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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김병지 선수가 당신의 무실점 경기와 같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편집자 주-인터뷰 당시) 김병지 역시 신의손과 함께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재조명하게 만든,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골키퍼다. 경기를 하면서 본 김병지는 어떤 선수인가?
한때 같이 그라운드에서 뛰었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를 함부로 평가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장점만 얘기하겠다. 김병지는 순발력과 스피드를 활용한 스타일의 골키퍼로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대표팀에 뽑혀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니까 누가 봐도 뛰어난 골키퍼임에 틀림없다.
- 이운재와 김영광은 어떤가? 한명은 현재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이고 또 한명은 향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다.
사실 한국에 재능 있는 골키퍼들은 많다. 다만 발전을 보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 축구 선수로서의 운명은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김영광은 현재도 좋은 골키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예전에 김용대도 가졌었다. 일반적으로 골키퍼의 전성기는 서른 살에 온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골키퍼로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광은 골키퍼로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상황을 맞이해야 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쌓길 바란다.
현재 이운재가 32살인데, 그게 바로 골키퍼가 그 나이에 들어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이운재의 기량이 정점에 올랐던 시기가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잘 활용했고 잇달아 좋은 선방을 보여줬다. 이건 나만의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와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의견이다.
- 한국의 경우에는 보통 30대 중반이 넘으면 현역 선수로 가치를 잃는다. 하지만 당신은 44세까지 뛸 정도로 체력적인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떻게 체력을 관리했나?
적어도 한국에서 게으른 축구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 남미 같은 경우를 보면 프로 선수임에도 게으른 선수가 많다. 한국 선수들은 정신적인 면도 우수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부분들은 충분히 인정 해줘야 한다. 일화에서 나와 같이 뛰었던 김경범이나 울산의 김현석은 체력 관리를 잘했던 선수다.
내가 왜 오래 뛰었는지 나 역시 설명할 수 없다. 운도 좋았고 여러 복합적 상황들이 내가 뛸 수 있게 만들어 준 요인이다. 축구는 아무리 체력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예기치 않은 부상이 엄습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운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축구를 내 인생의 가장 최우선에 두고 살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축구 선수를 직업을 골랐다면 축구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데, 축구에 방해되는 것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것을 과감히 치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더 행운도 따를 것이고 나처럼 40세가 넘어서까지 뛸 수 있을 것이다.
- 일화에서 우승했을 때와 안양에서 우승했을 때의 감회가 달랐을 것 같은데?
챔피언의 기쁨은 항상 똑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화에서는 아직 내가 골키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었다. 하지만 안양에 입단했을 때는 40세가 넘은 올드 플레이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었다. ‘저런 나이 든 선수를 왜 뽑느냐? 띌 수는 있겠냐?’는 식의 의심들 말이다. 계약을 하는 상황인데 구단 직원들조차도 나를 안 믿었다. 그런데 우승을 이뤄냈으니까 내 자신에게 얼마나 뿌듯했겠는가? 그것도 2년 간 블랙 시즌을 거쳤는데. 마치 어둠 속에 있다가 광명을 받은 느낌이었다.
외국인 축구선수 최초의 귀화
-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귀화를 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귀화에 대한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많은 생각을 했다. 국적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과도 많은 상의를 했다. 하지만 연속성이라는 부분을 가장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러시아로 돌아가도 새로운 생활을 하러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축구를 정말 하고 싶었다. 그것이 귀화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또 하나는 내 아이들 때문이다. 다섯 살 때부터 10년 넘게 한국에서만 자랐고 교육을 받았으니 아이들은 한국인과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의 교육은 한국에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된 생활의 보장은 세계 어디에 가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든 러시아든 마찬가지다. 신이 아닌데 안정을 누가 보장해주겠나? 그래서 더 열심히 살고 인정받으려 노력한다. 내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이라는 새로운 조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나?
- 한국은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귀화 이후에도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나?
이방인을 좋아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잘 살고 있다. 그것이 한국이 내게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반증 아닐까? 일단 외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서는 배타적이겠지만 그 나라에 이로운 사람, 존경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배척할 리가 없다. 더 나를 챙겨주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그렇다면 귀화 이후 본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서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
귀화를 하고 나니 책임감 같은 게 생겼다. 귀화 전에는 그냥 짐 싸서 돌아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되면서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특히 은퇴를 하면서 이제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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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하고 싶어' 한국 귀화를 결심한 신의손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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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귀화한 뒤 데니스, 싸빅, 마니치가 차례차례 귀화했다. 이런 모습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마니치의 귀화는 얼마 전에 들었다. 이름이 마니산이라고? (한국말로) 마니부산, 마니인천 아냐? (웃음) 그들이 귀화하게 된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내가 대답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 친구들이 각자 판단을 하고 귀화를 결심했으니 존중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 앞선 세 선수에 비하면 작명 센스가 뛰어나다. 조광래 감독이 지어줬다고 알려져 있는데?
프로 데뷔 첫해에 팬들이 경기가 끝나면 나를 보고 신의손이라고 환호했다. 당시에는 무슨 말일지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됐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조광래 감독이 신의손으로 하자고 얘기했다. 하나의 운명과 같은 일이다.
- 일본처럼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넣자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단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쉽지 않은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충분히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사실 나에게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큰 문제로 느껴지진 않는다. 예전에 소련에 가면 100개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살았다. 물론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이곳은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돌아다니면 한눈에 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적응이 됐지만 처음에는 나를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현재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충실히 세금을 내고 있다. 진짜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면 그건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누군가가 문을 열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대표팀에도 문이 열릴 거라 생각한다.
- 국내 축구인들과의 교류는 원활한가?
나쁜 관계는 없다. 다만 나는 나이가 많다보니 선수들과 친구로 지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오히려 감독이나 코치들과 친구를 해야 될 나이다. 안양에 있었을 때도 그런 부분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어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관계 자체는 좋다. 조광래 감독이나 이장수 감독들과도 좋은 사이로 지낸다.
- 가끔씩 고향에 돌아가면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나?
일단 생활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본다. 친구들이 모이면 가장 첫 번째로 묻는 것이 보신탕 문화에 관해서다. 그만큼 두 나라는 정보가 없는 나라다. 한국과 러시아가 90년에 수교했으니까 얼마나 오랜 시간 닫혀 있었겠는가? 휴가를 얻어서 고향에 가면 여러 언론들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러시아와의 교류가 많아지다 보니까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 해 하는 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한국이 축구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월드컵 이후에는 인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들 축구를 잘 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골키퍼에 대한 신의손의 생각
- 골키퍼는 조기 교육이 필요한가?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필수적이다’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은 게 골키퍼의 조기 교육이다. 그것을 안 하니 프로에 와서도 기본기가 제대로 안 갖춰진 선수가 너무 많다. 프로에 와서 잘못된 것들을 교정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건 잘못된 습관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서다.
그렇기 때문에 우수한 골키퍼 코치가 필요한 곳은 성인이 아닌 유소년 축구다. 골키퍼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들이 중요한지를 정확히 지적해 줘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꼭 설명해 줘야 한다. 이것은 나의 스승과 선배들이 한 결 같이 해준 말들이다.
- 골키퍼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을 몇 가지 꼽아줄 수 있겠나?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체격 조건은 거기에 비하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정신력이라 할 수 있을 테고. 기술만 있으면 골키퍼는 50%의 역량은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골키퍼가 갖춰야 할 기술이라면 공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안전하게 점프하고, 효과적인 위치 선정을 할 수 있느냐이다.
- 체격 조건을 살펴볼 때 골키퍼에게 적합한 신장은 얼마라고 보는가?
될 수만 있다면야 3m가 가장 좋다. 팔만 벌리면 위 아래로 다 막을 수 있지 않나? (웃음) 골키퍼의 키는 얼마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키가 작다면 다른 장점으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꼭 따져야 한다면 185cm는 되어야 하지 않냐고 대답하고 싶다. 공중볼 쟁탈전이 날로 심해지는 현대 축구에서 그 아래로 내려가면 불리해진다. 하지만 키가 크다고 해서 꼭 골키퍼를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 한국의 학원 축구는 골키퍼 지도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골키퍼 전문 코치를 갖춘 곳이 적은데다 대부분의 지도자가 필드 플레이어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골키퍼를 교육하는 데 있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뭔가?
필드 플레이어가 필드 플레이어를 가르치듯 골키퍼는 골키퍼 코치가 가르쳐야 하는 게 옳다.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배워 온 스타일대로 남을 가르치게 된다. 그것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되는 불변의 원칙이 하나 있다. ‘요즘 골키퍼의 트렌드가 이것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골키퍼는 절대 유행을 따르는 포지션이 아니다.
내가 가르치기 편하니까, 선수가 받아들이기 편하니까 방법을 바꾼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가장 올바르게, 가장 안정되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어법’을 선택하는 건 골키퍼 포지션의 절대적 원칙이다. 이건 절대 바뀔 수 없는 문제고 거기에 맞춰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볼을 캐칭하는 방법이 나에게 맞다고 해서 틀린 방법을 가르치면 그가 성장하고 나서는 오히려 그게 독이 된다. 왜냐? 골키퍼에게는 가장 안정되고 효율적인 캐칭법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순발력을 살린 골키퍼, 킥이 좋은 골키퍼. 이런 특징을 갖춘 골키퍼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캐칭하는 원칙, 포지션 선정의 원칙, 게임을 리딩하는 부분들에 대한 원칙은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 지도자들을 만나면 ‘유럽에서는 이게 유행이다, 이게 편한거다’라는 말들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에게 ‘편한 건 안 된다, 안정된 게 더 중요하다. 맞다 안 맞다가 아니라 효과적인 것을 선택해야 한다’라는 말을 꼭 하려고 노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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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한국 유소년 골키퍼 육성에 힘쓰고 싶다는 신의손 ⓒFC서울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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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야신과 다사예프 그리고 최근의 체흐까지 동구권에서 세계적인 골키퍼가 계속 배출되는데 그곳의 골키퍼 육성 시스템은 어떤가?
한 나라의 축구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알아보려면 그 근간을 살펴보면 된다.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모든 도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단추를 얼마나 잘 채우느냐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상의를 똑바로 입을 수 없는 것처럼 어려서 구멍이 생기면 최상위의 축구에서도 구멍이 생긴다. 동구권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들은 그런 부분을 잘 파악하고 지도하고 있으니 좋은 골키퍼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다.
남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남미, 특히 브라질은 최근까지만 해도 세계에 내세울 골키퍼가 없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유럽의 훈련 방식을 접목시키고 유럽을 다녀간 지도자들이 골키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좋은 골키퍼가 배출되고 있다. 디다(AC 밀란)의 경우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브라질 골키퍼다. 하지만 이미 10대 때부터 유럽에 와 있었으니 그는 유럽이 키운 거라 봐야 한다.
- 최근 골키퍼 클리닉을 열었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은 셈인데 축구 철학도 궁금하다.
무슨 일이든 새로 시작하면 다 어려운 법이다. 제로 상태에서 시작했으니까 더더욱 그렇다.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항구적으로 사용하는 운동장이 없으니까 축구 교실을 꾸준히 운영해 나가는 데 애로가 있다. 축구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싶은데 그것도 힘들다.(편집자 주-신의손 축구교실은 오는 6월 2일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자세한 정보는 www.godhands.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축구철학은 축구는 계속 항상 진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키퍼뿐만 아니라 축구의 모든 것이 발전되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한 단계 수준을 올려놨으면 계속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지난 한일 월드컵 스페인 전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의 선방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상대가 차기 전에 앞으로 움직인 부분을 놓고 일각에서는 반칙이라는 의견이 있었다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이미 결론이 난 사실이잖나. 내가 심판을 판정해야 하나? 아니면 이운재에게 뭐라고 할까?(웃음) 결론을 얘기하면 위반은 분명 있었다. 앞에 나와서 막는 건 반칙이 맞다. 그런데 이운재가 다소 그런 스타일이다. 올 시즌만 해도 컵 대회 부천 전에서 페널티 킥 상황에서 이운재가 앞으로 움직여 심판이 다시 차게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월드컵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게 처음은 아니다. 결국은 심판 성향의 문제다. 월드컵 때의 심판은 반칙으로 보지 않았고, 부천 전 때 심판은 반칙으로 본거다.
- 한국 골키퍼들의 약점은 뭐라고 보는가?
일단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어렸을 때 교육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 보니까 테크닉이 잘못 몸에 배인 것이다. 그리고 프로팀에 올 정도면 전술적 이해가 수반되어 경기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런 점이 부족하다.
기술과 관련해서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나는 다리로 효과적인 방어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다리 방어가 거의 전무하다. 골키퍼가 다리로도 잘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아마 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여줬을 거다. 그리고 먼저 넘어지는 부분도 지적하고 싶다. 골키퍼는 공격수의 움직임에 속지 않고 끝까지 따라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좀 부족하다.
- 신의손이 생각하는 역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를 5명 정도만 뽑아준다면?
5명은 어렵고, 3명만 말하겠다. 우선은 야신(구 소련), 다음은 슈마커(서독), 그리고 피터 슈마이켈(덴마크). 이 세 선수는 굳이 내가 아니라도 전 세계 축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선수들이다. 물론 개인 견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저 세 선수가 가장 많이 꼽히지 않을까 싶다.
- 한국 대표팀 코치에 대한 욕심은 없나?
한국 사람이니까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현재 한국은 유소년 단계에서의 골키퍼 지도가 열악하다. 여기를 고치지 않고 간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은 뒤 대표팀에서 초청 한다면 당당히 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성과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부끄러워 갈 수 없을 것이다. 일단은 유소년 축구에 전념을 할 생각이다.
- 한국에 축구문화가 척박한 시기에 와서, 10여 년간 한국 축구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한국 축구는 그 빠른 성장이 눈으로 보인다. 대표팀 얘기만이 아니다. K리그도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내가 처음 한국에 도착 했을 때의 축구와 현재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난다. 내말이 맞지 않나? (웃음)
- 마지막으로 당신을 아끼는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주길 바란다.
(한국말로) 오랫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 축구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러시아말로) 나를 평가해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더 할 얘기가 없다. 지도자라는 새로운 인생을 통해 그들이 내게 보내준 희망을 성공으로 증명하고 답해주고 싶다. 경기를 뛰고 있는 사람에게 작은 응원 한 마디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원이 되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고마운 존재들이다.
- 나 역시 당신 팬이었다. 한국 축구라는 큰 범주 안에서 지도자 신의손이 펼쳐갈 성공을 응원하며 지켜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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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호정 | |
첫댓글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은 그은 큰 인물이십니다 신의손님~!!
신의손..제가 왠만해선..용병들을 국내선수보다 좋아하질 않는데..신의손선수 만큼은 정말 너무나 좋아했더랬죠..미친듯이 막아내는 그 선방들..눈에 선합니다..이제 유소년골키퍼 육성에 힘쓰신다니..한국의 골문을 지켜낼 우수한 수문장들을 길러내시길 바라겠습니다..화이팅!! ^^
그... 용병 골키퍼 규정이 사리체프 시절에 너무나 잘해서 생겨버렸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
제발~국대 코치로 와주세요
아 신의손 ㅜ.ㅜ 성남와서 코치하심 ㅜ.ㅜ
신의손!!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
신의손 한국에 야신 100명만 만들어 주오...
신의손처럼 이름을 지어야지... 다른 귀화 선수들은... 쩝...
저도 이 분에게 강습 받고 싶다는.
아...신의손..멋져~
말을 조리있고 멋있게 하네요...^^;;
한국은 유소년 단계에서의 골키퍼 지도가 열악하다. 여기를 고치지 않고 간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은 뒤 대표팀에서 초청 한다면 당당히 갈 것이다 ==> 이말 너무 멋지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