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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궁금증 30가지
Q 1
태초의 창조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셨는데, 이는 무얼 뜻할까요? (1:27)
A 1
그 말은 육체적인 면을 가리키지 않고, 영적인 면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양심, 인격, 도덕성, 의로움, 거룩함, 의지 등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공유되는 것들로서,
이런 영적인 속성들로 인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상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Q 2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 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후에,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을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A 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자유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나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받는 애완 동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로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Q 3
창세기 2장 20절에서 2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후에, 그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옵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결혼인데, 그러면 남녀의 ‘결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A 3
세 가지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부모의 영향력에서 독립하여 주체적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독립’의 원리입니다.
둘째, 상호간의 지배나 예속이 아니라 동등한 두 인격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연합’의 원리입니다.
셋째, 남자와 여자라는 두 인격이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의 원리입니다.
Q 4
창세기 3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뱀이 등장합니다.
그 뱀은 혼자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서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에서 여자를 유혹한 이 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A 4
그 뱀의 정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입니다.
사탄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을 타락시키려고, 영특한 뱀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여자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2장 9절과 20장 2절을 보면, 사탄을 ‘옛 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Q 5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지은 하와에게 저주를 내릴 때,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A 5
장차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메시야 예수’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타락 이후, 사탄과 여인의 후손은 끊임없는 투쟁 관계에 있는 원수로서,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그의 발꿈치를 잠깐 상하게 할 것이지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영원히 승리하실 것입니다.
Q 6
창세기 4장 4절과 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기꺼이 받아들이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A 6
각자가 드린 제물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직업에 따라 제물을 선택했고, 후일의 모세 율법에 의하면 모두 합법적인 제물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면, 둘의 차이점은 ‘믿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이셨고,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거부하셨습니다.
Q 7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 이전 노아 시대 사람들의 심각한 타락상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시는 것일까요?
A 7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탄이나 근심은 실수나 후회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가지시는 하나님의 실망과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Q 8
창세기 9장 11절은, 대홍수 이후에 방주 밖으로 나온 노아와 더불어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홍수가 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습니다. 왜 노아 시대 이후에도 큰 홍수로 인해 사람들이 죽는 것일까요?
A 8
하나님의 약속은 노아 시대처럼 지구 전체를 휩쓰는 전면적인 대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국지적인 큰 홍수는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Q 9
오늘날처럼 인류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류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이후의 일입니다. 창세기 11장 1절을 보면,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며 말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초창기에 사용된 하나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A 9
그것이 무슨 언어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은 없습니다.
각 종족마다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을지라도,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었던 공통 언어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Q 10
창세기 12장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본토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즉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이 되는 것일까요?
A 10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좇아 이 땅에 '메시야 예수'를 보내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누구든지 메시야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된 자들은 구원의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Q 11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왜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를 애굽 사람들에게 '누이'라고 소개하기를 원했을까요?
A 11
당시 중근동의 악한 풍습상, 여행자들에게서 아내를 빼앗고 남편을 죽이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브람의 아내는 아름다웠기에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름대로 목숨을 위해 대비책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에 근거한 세속적인 처세로서, 아내를 궁지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기대했어야 옳았습니다.
Q 12
창세기 15장 10절에서, 왜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희생 짐승의 중간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놓았을까요?
A 11
그것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상호간에 계약을 체결할 때 일반적으로 시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어떤 계약을 맺는 쌍방은 희생 짐승을 잡은 뒤에 그것의 고기를 쪼개 양편으로 벌려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만일 쌍방 중에 누구든지 계약을 깨뜨리게 되면, 쪼개진 그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엄숙한 서약 행위였습니다.
Q 13
창세기 17장 5절에서,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을까요?
A 13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름은 한 개인의 인격을 특징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에게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심으로써, 후손의 번성이라는 약속을 재확인시켰습니다.
따라서 당시 99세에 친아들조차 없었던 아브람은 오직 믿음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약속의 새 이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Q 14
창세기 19장 4절과 5절을 보면, 소돔 사람들은 소돔 성의 죄악을 살피러 간 천사들에게조차도 성폭행을 자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만큼 소돔 성은 동성애자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왜 나쁜 것일까요?
A 14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질서를 거스리고 깨뜨리는 패역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서 ‘가증한 일’(레 18:22), ‘부끄러운 일’(롬 1:27), ‘불의한 일’(고전 6:9) 등으로 언급함으로써, 분명히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Q 15
창세기 19장 30절에서 38절을 보면, 소돔 성에서 빠져나온 롯의 딸들이 후손을 잇기 위해 아버지와 동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A 15
롯의 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소돔 성의 타락한 문화에 깊이 영향받았을 것입니다.
그곳은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 등 온갖 변태적인 죄악이 판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의 딸들은 주변에 배필될 사람이 없고, 또 후손을 이어야한다는 명분으로 별 양심의 가책없이 술을 매개로 아버지와 동침했던 것입니다.
Q 16
창세기 21장 8절에서,
왜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을까요?
A 16
고대 사회에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떼는 3세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젖을 떼는 시기가 되기 전에 아이가 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젖을 떼는 시기까지 살았다는 것은 이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특히 이삭은 어렵게 얻은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는 그 날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Q 17
창세기 22장 1절에서,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했을까요?
A 17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상식을 초월하는 어려운 요구를 했습니다. 엄청난 갈등을 했겠지만,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시험은 욥을 시험했던 사탄처럼 사람을 실족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연단과 인내를 통해 성화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Q 18
창세기 24장 2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 전에, 자신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A 18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같은 행위는 충성스런 맹세나 절대적인 복종, 그리고 친밀하고도 엄숙한 서약을 표시하던 고대의 맹세 관습이었습니다.
이런 맹세의 행위는, 후일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의 경우에서도 나타나는데(창 47:29-31), 오늘날까지도 베드윈 족속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Q 19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일까요?
A 19
여기서 ‘큰 자’는 쌍둥이 가운데 형인 에서를 가리키고, ‘어린 자’는 동생인 야곱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 말은, 큰 자인 형 에서의 후손 에돔이 어린 자인 동생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근거한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전통적인 관습을 초월하여, 오히려 어린 자가 큰 자를 지배하도록 예정하고 섭리하셨습니다.
Q 20
창세기 25장 33절을 보면, 들판에서 늦도록 사냥하다가 배가 고파진 에서는 동생인 야곱에게 팥죽을 얻어먹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포기한 것이 왜 나쁜 것일까요?
A 20
나쁘다기보다는 어리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육적인 장자로서의 특권뿐만 아니라, 특히 언약 가문의 장자로서 에서는 무한한 영적인 축복을 물려받을 수 있는 복된 위치에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그는 순간의 만족을 위해 영적인 특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Q 21
창세기 27장을 보면,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속여서라도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의 행동은 옳은 일일까요?
A 21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일찍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야곱에게 작정되어 있었다고 할지라도(창 25:28), 야곱과 리브가가 꾀를 내어 인간적인 속임수로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주면서, 이삭을 진지하게 설득했어야 옳았습니다.
Q 22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은 왜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 두 아들 모두에게 복을 내릴 수는 없었을까요?
A 22
이삭 당시의 고대 족장 사회에서는 집안에서 오직 한 명의 아들만이 가족의 축복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된 족장의 축복은 비록 그 축복을 베푼 자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족장의 공식적인 축복은 신적인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마음대로 선포되어서도 안 되었고,
또 한 번 선포되면 취소될 수도 없었습니다.
Q 23
창세기 29장 2절을 보면,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멀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친 야곱이 그곳의 어느 우물에 이르렀을 때, 우물 아귀는 큰 돌로 덮여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23
물이 귀한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는 평상시에 우물을 무거운 돌로 덮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모래 먼지로 오염되거나 뜨거운 태양열에 증발되는 것을 막고, 또한 물이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길 모르는 여행자나 혹은 동물이 우물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Q 24
창세기 29장 25절을 보면, 야곱은 레아를 라헬로 착각하고 첫날 밤을 치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A 24
신혼방은 어두웠고, 야곱은 기쁨 마음에 결혼 잔치 때 술에 만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풍습상 신부는 베일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웠기 때문에, 야곱이 라헬과 레아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딸 레아가 사전에 아버지 라반의 계획을 전해듣고 기꺼이 응하여 마치 라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Q 25
창세기 30장 37절에서 43절에서 보여지듯, 어떻게 껍질 벗겨진 가지로 점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었을까요?
A 25
야곱은 동물들이 짝짓기할 때 눈에 보여지는 것에 의해 수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일어난 껍질 벗겨진 나무와 얼룩무늬 양의 비밀은 그것들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운영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중에 야곱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신앙 고백했습니다.
Q 26
창세기 32장 24절을 보면,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던 야곱은 어떤 사람을 붙들고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A 26
씨름을 한 후에, 야곱과 씨름한 그 사람은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면서 야곱을 축복했고,
또한 야곱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 하나님으로서 성육신 이전의 구약 시대에 나타나신 성자(聖子)‘그리스도’로 보여집니다.
Q 27
창세기 36장에서, 지금껏 야곱의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에서의 족보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27
첫째, 성경 역사상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언약 백성인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일 산을 거처로 삼고 있는 에서의 후손들을 보여줌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의 주인은 야곱의 후손들임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에서의 후손들도 하나의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Q 28
창세기 37장 5절에서 11절을 보면, 요셉은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A 28
그렇습니다.
특별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종종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곤 했습니다.
따라서 꿈은 환상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방편으로 적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 계시 말씀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꿈이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Q 29
창세기 39장 20절을 보면,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이 자신의 처를 강간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요셉을 처형시키지 않고 단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29
당시 노예가 주인의 처를 강간하려는 죄는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왕의 죄수들만 있는 격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은 평소 아내의 단정치 못한 행실을 잘 알고 있었고, 반면 요셉의 고결하고 진실된 인격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Q 30
창세기 41장을 보면, 애굽 왕 바로는 자신이 꾼 꿈을 기어코 해석하기를 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30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꿈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왕이나 사제들이 꾼 꿈은 더욱 그랬습니다.
고대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神)이 밤 시간 동안에 계시를 내리는 것으로 믿고 있었고, 더욱이 바로는 애굽 사람들에 의해 신으로 받들어졌기 때문에, 바로가 밤에 꾼 꿈은 극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꿈이 깬 후에도 뚜렷이 기억되는 자기의 꿈을 기어코 해석하려 했습니다.
성서원의 <존더반 QA성경>/http://www.christiantoday.co.kr/
출처: 대한 에스라 성서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장기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