제들 열 명과 함께 혜화동으로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우왕좌왕 길을 헤매다가 조금 늦게 들어가게 되었는 데... 열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갑자기 우르르 들어가니, 주로 커플 위주의 관객들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본무대가 펼쳐지기 전에 한 재미있는 청년이 무대 위에 등장했습니다.
퀴즈도 내고, 선물도 주고, 참신한 개그도 펼쳐놓고, 한바탕 관객들을 재미있게 해주고는 쿨하게 퇴장했습니다.
이른바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 무대 막이 오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기쁨도 주며 주 무대에 앞서 호응을 유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분위기 메이커이지 결코 무대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연극 주 무대의 서막을 알리는 안내자 역할에 충실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경축합니다.
예수님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었습니다.
교회 전례력 역시 그의 큰 존재감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성인들은 세상 뜬 날을 축일로 잡아 기념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죽음뿐만 아니라 탄생일까지 챙겨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성인 중에서도 대성인에 속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토록 큰 인물, 대성인이 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지니고 있었던 철저한 신원 의식, 놀라운 겸손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중요한 진리 하나를 항상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결코 메시아가 아니요 메시아의 오실 길을 닦는 선구자라는 것을. 나는 절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바람잡이요 분위기 메이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점점 작아져, 어느 순간 소멸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토록 겸손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주님께서 그를 특별히 총애하셨습니다.
비록 그의 최후가 참담하고 쓸쓸했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한 그에게 주어진 상급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고통은 잠시였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남긴 불멸의 덕행은 영원히 우리 안에 남아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주인공이 아니라 바람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에게 저분이 주님이시다, 저분이 영생과 구원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시다, 하며 용감하게 외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첫댓글 오늘 우리 역시 주인공이 아니라 바람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