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시편 45,10-17)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맞아 화답송을 집중해서 묵상하겠습니다.
“능숙한 서기의 붓”(시편 45,2)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편 45장의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임금의 혼인예식을 보고 노래를 지었는지 밝히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에 비추어볼 때 솔로몬과 여인들에 관한 노래이거나 아합 임금과 혼인한 페니키아 여인 이제벨의 이야기가 핵심주제인 듯합니다. 솔로몬과 아합은 이방인 여인과 정략혼인을 한 뒤에 그 여인들의 콧소리와 어깨 흔들음을 못 이겨 우상숭배를 했던 것 때문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 임금과 혼인을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을 계몽적인 노래로 지어 민중에게 유포시킨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읽혀진 화답송은 시편 45장의 셋째 부분(9-16절)으로서 화려한 혼인예식과 축제를 부분적으로 묘사하는데 등장인물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임금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이웃나라 임금(제왕)의 딸들, 그리고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한 왕비가 임금의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혼인예식에 여인들이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일부다처제의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임금의 오른쪽에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하고 서 있는 왕비는 시편에서 벌어지는 혼인예식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시편 저자는 임금의 아내가 될 여인을 딸(11절)이라고 부릅니다. 왕비가 임금(남편)에게 “나의 주인”이라 부를 수는 있을지라도 임금이 자기 부인(왕비)이나 부인이 될 사람에게 “딸”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왕비”와 “딸”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와 혼인하려는(세례를 받으려는) 우리에게(2코린 11,2) 승리의 화관을 씌워주려고(2티모 2,5) 기다리시는 성모님을 상징합니다.
시편 45장의 핵심 내용은 11절에 있는 네 가지 중요한 동사들입니다.
“들어라”는 유다인들이 매일 새벽에 외쳐야 하는 말로써 “내가 오늘 너희의 귀에 들려주는 규정과 법령들을 들어라. 이것을 익히고 성심껏 지켜라.”(신명 5,1; 4,1)라는 뜻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의 왕비가 되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솔로몬의 그 많은 부인들과 아합의 부인 이제벨처럼 자기가 친정에서 섬기던 신들을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비가 되려면 먼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며,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아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의 주님께서 이 세상에(이스라엘과 함께) 이루어놓으신 업적을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집회 33,15). 둘째,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행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또 믿으라는 것입니다(토빗 14,4; 에제 12,25). 셋째, “네가 더럽히지 않은 자리가 어디 있는지”(예레 3,2) 확인해보라는 것이며, 이제껏 저지른 악하고 역겨운 짓들을 돌아보라는(에제 8,9)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임금의 부인, 왕비가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귀를 기울여라”는 왕비가 되거들랑 “가난한 이의 살길을 막지 말고 궁핍한 눈들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집회 4,1)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 임금의 아내가 된 이제벨은 아합의 왕권을 빙자해서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았습니다(1열왕 21장). 그래서 이방인 여인으로서 왕비가 되려면, 이제벨처럼 하지 말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는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임금을 “내 남편”(호세 2,18)이라 부르기 원한다면, 친정의 나라는 물론 거기서 섬기던 낯선 신들을 모두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아합 임금의 어리석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왕비가 될 이방인 여인은 친정 국가와의 모든 관계(정치, 종교, 경제)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친정 나라의 신을 그대로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던 예식을 끌어들여 주님을 섬기게 함으로써 낯선 신들 때문에 주님께서 질투하시게 하지 말고, 역겨운 짓으로 그분을 분노하시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벨의 친정 국가들의 여인들과 부자들이 뇌물을 들고 온다는데(13절), 이는 왕비가 되어서 친정 국가에게 이스라엘의 온갖 경제적 이권을 넘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임금과 이방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책봉되기 위해서라도 친정 국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17절).
혼인한 여자들이 화가 나면, 가끔 “이 집안사람들은 이해가 안 돼!”라고 말을 합니다. “이 집안이라고 하는 그 집안은 누구의 집안입니까?” “자기 집안 아닙니까?” “이 집안사람들은 이해가 안 돼!”라는 표현 속에는 “나는 아직도 남편의 집안에 동화되지 못하고, 친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우상숭배와 직결되고,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이방인 여인과 혼인한 임금들은 여인의 콧소리와 어깨 흔들음 한 번에 신당을 하나씩 지어주었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바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게 했습니다(1열왕 18,21). 아합 임금의 아내 이제벨의 바알신 숭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엘리야가 그토록 투쟁을 했건만, 끝내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직을 빼앗기고 맙니다(1열왕 18-19장).
이렇게 중요한 네 가지를 말한 뒤에 “엎드려라”(12절) 합니다. “엎드리다”는 마치 다윗의 심부름꾼들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다윗 어르신께서 부인을 아내로 삼으시려고 저희를 보내셨습니다.”라고 말을 했을 때 아비가일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1사무 25,40-41) 것처럼 다위 임금의 청혼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에서 교배례(交拜禮)가 있는데 남자는 양(陽: 홀 수)이기 때문에 일배(一拜)를 두 번, 여자는 음(陰: 짝 수)이기 때문에 재배(再拜)를 두 번 합니다(경기도 화성에서는 신부가 세 번, 신랑은 두 번과 반절; 전북 순창에서는 신부는 재배, 신랑은 일배). 절하는 숫자의 차이는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혼인 승낙의 의미로 엎드려 절을 하는 것으로서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입니다.
시편 45장의 저자는 이스라엘 임금이 청혼한다면(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다면) 이방인 여인은 그 혼인을 승낙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을 잘 보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아야 하며, 혹시 왕비가 되더라도 거들먹거리거나 남의 것을 착취하지 말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친정의 정치경제적 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 있다면, 그때에 임금의 청혼에 승낙하기(세례를 받기) 위해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해서 마리아처럼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되어 왕궁으로 들어가려면”(16절), 성모님처럼 승천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시편 45장의 저자가 말하는 네 가지 조건을 먼저 갖춘 다음에 하느님께 엎드리라고 합니다. 결국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사랑의 짝이 된 자신의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이십니다. 결국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을 잘 보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례받기 전에 지니고 있던 악습을 끊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신앙인들을 탄생시킵니다. 마리아께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준 하느님의 받아들여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아주셨듯이, 교회는 말씀을 들려주어서 구원의 길로 새로운 신앙인들을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앙인을 탄생시키는 교회는 예비신자들이 하느님께 엎드릴(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위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려주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이 무엇인지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하고, 세례받기 전에 지니고 있던 모든 악습과 우상숭배를 끊어버리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해서 “들어라, 보아라, 귀를 기울여라,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그리고 엎드려라”라는 말씀을 잘 되새겨 봅시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