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생회를 수료하진 않았지만
마산불교청년회에서 엄청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신
무학산중 용마총림 선룡고거사님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몇가지 추억을 글로 적어 보려 합니다.
정확한 성은 생각이나지 않지만 이씨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어 이후로
이선룡거사님이라고 표기하겠습니다.
거사님은 제가 군대서 제대 할 무렵 그러니까 1985년인가 86년경 폐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당시 마산불교청년회(마불청)은 몽고정 조금위쪽에 위치한 신신예식장에서 법회를 봤는데
제 기억으로 항상 마불청기를 챙기고 끝마무리 청소를 솔선수범하시던 참 어진 불자셨습니다.
한데 거사님께서는 술을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술값을 감당을 못하였습니다.
하여 꾀를 내신게 술집을 직접하자는 것이 었습니다.
안주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있고 ...싼 값에 질좋은 소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음은 물론이고
아무리 늦게 앉아 있어도 문 닫는다고 집에 가라 할 사람이 없으니 그야말로 본인의 파라다이스를
군침을 흘려가시면서 얼룽뚱땅 만드셨던 것입니다.
장사가 잘 되고 못 되고가 상관이 없는 판에 위치가 어딘들 무슨 상관이 있었겠습니까?
그저 탁자가 있고 의자가 있고 선반에 안판소주(못 판 소주 아님)가 넘쳐나면 그만이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선룡거사님의 파라다이스는 지금은 두산탕이란 목욕탕이 자리하고 있는
육호광장아래 하천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거사님께서 소주또는 막걸리와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하셨는지는 폐에 병이 들
정도였으니까 파라다이스안에서 일어났을 황홀한 전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후배군입대한다고 파라다이스안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의 후유증으로 앓던 폐병의 아픔을
무릅쓰고 마산결핵요양원담을 넘어 나와 밤새도록 대작해주시고 비몽사몽간 새벽녁에 포교당아래
지금은 없어진 이름도 잊지 않은 소라여관에서 같이 한 마지막 밤이 너무나 눈에 선하여
참 마음이 아픕니다.
아침에 일어나 참 가관도 아니었던 서로의 모습에 숙취로 끊어질 듯 아픈 머리를 주먹으로 치면서
낄낄대고 웃었던 그 아침도 참 눈물겹습니다.
무학산 서원곡계곡에 본인이 마실 만큼의 술을 사가지고 올라가는데 남이 사온거는 절대
얻어 묵지 못하고 오로지 힘 닫는데까지 자기가 먹을 술을 사가지고 올라가서 먹었던 기억
대접에 술 따라서 흐르는 물에 띄워놓고 자기 앞으로 대접이 오기를 침 흘리며 기도하다
마침내 자기 앞에 도착하면 시 한 수 읊고 지금용어로 하면 완샷하던 밤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동기 이상훈이가 자주 읊어대던 시는 지금도 드문드문 기억이 납니다.
찔레꽃익어 향기로운 밤에 그대는 부어라 나는 마시리 ....
천약불애주면 주성부재천이요 ...주저리 주저리 ...
그 당시를 회상하면 이성우선배님도 많이 생각이 납니다.
고교 졸업을 두어 달 앞둔 12월31일 밤에 갑자기 몇몇 후배를 집합시켰습니다.
데리고 가신 곳이 지금은 마산 국민은행이 자리한 곳에 있는 룸살롱이었습니다.
접대하는 아가씨들은 담날이 신정이라고 다들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절대 손을 대지 말고
아가씨에게 오로지 말로 윗 저고리를 벗겨보라고 하셨습니다.
될 턱이 없지요.
오동동아케이트 닭곱창집에나 다녔지 그런데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순진남(?)들에게
될 법이나 한 미션이었겠습니까? 실패했지요 ㅎㅎㅎㅎㅎ
술집을 나와 남성동파출소옆에 있는 무슨 제과점에 대리고 가서 각자의 손에 케이크 하나씩
들려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시면서 택시태워 귀가 시켜주시던 기억에 지금 흐뭇한
미소가 흐릅니다.
무학산중 용마총림 선룡고거사님
신신예식장서 법회마치고 마시던 왕대포 참 좋았습니다.
한 잔 술에 많이 행복해 하시던 모습 지금도 기억에 선하고요.
너무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되신 거사님이기에 제대하고 참 많이 안타까워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신 곳이 부처님품인지라 또 어디에 계시던 작은 것에서 큰 만족을 얻으시는 분이라
지금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거사님의 장기인 고스톱은 같이 칠 수 없지만 불법은 삼계와 삼세에 두루 가득하니
불법만은 세세영영같이 할 수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사님이 주신 따뜻한 기억이 참 좋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술을 좋아 하셔서 거사님께서는 미루어 두셨던 장가
저는 가서 아들이 둘입니다 -
첫댓글 마불청... 마불학생회 졸업하고 따로 법회볼수 있는 회를 만든게 마불청이었는데.... 어느날 정법청년회하고 합병한 바람에 명칭은 마불청을 그대로 쓰면서 장소나 모임주관은 정법에서 했고... 별스럽게 성덕암 졸업기수들은 정법사에 가기를 싫어해서 그냥 빠져나와버리고...그냥 마불청 이름만 뺏긴 그런 기억.... 85년도 성주석 선배집에서 이성우 선배 자주 만나가지고 선배들 다 어디갔냐고 하소연하고... 그바람에 성우선배가 용수형님꼬셔서 다시 마불동문회 부활시키고.... 벌써 25년 전이네....세월 무상....
아프고 따뜻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ㅠ
기인이면서 폐인같은 사람이 사람같이 기억되는 세상.. 그 만큼 정이 없는 세상이 되었네요..
후배님 폐인이라니요. 정상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열심히 근무한 성실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밤시간을 쪼개어 장사를 하셨지요. 그리고 그리 오래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술은 역시 사 먹어야 맛이라고 하시면서 ...
폐인의 의미가 나뿌게만 사용되는군요.. ㅋㅋㅋ.. 자기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이 폐인입니다.. 오해마세요...
폐인(廢人)은 원래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컴퓨터와 인터넷과 관련된 취미, 커뮤니티, 온라인 게임, 일, 기타 등등에 대해 극단적으로 심취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대표적으로 딴지 독투(독자 투고) 폐인, 디시인사이드의 햏자, 웃대 폐인 등이 있다. 참고하세용..^^
승철아 그래도 폐인은 어딘가에 빠져서 정신 못차리는 덕후같은 느낌이다. 아마 상용이가 말하는 선룡거사는 옛날 행철이가 위장 빵꾸났을때 니는 위장 빵꾸났으니까 우유한잔 마셔라 해놓고... 우유 마셨으니까 됐다 이제 술먹자 하는 분이 있었다던데... 그분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때 부산서 학교다니느라 몰랐고....
패인이란 한단어로 세대차가 나는군요저는 승철행님 쪽입니다
주철이 형님 ...행철이 형님에게 선룡고거사께서 ... 술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그 바로 아랫단계를 보여주셨네요 ㅎㅎㅎㅎㅎ
흠 ..맞어 요즘 폐인이란 의미가 그렇게 쓰여지더라 (나도 나름 신세대 임) ~~~~~~~콜~~~~~
저두아들한테 물어보니 그렇다네요저도콜살짝 줄서봅니다.
난 그 줄 못서네. 뭐 요즘 그렇게 사용한다는 것은 알지만 당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말이야. ^^* 아 ~ 덥다 정말, 맥주 한잔하러 동네 한바퀴 돌아봐야겠네요.
잼 없는 세상.. 그렇게 폐인같이 살다 보면 이 지겨운 시간 후딱 가겠죠... 저도 동네치킨집에서 맥주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