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몽유적지
유기섭
제주도의 항파두리에서 우리 고대사의 한자락을 더듬어본다. 그날따라 날씨는 흐리고 으쓰쓰하였다. 유적지경내에는 돌더미들을 정리하며 관리하는 인부들이 몇몇보일뿐 찾는 이들도 보이지않는다. 예로부터 수많은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쓰러지지않는 기개로 우뚝선 우리민족의 혼이 흐르는 곳. 한적한 유적지에는 한때 우리의 땅을 유린한 몽고군의 말발굽소리만 들려오는듯하다. 하마터면 이곳 항파두리 격전지에서 우리 역사가 바뀔뻔하였다는 사실앞에서 아쉬움이 드는것은 왜일까. 오랜 역사를 이어오며 외침만 받아온 우리의 역정에서 우리힘으로 외침을 물리치고 우리의 운명을 되돌릴수도 있지않았을까 아쉬움이 들기도한다.
오랜세월 수없이 침략을 당하며 나라를 지켜온 조상이 있음을 강조하고 후손들에게 자랑하고있지만 이곳은 외세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땅에서 일어난 항거를 진압한 역사가 그려지고있음에 가슴이 쓰리다. 많은이의 시선에서 멀어져 관심밖으로 밀려난 항몽유적지. 이곳까지 밀려난 항몽대원들의 고초와 의지를 읽을수있는 값진 여정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수많은 외침을 당한 기록만 있을뿐 한번도 제대로 우리의 의지대로 항거한 역사는 거의 찾아볼수없다. 예외로 혁혁한 전공으로 외침을 물리친 역사가 몇번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항몽의 흔적은 우리조정의 군대와 적군이 힘을합쳐 반기를 든 우리군을 진압한 것은 슬픈역사의 한단면이다. 우리조정의 군대와 외적인 몽고의 연합군에 항거한 삼별초군의 항몽의역사. 그것은 우리역사에서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기억되어야 할 거사가 아닐까. 한때는 그세력이 번창하여 유럽까지 뻗어갔지만 오래가지못하고 지금 그들은 유목민의 후예가 되어 몽골사막지역을 기반으로 열악한 환경속에서 예전의 영광을 이어가지못하는 세력으로 남아있지 않은가.
당시 조정의 뜻에 반하여 선조들중에서 외침세력과 합세한 조정에 분연히 맞서며 싸웠던 그 기개가 우리의 피속에 흘러내려서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에게 전달된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세계역사에서 그위치를 굳건히 하고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짧은기간 번영을 누렸지만 그맥을 이어가지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들을 상대하여 싸웠던 우리의 선조들이 자랑스럽게 생각될때도있다.
비록 관군과 합세한 군사력에 이곳까지 밀려와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역사에 기록될 쾌거가 아닐까. 외세의 힘에 굴하지않고 우리의 기상을 드높인 역사적사실을 깊이 새겨나가야할것이다. 자랑스런 선조들의 의로운 희생앞에서 그들의 명복을빈다. 항몽유적지에 스며있는 그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언제어디에서든 우리의 자주적인 힘을 길러야함을 새삼 뼈저리게 곱씹어보는 항파두리의 여정이다.
-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연간 사화집 32호(2024년) 게재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