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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번째 이야기가 아주 재미가 없었던지 반응이 별로 였네요.
이번 이야기도 별 중요하지도 않은 씨씨껍절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워 볼까 합니다. 실은 엇그제 거의 다 작성를 했는데 마지막 키를 잘못 누른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자동 저장), 갑자기 다른 게 생각나서 하다가 다 날라가 버렸네요. 덕분에 이번은 앞에 쓴 글보다는 빠르게 쓸 수 있겠지요. 여기서도 편의상 존칭은 생략하고 써 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것들은 정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너무 믿지 마십시오.
1) 우리는 왜 장사 하는 사람을 상인이라고 하는가?
어떤 분들은 왜 뻔한 것을 가지고 말하는가 하겠지. 장사商에 사람人이 상인 장사 하는 사람 아니냐고. 그러면 장사商자는 어디에서 왔는가? 중국의 역사를 보면 하, 상, 주, 춘추 전국, 진, 한으로 왕조가 이어지는데 (夏,商,周,春秋戰國,秦,漢), 하나라는 요, 순, 우임금이 통치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하 왕조 시대에 황하강 이남 지금의 하남성 상구 (商丘) 지역에 상족인들이 살았다. 그들은 물건을 거래로 부를 축적 하여, 상족들은 상 탕왕 시기에 하왕조의 걸왕을 무너 뜨리고 왕조를 세우는데 이것이 상 왕조이다. 상 왕조는 기원전 11세기까지 약 600년을 유지 하다가 새로운 주 왕조의 주무왕에게 멸망하게 된다. 상 왕조가 망하면서 그들은 귀족 관료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농사 지을 토지도 당연히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유랑민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그들이 본래부터 잘하던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즉 떠돌아 다니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나라 사람들을 상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후 문헌에 상인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춘추 전국시대에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가 쓴 오두 라는 책에 나온다고 하는데 첫째가 학자, 둘째가 언론 논객, 셋째가 무사, 넷째가 의사, 다섯째가 공상 백성 이었다. 즉 노예신분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상인이 대접 받는 시절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우리에게도 그런 사상이 박혀있지 않았는가? 사실 나도 장사꾼이지만 .......
2)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장사꾼 이야기가 기왕 나왔으니 이야기 하는 김에 장사에 관련 된 것 하나 더해보자. 내가 사회 생활을 영업사원 부터 시작 했는데 제일 먼저 배운 말이 진상이다. 진상의 뜻은 앞뒤 문맥을 봐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대략 적으로 고집이 세고 자기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남의 입장을 존중해 주지 않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즉 자기 이익을 챙기고 남에게 손해 내지는 불편을 끼치는 장사꾼 내지는 사람을 일컫는다. 정말 진상이라는 것이 중국에서 원래 그런 의미일까? 사실 발음도 jin shang 으로 흡사한데 원래 晉商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晉商이란 명청 500년간 산서 지방의 상인을 일컫는다. 진상은 역사적으로 광동의 조상(潮商 )과 안휘성의 휘상(徽商)과 더불어 중국 3대 상방(商幇)을 이룬다. 진상은 신의와 단결을 모토로 북쪽의 소금과 밀,목재등을 남쪽의 비단과 쌀등을 교역 하면서 부를 축적 하였고 특히 그들은 일찍이 금융업에 진출하였다.우리가 중국 무협지나 무술 영화에서 보는 전표가 그들이 사용하던 것들로 금융 자본 그룹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호 (票號)와 남장 (錢庄)을 합쳐서 진상의 양대 힘이 되었다. 물론 가장 큰 후원자는 예나 지금이나 중앙정부 황궁의 물자를 조달하는 역할을 한 것이 막강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청말로 오면서 황궁과 결탁 한 것이 진상이 쇄퇴 하게된 주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봉건 지주제에 근간을 둔 경제 운용 방식은 봉건 제도가 망하면서 같이 쇠락 했지만 아직도 중국에는 진상이 남긴 많은 건축물들이 있고 현대의 중국 경제학자들도 진상을 연구 재조명 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진상이란 부정적인 이미지 보다 긍적적인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진상은 진짜 상인 정도로 봐주면 어떨런지...... 나도 이 기회에 진상이나 되어 볼까나.
3) 중국에서 내가 먹어 본 최악의 음식들은 어떤 것들일까?
중국에는 정말 물산이 풍부하고 기온도 한대부터 열대까지 늘리 분포되어 있어 나지 않는 것이 없고 먹지 못하는 것이 없다.그래서 4대 요리니,8대 요리니 거기에 더하여 108가지를 몇일씩 먹어야 하는 만한전석 요리도 있다. 여기서는 좋고 맛있는 요리는 남들이 드시라고 하고 각 지방을 돌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 요리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먹은 최악의 요리가 남에게는 평범하거나 아님 맛있는 요리가 될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첫째, 북경에서 먹어 본 蛇皮凉拌 이라는 요리이다. 보통 뱀요리를 시키면 요리사가 산 뱀을 가져와서 눈으로 산 놈을 확인 시켜주고 가져가서 요리를 한다. 맨먼저 나오는 것이 고량주에 섞은 뱀피술이다.선홍색으로 색상은 참 곱다. 한 잔씩 하고나면 곧이어 진녹색의 쓸개주가 나오는데 다같이 사업의 성공적인 합자를 위해서는 기꺼이 먹는다. 뱀 몸통 요리는 토막을 쳐서 요리하거나 아님 살을 별도로 발라 볶음요리를 하고 뱀뼈는 탕이나 튀겨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오는 요리가 뱀껍질 무침이다. 요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껍질을 삶거나 튀겨서 무침을 하면 좋겠는데 영양소 파괴로 인하여 생 껍질을 채로 썰고 붉은 무 또한 채썰고 고수를 미나리 처럼 같이 생으로 무친 것이다. 뱀껍질이 무,샹차이와 함께 무쳐져서 알록달록한게 보기는 그럴싸 하다. 중국 친구는 옆에서 생뱀 껍질이 눈에 좋다고 귀한 음식이니 많이 먹으라고 한다. 그렇게 좋으면 지나 많이 먹을 일이지 나 한테 왜 권해.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는 순간 그 미끄미끌 함이란 그리고 뱀 비린내가 함께 전해오는 그 오묘한 맛을 오랫동안 기억해야만 했다. 물론 중국에서는 오리대가리,오리혓바닥, 개구리 뒷다리, 오소리 통구이,야생 너구리 탕, 그것도 조금 지나면 황소 개구리를 내장째 토막내서 그냥 튀겨서 먹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 비린내가 나는 듯해서 기분이 찝찝하다.
둘째, 산동성 해양이라는 곳인데 沙蚕韭菜伴 요리이다. 원래 산동 사람들이 우리가 볼 때는 좀 이상한 것을 잘 먹는다. 불가사리를 쪄서 먹고, 매미가 반쯤 되다만 굼뱅이를 튀겨 먹고, 여름에 날라 다니는 풍뎅이를 꼬치 해먹고, 입에 넣고 물만 쭉 빨아 먹는 산누애도 쪄서 먹고, 채소밭에 기어 다니는 배추벌래도 튀겨 먹는다. 이런 음식들은 고단백 영양식으로 맛은 고소하다.물론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니 맛있다고 해서 과식하면 안된다. 또 체면치레로 아주 잘 먹었다고 하니 그 담에 만날 때는 진짜 온갖 이름도 잘 모르는 벌래로 한상을 받기도 했다. 아마 산동에서 나는 벌래는 다 먹는 모양이다. 또 주제에서 벗어나 삐딱선을 타는데 이게 내 천성인지 모르겠다. 암튼 해양의 특별식은 일년 중 음력 2월 1일에서 15일 사이에만 먹는데 그 기간에는 바닷 갯지렁이가 뱃속에 아무것도 없는 시기라고 한다. 갯지렁이를 부추와 기름을 넣고 약간 데쳐서 무친 요리이다.큰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지렁이 색상이 자주색으로 부추의 녹색과 칼라 매칭은 훌륭하다. 항상 귀한 음식은 귀한 손님부터라서 첫 젓가락을 잡는데 지렁이가 토막이 아니라 길게 젓가락을 딸려 올라 오다가 고무줄 처럼 툭 끊어진다. 그 맛은 신맛과 쓴 맛의 중간으로 쌉시근하다. 처음에야 그렇지만 계속 귀한 음식을 권하니 안먹을 수도 없고 맨 정신에 도저히 못먹어서 덕분에 고량주를 엄청 먹었다. 가끔씩 중국 술을 많이 먹으면 한번씩 토하고 나면 시원한데 그날은 토하지 않을려고 억지로 참는게 더 힘이 들었다. 귀한 음식을 먹어서 아깝게 토할 수도 없었지만 만약에 토하는데 지렁이라도 중간에 잇빨 사이에 끼기라도 한다면 보기가 그렇지 않을까 해서다. 그 다음부터는 그 지방을 갈 때는 필히 음력 2월초는 피해서 출장을 간다.
셋째, 松仁蚂蚁 요리이다. 이 요리는 강소성 내륙으로 강음 진강 지역 요리이다. 원래 강소성 지방이 蘇菜 라해서 중국 4대 요리에 들어가며 음식 본래의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 담백한 요리이다. 간단히 예를 든다면 바로 근처에 우리가 아는 양주 볶음밥이 있으며 소금물에 삶은 닭요리가 유명하고 태호 근처에는 옹기 비슷한 사기냄비에 2박 3일 고은 민물고기 곰탕도 유명하다. 그런 거야 다들 먹어 봤겠지만 생새우를 고량주에 넣어 취하게 만들고 거기에 식초를 조금 넣어서 먹는 새우도 별미고, 계란을 병아리로 반쯤 부화 시켜서 날개와 대가리가 있고 다리도 반쯤 생긴 음식도 있고, 물론 먹으면서 계속 털은 밷어야 한다. 양고기를 먹으러 가면 양 눈알만 별도로 한접시 다먹는데 작은아이 주먹만하다. 자라를 탕으로 먹지않고 그냥 토막쳐서 볶아주는데 등껍질에 붙은 물렁뼈가 고소하기도 하다. 가끔씩 비싼 장어대신 뱀과 장어 그리고 미꾸라지 중간쯤 되는 黄鳝 이것이 정력에 좋다고 많이 먹는데 시장에 가보면 고무통 안에서 대가리를 꼿꼿이 들고 있는 폼이 꼭 뱀 같지만 미꾸라지라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오늘의 주 요리는 잣과 개미의 볶음 요리로 맛이 약간 씬맛이 나지만 잣의 고소함에 보기도 먹기도 나쁘지 않다. 관건은 맛있게 먹고 하루를 자고 담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변기통이 온통 새카맣게 되어 있었는데 그게 어제 먹은 개미 대가리가 소화가 되지 않고 그냥 나온 것이다. 그게 물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서 다니니 아마도 수백마리는 족히 될성 싶었다. 개미들에게 미안함마져 드는 순간이었다.
넷째, 15 년도 더 전에 상해에 있을 때이다. 그 당시는 상해에서 나름 술과 유흥에 빠져 있을 때로,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챙겨먹고 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고 정신 없이 살던 때 이야기이다. 물론 몸이 걱정이 되서 하루는 상해에 있는 중의대학 한의사를 찾아가서 보약을 지어 달라고 했다. 유명한 한의사가 하는 말이 원래 한약이란 몸의 어느곳이 허하면 그 허한 곳을 보충해 주는 것이 약의 효능이지 멀쩡한 곳을 추가로 보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 이후로는 한국에서도 보약은 먹지 않는다. 암튼 하루는 밥을 해주시던 아주머니께서 몸에 좋은 약을 줄테니 돈을 달란다.그래서 그분 한달 월급 정도의 돈을 드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알록달록한 테라마이신 같은 캡슐을 몇백개 건내 주셨다.뭐냐고 물어보니 그냥 몸에 좋다고만 하시고 아무 말씀이 없어서 그냥 냉장고에 쳐박아 두었다. 얼마후에 다시 생각이 나서 진지하게 물어보니 인육 캡슐 이라고 했다.갑자기 냉장고에서 귀신이 보이는 것 같았다.황급히 아주머니를 나무라고 버리라고 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아주 귀한 약이라서 자기 남편을 줬다나, 허참. 당시에 한국에서는 이슈화가 않됐지만 연변이나 길림에서 알음알음으로 인육이나 사람 태반이 거래되던 시기였다. 중국에서 별의 별 것을 다 먹었지만 인육을 안먹은 것은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다.
4) 하룻 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이 중국에도 있을까?
왜냐구? 만리장성은 중국 춘추 전국시대이전부터 변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축조되기 시작해서 그 길이는 21,196km 라고 한다. 나머지 장성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인터넷을 치면 쫙 나오니 생략하고 제목에 충실하자. 우리가 현재 쓰는 의미는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가 있다' 라고 일반적으로 쓰는데, 원래의 뜻은 조금 다르다.간단히 구전 설화 내용을 본다면 시대는 진시황 시대로, 한 처녀가 혼인을 한지 얼마 되지않아 남편이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부역에 참가하고 여러해를 돌아오지 못했다. 하루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나그네가 묵어가게 되었는데 색시가 이쁘서 하룻밤 욕정을 풀려고 하니 부인이 먼저 요구 조건을 내는데, 앞으로 같이 살아 줄테니 마지막으로 옷가지와 서찰을 남편에게 전해 주고 오라고 하길래 약속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다음날 그 남자는 여자의 심부름으로 성 축조 현장을 가니 감독관이 하는 말이 남편이 나올려면 잠시라도 누가 대신 교대 근무를 해야 한다기에 대신 들어 가고 남편이 나왔다. 남편이 나와서 보니 아내의 편지에는 내가 당신을 빼내기 위해서 어제 저녁에 그 남자와 같이 잤는데 허물을 덮고 같이 살려면 다시 들어 가지말고 그냥 집으로 오고 아니면 다시 현장으로 들어 가라는 내용 이었다. 남편은 냅다 도망쳐 와서 마누라와 행복하게 살았고 대신 교대 근무하러 들어간 남자는 하룻밤 욕정 때문에 평생을 성을 쌓았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속담 설화 뜻은 비록 잠시라도 마땅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의미라고 한다.즉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자 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는 이런 고사는 없고 孟姜女 고사가 있다고 한다. 이 고사도 지방마다 조금씩 틀리는데 대표적인 것 하나만 간략하게 보자. 때는 진시황 시대이고 맹강녀라는 이쁜 처녀가 결혼 한지 3일만에 남편이 성 축조 하는데 강제 노역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남편은 성 축조에 끌려가서 추위와 굶주림, 강제 노역에 죽고 말았다.그리고 그 시체는 장성 담장 아래 묻어 버렸는데 맹강녀는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남편을 찾아 왔으나 남편은 죽고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 아래에서 3일 밤낮을 우니 갑자기 성벽이 10리나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그 아래 많은 시체가 나왔는데 남편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떨어 뜨리니 다른 사람은 피가 굴러 떨어지는데 한 시체만이 피를 받아 들이므로 남편을 찾았다. 그 당시 맹강녀가 너무 이쁘므로 진시황이 눈독을 들여 데리고 살려고 했는데, 맹강녀가 요구조건을 들어주면 진시황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 요구 조건은 남편을 후하게 장사 지내 주고 ,진시황이 직접 문무 백관들과 제를 올려줄 것과 마지막으로 3일의 휴가를 달라고 해서 진시황이 다 들어 주었다. 그러자 마지막 3일날에 남편을 그리며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여기에는 뭐 특별한 교훈은 없다. 만리 장성을 축조 하는데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더해질 뿐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접겠습니다.
더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한다고 혼나기 전에 말입니다.
첫댓글 재미있습니다...
중국에서 4년넘게 살았어도 향차이는 아직도 적응이 안되네요.....ㅠ
다들 그러신 분들 많더라구요.
많은 경험 부럽습니다...
아직도 돌아 다니는데 안 좋은 것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글~잘보고갑니다^^
용기를 주셔서 조금 더 올려도 될까요?
해박하시고 이야기가 구수합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 경험을 하고 싶네요.
제가 역마살이 끼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좋지는 않더라구요.
책을 쓰셔도 되겠어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감사 드립니다.
좋네요
잘 보고갑니다
처음대하는글들인데 재미지내요
재미있네요~
대단한 나라입니다
ㅎㅎㅎㅎ...대단한 분이십니다.
재밌습니다.ㅎㅎ
다만, 카페글은 행간나누기가 좀 간결했으면 하는데...
차이나카페니 차이나게 하셔요..ㅋㅋ
ㅋㅋ 만리장성재미있어요
흐흐 ,, 저도 정말 느껴지네요 ..
중국음식 적응이 잘 안되죠^^
그렇게 맛없나요??
중국에 대해 많은 호기심이 생깁니다..
재밌어요. 내용이 많은데도 꼼꼼히 읽게 되네요.
잘 보고갑니다~~
많은 음식 경험을 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