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斯界]
조선일보
입력 2002.04.09. 19:18
'그의 작품에 대한 사계의 평은 고무적이었다'의 '斯界'가 무슨 뜻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독자가 있었다.
斯자의 본뜻은 도끼로 나무를 '찍다'는 것이었으니 '도끼 근'(斤)이 의미요소로 쓰였다. 其(그 기)는 발음요소였다는 설이 있는데 설득력이 약하다. 후에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즉 '이것'이란 뜻으로도 활용됐다.
界자는 '밭 전'(田)과 介(끼일 개)가 합쳐진 것으로, '(밭과 밭 사이의) 경계'를 뜻하며, '한계' '범위' '사회'를 나타내기도 한다.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를 이르는 眼界(안:계)가 '생각이 미치는 범위'를 뜻하기도 한다.
斯界는 '해당 분야', '그 사회'를 이른다. '사계의 권위자'란 표현을 자주 본다. 아무튼'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기가 어렵고,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끝을 보기가 어렵다'(非知之難, 行之惟難;非行之難, 終之斯難-당나라·吳兢의 '貞觀政要'·愼終편 중에서).
▶ 내일은 '逍風'
[(전광진·성균관대 중문과교수) ]
[강대택의 알쏭달쏭 우리말] 일가견(一家見)이란 말의 정체
전북일보 웹승인 2005-07-21 23:02 수정 2005-07-20 17:54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재질이 없는 석두(石頭)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에 시달리는 동안 눈치, 코치, 귀치가 극도로 발달해
한 인생을 주름잡아 접고 들어가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혜가 이른바 동양철학에서 이르는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의 삼혜(三慧)중 문혜에 해당한다. 들은 풍월의 지혜 말이다.
그러면 사혜는 뭔가. 사혜란 머리를 곰곰 짜고 비틀어 짜고 하여 후벼내는 지혜다. 이 사혜로 진입하는 어귀인 초기 단계에서 많은 두뇌들이 일가견(一家見)을 얻는다. 그 나름대로 한 가닥의 신념과 학설이 생긴다는 말이다.
다음은 수혜. 사
혜의 험난한 우여곡절을 거쳐 그 사혜의 해답을 베껴 든 채 실천에 나선 단계,
즉 지(知)와 족(足)의 일치 단계다.
이것이 최고의 지혜다.
그런데,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단계가 사혜에의 진입 단계인 것이 이 단계에서 범인(凡人)은 자칫 오만해지고 설익은 일가견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속된 말로 헤까닥 돌아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가견의 정체는 무엇인가.
전에는 우리말 사전에도 없었던 것이 최근에야 올려진 이 말의 풀이를 보면 ‘자기대로의 독특한 견해나 학설’이라고 했다.
“그가 피력한 일가견이 그럴 듯 하지?”
“그 방면에 제법 일가견을 갖춘 사람인 것 같아. 그럴 듯 하잖아.”이렇게 쓰이는 이 말은 ‘잇까겐’이라는 일본어다. 따라서 새 의자에 앉은 높은 양반들의 프로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도 일가견을 갖췄다.’는 그 일가견은 아마도 ‘어느 한 방면, 어떤 문제에 대해 갖춘 일정한 체계의 전문적 지식’이라는 뜻으로 쓴게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이 말은 잘못 쓴 것이다.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일가견 (一家見) → 一家言 (いっか-げん) :
けんしき どくとく いけん
見識をもった独特な意見。
'일가견(一家見)이 있다'는 「一家言がある」?
2023-10-22 17:46:48
テーマ:間違え易い韓日漢字語(韓国人向け)
난 철봉에 일가견이 있지욤~
이 포스팅 역시 2권에 적었던 걸 지면 절약을 위해 블로그로 덜어 오는 겁니다.
제가 일본어를 한창 열심히 공부할 때 한국어 일가견(一家見)을 일본은 一家言(일가언)이라고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외우고 있었습니다.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 중에서도 이렇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1권에서도 그런 예가 많이 나왔지만 제가 옛날에 외웠던 일본어를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아니까 이 역시 확인차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번에도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견해.
일가견을 가지다.
일가견을 피력하다.
그는 요리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다.
뜻풀이는 저렇게 좀 어렵게 돼 있지만 한마디로 어떤 것에 대해 '좀 안다'는 뉘앙스로 쓰이죠.
日 참고로 여기서 쓰인 '좀'은 「少し」가 아니라 정반대의 뜻인 '제법'에 가까운 뉘앙스입니다.)
그럼 일본어 '일가언'은 사전에 어떻게 설명이 돼 있는지 봅시다. 다이지린 사전입니다.
いっか-げん [3] 【一家言】 〔史記(太史公自序)〕
(1)その人独特の主張や論説。
(2)一つの見識をもった意見。「教育については―をもっている」
2번 뜻풀이가 우리의 '일가견'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일가언'이라는 일본 한자어는 일상생활에서 쓰일 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부정적 뉘앙스로 인식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그건 바로 사전의 1번 뜻풀이에 가깝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1번 뜻풀이도 딱히 부정적 뉘앙스는 아닌 것 같지만 바로 '독특한 주장'이라는 말을 일본인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이나 견해, 그 사람 개인만이 갖고 있는 고집스러운 견해, 주장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인식하게 됐다는 말인 것이죠.
제가 조사하면서 찾아낸 근거가 바로 아래 캡처입니다.
어떤가요? 딱 읽어봐도 그닥 긍정적인 뉘앙스가 아니죠? 따라서 한국어 '일가견이 있다'를 「一家言がある」라고 번역하면 일본인들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자기만의 주장을 고집한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어 '일가견이 있다'는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비슷한 뜻을 가진 일본어로서 「一(いち)見識ある」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부정적 뉘앙스가 없고, 오히려 상대방을 칭찬하는 뉘앙스로 쓰인다고 합니다. 다만, 이 역시 일상생활에서 쓸 일은 별로 없는 한자어라고 하니까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대화를 할 때는 「見識が高い」 정도로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日 다만, '일가견이 있다'는 표현이 사전의 뜻풀이대로 쓰였다면 위와 같이 번역하면 되겠지만,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이 말을 견식이 있다, 식견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대상, 분야에 대해 '제법(상당히) 잘한다'는 뉘앙스로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엄밀히 따질 때 이건 오용이지만 이 역시 너무도 널리 퍼져 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춤에 일가견이 있다',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 '손맛에 일가견이 있다' 등의 예가 '잘한다', '뛰어나다' 때로는 '탁월하다'는 뜻으로 쓰인 예죠.
심지어 '오디션 낙방에 일가견이 있다', '열받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뻥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여자한테)차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삥땅 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돈 뜯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도둑질에 일가견이 있다'는 식으로도 말합니다. 이렇게 오용하고 있는 경우는 적절한 일본어 표현으로 바꿔 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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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가견 (一家見)
일가견 (一家見)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상태를 가리키는데,
흔히 학문, 기술, 예술 등에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경우에 사용 되는 말.
일가견(一家見)
1. 자기대로의 독특한 의견이나 학설. 2. 상당한 견식을 가진 의견.
일본의 일가언( 一家言, いっか-げん)
わたしはワインには一家言あるほうです。
저는 와인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입니다.
彼女は文学や映画については一家言を持っていた。
그녀는 문학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