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잃으면 생기는 일
초원의 제왕이라 불리는 ‘라이언 킹’들은 특징이 있다. 우람한 몸집에 검은빛이 감도는 갈색 갈기다. 이런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달리거나 우뚝 선 모습은 제왕의 풍모 그 자체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에 영원한 건 없는 법. 어느 날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 패하는 순간, 제왕은 추락한다. 새로운 제왕에게 쫓겨나며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는다. 그동안 사냥은 암컷 사자들에게 맡기고, 이른바 국방의 의무라 할 수 있는 외부 침입 방어를 주로 담당해 왔던 터라 삶의 질 역시 급전직하한다. 혼자서 먹고살아야 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무엇보다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권력을 잃었다는 위축감에 짓눌려서인지 급속하게 힘을 잃고 노쇠해지다 곧 사라진다.
사자만이 아니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더발은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으로 유명한데, 그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일은 침팬지 사회에도 으레 있는 일이다. 추락한 어제의 권력자는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곤 했고, 주변에 무관심했으며, 몇 주일 동안이나 먹지 않았다. 혹시 아픈가 해서 진찰을 했으나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었고 ‘권력을 잃은 얼굴에서는 광채가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그가 근무하던 대학에서도 이런 일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상당한 명성과 자부심을 가진 한 교수였는데, 그와 견해를 달리한 몇몇 젊은 교수들에게 ‘도전’을 받아 주도적으로 추진하던 일이 무산되었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낭패를 당한 그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고’ ‘갑자기 10년은 더 늙어 보였’으며 ‘권좌에서 물러난 침팬지처럼 공허하고 유령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몇 주가 지난 후,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자세는 이전과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고 말이다.
모든 사회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대체로 서열 시스템이 이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서열은 힘 같은 영향력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힘은 사자의 갈기 같은 상징으로 나타난다. 자신에게 이만한 힘이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문제는 올라가는 날이 있으면 내려오는 날도 있다는 것.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하는 높이 역시 비례하다 보니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생쥐와 닭들의 사회에서까지 볼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을 두루 관찰한 더발의 말이 섬찟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상에 오르려 하는 자가 궁극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죽음이다.’
얼마 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죽음 역시 이런 맥락일 텐데, 맨주먹으로 정상 바로 근처까지 갔지만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하고 밀려난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방심은 화를 부르지만 낙심은 죽음을 부르는가 싶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