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면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어느 모임에서 한 목회자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시기에 앓았던 질병 덕분에 병역 면제를 받았다며, 그것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세심한 인도하심”이라고 회고했다. 장내는 이내 감동 섞인 ‘아멘’ 소리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그가 겪은 질병조차 사역을 위해 예비된 기적같은 하나님의 섭리라며 박수를 보냈다.
그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가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놓은 것은 사실, 남들이 당연히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로부터 자신만이 쏙 빠져나왔다는 ‘특권의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병역 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신체나 정신에 하자가 생겼다는 서글픈 진단이다. 그런데 종교적 언어는 이 '결함'에 '선택'이라는 금박을 입힌다. 질병이라는 불행을 '특별 대우'라는 서사로 뒤바꾸는 이 기묘한 연금술은, 신앙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지독한 자기 중심성을 폭로한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피하게 된 상황을 하나님의 개입이라 믿고 싶어 하는 심리, 그것은 신앙이라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거룩화하려는 인간의 비겁한 욕심이다. "나는 더 귀한 일을 해야 하기에 하나님이 나를 빼주셨다"는 식의 고백은, 결국 자신을 남들과는 다른 ‘예외적 존재’로 설정하려는 영적 교만함에 다름없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보편적인 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예외상태’에 주목했다. 일부 종교인들은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이런 영적 예외상태를 선포한다. 보편적인 청년들이 져야 할 국방의 의무라는 사회적 굴레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지시키고, 자신은 그 위의 성역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진짜 폭력은 타인의 헌신을 소외시키는 데 있다. 군 면제가 하나님의 은혜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전방에서 혹한을 견디며 경계 근무를 서는 청년들은 하나님의 외면을 받은 자들인가? 그들의 2년은 하나님의 사역과는 무관한 ‘운 나쁜 세속적 고생’일 뿐인가? 내 편의를 위해 하나님을 끌어오는 순간, 누군가의 땀과 헌신은 순식간에 영적 가치가 없는 잉여물로 전락한다.
자기 삶에 일어나는 모든 소소한 이득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좋은 믿음일까. 이는 창조주를 우주적 질서의 주관자가 아니라, 오직 '나'의 커리어와 안위만을 관리하는 개인 비서로 격하시키는 일이다. 하나님을 '면제권'을 남발하는 행정관으로 만드는 이 천박한 신비주의는, 예수가 그토록 경계했던 바리새인들의 '거룩한 구별 짓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진정한 은혜는 고난을 피해 가는 요행이 아니라, 어떤 처지에서도 인간다움과 책임을 공유하는 데서 온다. 군대라는 일상의 의무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거나 더디게 한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오직 종교적 울타리 안으로만 한정 짓는 지독한 이분법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병역 면제를 위해 질병을 선물로 주시는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분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에 영적인 라벨을 붙여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군 면제는 그저 몸이 아팠던 결과일 뿐이고,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돌봐야 할 약함일 뿐이다. 진짜 믿음은 남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은 보편적인 삶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는 ‘성실함’에 있다.
하나님을 '예외'의 엔진으로 쓰지 마라. 진정으로 깨어 있는 신앙인은 자신의 결핍 앞에서 "이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지 않는다. 대신 "나는 약하지만, 이 약함 속에서도 동료들과 어떻게 책임을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 은혜가 아니라, 군대에 가든 가지 않든 그곳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인간으로 남는 것이 진짜 기적이고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