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가시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그중에 625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서 조금 해보자면....
전쟁이 나고 할배는 대전인가 사셨고 아버지는 서울 친척집에 와있다가 전쟁이 났는데 피난을 안가고 혼자 친척집에 있으면서 꽈배기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하면서 혼자 버티시면서 보니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는 유화책을 쓰면서 상당히 부드럽게 대하더래. 그래서 피난 안가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7일정도를 북한군이 진주하고 있다가 갑자기 진군하더라는거야. 지나고나서 알게 되었지만 7일정도 서울에서 머문 이유는 박헌영의 남로당이 서울만 차지하면 된다고 했다는 거야. 그러면 지방에서 남로당이 들고 일어나 자연히 적화가 될거라고 했다는데 7일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으니 다시 남하를 시작한건데....그 사이에 우리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트루만 대통령을 설득해 달라고 미국의 지인들(프린스턴 대학 동창들)에게 전화로 계속 설득을 했고 그 지인들이 미국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라 이승만 대통령의 말을 듣고는 트루만을 설득하게 되었고 그래서 전혀 관심도 없던 트루만이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군으로 참전하게 된건데....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 대표가 늦는 바람에 거부권 행사를 못했고 그래서 유엔군의 깃발아래 100여개 국가가 참전을 하게 된거고 듣도 보도 못한 조그만 나라에 와서 피를 흘리며 싸운거지. 근데 아버지는 그때 서울에 있다가 어느날 꽈배기 팔러 나갔는데 북한군이 (어이~~~동무 나 좀 보자우)하더래. 그래서 골목길로 해서 죽어라 도망갔고 그때 멋모르고 따라갔으면 인민군이 되서 낙동강 전선을 보내졌을거라는 거야.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떡하셨냐고 물으니 혼자 걸어서 대전 할배집에 가있다가 다시 혼자 나와서 광주 보병학교 들어가서 훈련받고 있는데 먼저 소위 임관하고 전선에 배치된 선임들이 어제 갔는데 오늘 전사했다고 연락이 오더란거야. 그래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열심히 훈련받아서 소위 계급장 달고 가서 또 죽었다고 연락오고...그러다 아버지가 임관하고 배치되었는데 최전선이 아니라 병참부대에 배치가 되었다는거야. 아마도 서울대생이라 배려가 있었던거 같다고 하시더라구. 그래서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하셨다고 하시던데....하여튼 아버지 이야기 들으면서 생각난건 아버지가 그때 이상하게 되어서 돌아가셨다면 어머니도 못만나고 나는 태어나 보지도 못했을거고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거고 지금 이렇게 자판 두둘기지도 못할거라는 생각이 드는거지. 그러니 한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가 그냥 별게 아니라 참으로 중요한 것이란 말이야. 그러니 지금도 625때 전사한 군인들 유골을 찾아내서 한 분 한 분 정성껏 모셔다 각 나라의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있잖아. 참 잘하는 일이지. 나라의 명을 받고 의로운 전쟁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오래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유란 말이지.
첫댓글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많을거야.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조상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G8이 된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말이야.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이 죽어라 고생하시면서 벌어서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하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나만해도 대학 다닐 때 남아수독오거서가 되었거든. 대학 자취방에서 새벽에 나와서 도서관 자리다툼이 심해서 자리잡고 앉아서 책보다가 수업 들어가고 또 도서관에 가서 책보다가 학교식당에서 3끼 해결하고 자취방 가서 놀다가 자고 했는데 그중에 고시1차 패스한 친구가 있었어. 그래서 나도 해보자 해서 헌법학개론 민법 같은 책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이게 전부 5공헌법이라 좀 그렇더라구. 그래서 읽어보긴 다 읽어보고 다른 친구가 고시공부 하겠다고 해서 다 주어버리고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관심분야 책을 보았는데 의학서적도 보고 역사소설책도 보고 그러면서 4년 보내고 나니 대충 남아수독오거서가 되더라구. 졸업하고 집에 와서는 수의사를 따라 다니면서 수의를 익히고 목장준비를 하느라 목장에도 가 있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1987년 대선과 국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뛰어다녔고 하여튼 나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목장하면 고생할까봐 못하게 말리셨고 그래서 내꿈을 접어여 했지만 그대로 3당합당 초안을 써서 보낸 게 채택이 되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나는 나대로 최선에 다해서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불행히도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의 연장연상에서 전라도 사람에게 밉상이 베겨 힘들게 보낸 20여년 세월이 아쉬울 뿐이지. 그 20여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야. 내가 그 20여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또 뭔가를 이루어 냈을건 데.....하는 아쉬움이 자꾸들어. 그래서 내가 정치권에 관심은 많지만 가까이 하긴 싫은거야. 가끔 글로 할말 해놓고 보면 정치권에서도 보는지 내가 한 말 비스므리하게 흘러가더란 말이지. 보는건지 안보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안본다 하여도 내가 말한대로 흘러가는걸 느끼면 그래도 내 정견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더라구. 하여튼 우리 나라는 다른거 없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하기는 힘들고 각자의 노력으로 나라의 인재가 되어서 자꾸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면서 밀고 가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어보여. 우파 좌파로 갈려서 싸울게 아니라 잘못된 걸 찾아내서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하고 바로잡아 나가면서 과거를 온고이지신 해야 한다는 말이지. 이게 안되면 맨날 정권 바꿔도 그 타령에서 끝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정치인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잘해줘야 한다는 말이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 나라는 발전해도 맨날 분쟁은 계속 터져 나오니 말이야. 정치 돌아가는 거 보고만 있어도 이젠 힘들어. 내가 이젠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거 같단 말이지. 흐흐흐
그냥 이대로 15년~20년 더 살다가 가느냐....아니면 돈을 좀 만들어서 내가 어린시절부터 꿈꾸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살다가 가느냐...이거이 문제란 말이지. 솔직히 이대로 15~20년 살다 가고 싶진 않아. 돈 만들어서 멋진 농장을 만들어 시설 갖추고 사람 많이 안 쓰고도 편안하게 농사 짓고 소 키우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이지. 그걸 하기 위해서 1985년에 컴터학원에서 프로그램도 배우고 했지만 그때 원장에게 물어보니 컴터로 사료주고 물주고 하면서 개체관리 하는게 가능하냐고 물어본 기억이 나. 시설 하우스 짓고 채소 재배하는 것도 다 컴터로 제어가 된단 말이지. 물론 그렇게 하려면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갖출거 다 갖추면 사람이 거의 필요가 없이 그냥 카메라로 보면서 컴터로 관리가 되니 인건비가 안들잖아. 감가상각이 생겨도 그게 오히려 비용이 덜 든다는 말이지. 그리고 사람 부리는게 쉬운일이 아니잖아. 비위 맞추기 힘들어서 난 그런건 못해. 그냥 혼자 하는 일이 제일 잘 맞더라구. 원래 혼자인 시간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냥 혼자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내 몸 상태에 맞춰서 일을 해야지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면
내가 너무 힘들어. 난 내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움직여서 한거는 대체로 문제가 안생겼고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건 나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사람들 하고 같이 움직이면 내가 잘못한게 없어도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내 책임이 아님에도 같이 감당해야 하니 이래저래 나만 골병들어. 그래서 어디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난 잘 안해. 그냥 동아리 모임 같은데나 나가서 웃고 놀며 돌아다니다 오는게 낫지. 그래서 난 친구도 없어. 그냥 주로 혼자 집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뉴스 보고 신문 보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니 정치 이야기나 조금 하고 마누라가 밥주면 밥먹고 빵주면 빵먹고 안주면 혼자 라면 먹고 말고.....나이드니 서로 편하게 지내자 해서 각방 쓴지 20년이고 마누라도 나이드니 모든게 다 힘들다고 하고 그러니 서로 건드리지 않고 편하게 살자가 된거지. 애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네. 오면 힘드니까. 그래도 난 애들은 가끔 보고 싶은데 이것들이 이젠 자기들 먹고 사느라 바쁜지 연락도 없어. 그래서 이제 대충 지들이 알아서 하는 구나...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마는거지. 헬스하고 오면 너무 힘들어서 3~4시간 정도는 누워서 뒹굴다가 자다가 하고 일어나니 이젠 다 된 물건 같지만
그래도 아직도 내꿈은 시골가서 농장이나 목장하는거야. 그거 하면 저절로 힘이 날거 같은데....그래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힘들어도 헬스를 하는건데....아무래도 무리 같아. 만 65세에 헬스 한다는 게 무리지. 그렇다고 이젠 걷기도 못하겠고 40키로를 10시간에 주파하던 내 무릎관절이 이젠 다 달아서 안된다고 하더라구. 약 먹으면 아프진 않은데 멀리는 못 걸어. 가끔 공원에 가서 한바퀴 돌고 오는 건 4키로 정도니까 할만한데...그것도 매일 하면 무리가 오더라구.
65년을 살아보니~~~인생 참 별거 없더란 말이지. 이젠 별 수 없이 조용히 기도나 하면서 지내야 겠는데....성무일도는 글이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니 22년 바치던 성무일도도 이젠 제껴놓고 묵주기도만 하는데~~그것도 매일 하게 되지가 않아. 100만단 목표였는데 41만단 조금 넘었으니 어느 세월에 100만단을 채우나? 하는데까지 해보는거지. 뭐~~~50만단은 채울 수 있겠네....ㅋㅋㅋ
첫댓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많을거야.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조상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G8이 된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말이야.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이 죽어라 고생하시면서 벌어서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하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나만해도 대학 다닐 때 남아수독오거서가 되었거든. 대학 자취방에서 새벽에 나와서 도서관 자리다툼이 심해서 자리잡고 앉아서 책보다가 수업 들어가고 또 도서관에 가서 책보다가 학교식당에서 3끼 해결하고 자취방 가서 놀다가 자고 했는데 그중에 고시1차 패스한 친구가 있었어. 그래서 나도 해보자 해서 헌법학개론 민법 같은 책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이게 전부 5공헌법이라 좀 그렇더라구. 그래서 읽어보긴 다 읽어보고 다른 친구가 고시공부 하겠다고 해서 다 주어버리고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관심분야 책을 보았는데 의학서적도 보고 역사소설책도 보고 그러면서 4년 보내고 나니 대충 남아수독오거서가 되더라구. 졸업하고 집에 와서는 수의사를 따라 다니면서 수의를 익히고 목장준비를 하느라 목장에도 가 있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1987년 대선과 국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뛰어다녔고 하여튼 나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목장하면 고생할까봐 못하게 말리셨고 그래서 내꿈을 접어여 했지만 그대로 3당합당 초안을 써서 보낸 게 채택이 되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나는 나대로 최선에 다해서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불행히도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의 연장연상에서 전라도 사람에게 밉상이 베겨 힘들게 보낸 20여년 세월이 아쉬울 뿐이지. 그 20여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야. 내가 그 20여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또 뭔가를 이루어 냈을건 데.....하는 아쉬움이 자꾸들어. 그래서 내가 정치권에 관심은 많지만 가까이 하긴 싫은거야. 가끔 글로 할말 해놓고 보면 정치권에서도 보는지 내가 한 말 비스므리하게 흘러가더란 말이지. 보는건지 안보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안본다 하여도 내가 말한대로 흘러가는걸 느끼면 그래도 내 정견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더라구. 하여튼 우리 나라는 다른거 없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하기는 힘들고 각자의 노력으로 나라의 인재가 되어서 자꾸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면서 밀고 가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어보여. 우파 좌파로 갈려서 싸울게 아니라 잘못된 걸 찾아내서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하고 바로잡아 나가면서 과거를 온고이지신 해야 한다는 말이지. 이게 안되면 맨날 정권 바꿔도 그 타령에서 끝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정치인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잘해줘야 한다는 말이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 나라는 발전해도 맨날 분쟁은 계속 터져 나오니 말이야. 정치 돌아가는 거 보고만 있어도 이젠 힘들어. 내가 이젠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거 같단 말이지. 흐흐흐
그냥 이대로 15년~20년 더 살다가 가느냐....아니면 돈을 좀 만들어서 내가 어린시절부터 꿈꾸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살다가 가느냐...이거이 문제란 말이지. 솔직히 이대로 15~20년 살다 가고 싶진 않아. 돈 만들어서 멋진 농장을 만들어 시설 갖추고 사람 많이 안 쓰고도 편안하게 농사 짓고 소 키우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이지. 그걸 하기 위해서 1985년에 컴터학원에서 프로그램도 배우고 했지만 그때 원장에게 물어보니 컴터로 사료주고 물주고 하면서 개체관리 하는게 가능하냐고 물어본 기억이 나. 시설 하우스 짓고 채소 재배하는 것도 다 컴터로 제어가 된단 말이지. 물론 그렇게 하려면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갖출거 다 갖추면 사람이 거의 필요가 없이 그냥 카메라로 보면서 컴터로 관리가 되니 인건비가 안들잖아. 감가상각이 생겨도 그게 오히려 비용이 덜 든다는 말이지. 그리고 사람 부리는게 쉬운일이 아니잖아. 비위 맞추기 힘들어서 난 그런건 못해. 그냥 혼자 하는 일이 제일 잘 맞더라구. 원래 혼자인 시간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냥 혼자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내 몸 상태에 맞춰서 일을 해야지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면
내가 너무 힘들어. 난 내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움직여서 한거는 대체로 문제가 안생겼고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건 나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사람들 하고 같이 움직이면 내가 잘못한게 없어도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내 책임이 아님에도 같이 감당해야 하니 이래저래 나만 골병들어. 그래서 어디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난 잘 안해. 그냥 동아리 모임 같은데나 나가서 웃고 놀며 돌아다니다 오는게 낫지. 그래서 난 친구도 없어. 그냥 주로 혼자 집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뉴스 보고 신문 보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니 정치 이야기나 조금 하고 마누라가 밥주면 밥먹고 빵주면 빵먹고 안주면 혼자 라면 먹고 말고.....나이드니 서로 편하게 지내자 해서 각방 쓴지 20년이고 마누라도 나이드니 모든게 다 힘들다고 하고 그러니 서로 건드리지 않고 편하게 살자가 된거지. 애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네. 오면 힘드니까. 그래도 난 애들은 가끔 보고 싶은데 이것들이 이젠 자기들 먹고 사느라 바쁜지 연락도 없어. 그래서 이제 대충 지들이 알아서 하는 구나...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마는거지. 헬스하고 오면 너무 힘들어서 3~4시간 정도는 누워서 뒹굴다가 자다가 하고 일어나니 이젠 다 된 물건 같지만
그래도 아직도 내꿈은 시골가서 농장이나 목장하는거야. 그거 하면 저절로 힘이 날거 같은데....그래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힘들어도 헬스를 하는건데....아무래도 무리 같아. 만 65세에 헬스 한다는 게 무리지. 그렇다고 이젠 걷기도 못하겠고 40키로를 10시간에 주파하던 내 무릎관절이 이젠 다 달아서 안된다고 하더라구. 약 먹으면 아프진 않은데 멀리는 못 걸어. 가끔 공원에 가서 한바퀴 돌고 오는 건 4키로 정도니까 할만한데...그것도 매일 하면 무리가 오더라구.
아쉬운 내 인생....꿈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시드는거지.
65년을 살아보니~~~인생 참 별거 없더란 말이지. 이젠 별 수 없이 조용히 기도나 하면서 지내야 겠는데....성무일도는 글이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니 22년 바치던 성무일도도 이젠 제껴놓고 묵주기도만 하는데~~그것도 매일 하게 되지가 않아. 100만단 목표였는데 41만단 조금 넘었으니 어느 세월에 100만단을 채우나? 하는데까지 해보는거지. 뭐~~~50만단은 채울 수 있겠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