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의 행보는 순수해 보였지만, 결국
‘인기영합주의’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시, 그가 탈 차에 대하여 한국측에
사전에 두가지를 요구하였다. 하나는 국가 원수급의 ‘의전용차’가
아니라 작은차를 준비하라고 했다. 또 하나는 ‘퍼레이드 카’는
과거 교황들이 타던 방탄유리가 덮인 것이 아니라, 개방되어 있는
‘오픈카’를 타겠다고 했다. 검소함, 낮은자세, 서민에게 가까이
가는 행보라는 것이다. 언론 매체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칭송
하였다.
그런데 바티칸에 있을때는 그곳이 그의 ‘홈’(home)이므로,
무슨 차를 타던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 초청받아
갈때는 문제가 다르다. 엄중한 경호상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교황의 경호는 초청국측에게 책임이 있다. 만에 하나라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초청국측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교황이 정말 ‘겸손’하려면, 초청국측의 의전, 배려에
순응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차를 준비해라’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어떻게 보면 ‘오만’으로 해석될수 있다. 초청국이
그 나라에서 ‘경호’에 적합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제공해
주는 차를 ‘말없이’ 받아드리는 것이 오히려 ‘겸손한 자세’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 광화문 광장에서 ‘퍼레이드카’를 타고 가며, 군중들의 환호하는
장면을 보았다. 방탄차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더많은 수의 경호
요원들이 ‘교황 차’ 앞뒤좌우에서, 주위 빌딩 옥상 등에서 경호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차가 좀 스피드를 내자, 교황을 따라온 교황청
경호원들은 차에 발을 올려놓고 쉽게 갔다. 그러나 한국측
경호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다. 그중에는 여자 경호원도
보였다. 많은 초청국 측 경호요원들을 100 미터 달리기를 하도록
만든 것이 과연 ‘낮은자세’인가?
‘작은차’, ‘방탄이 안된 무개차’를 고집한 것은 서민들이 좋아하고
칭송할 것이므로, ‘인기영합’적 행보로 보인다. 또 ‘나는 이렇게
겸손한사람이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어떻게 보면, ‘
위선’적 행동처럼 보인다.
2. 너무나 ‘정치인’같은 행보를 보였다.
전에 한국땅을 밟았던 교황이 있었다. 요한바오로 2세다.
그는 종교지도자답게 근엄한 표정을 늘 유지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에 한 것은 한국땅에 엎드려 키스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일어서면서 ‘순교자의 땅!’이라고 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종교지도자다운 면모보다 마치 하나의 인기있는 정치인같은
행보를 보였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머리위에 ‘하트’를 그리고, 때로는 열광하는 군중의
소리가 작다는 듯이 귀에 한손을 대고 ‘안들린다’라는 싸인을 주며,
다른손으로는 더 크게 외치라는 싸인을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고통당하는 자, 피해자, 약자의 대표로 ‘세월호’
유족과 생존 학생으로 보아서였는지 총 6번 그들과 특별히 만나는
행보를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그룹은
세월호 유족들이다. 그들은 국회의 입법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집단이 아닌가?
4박 5일간 가는곳마다 그의 인기는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언론매체
들은 마치 ‘구세주’를 찬양하는듯한 뉴스와 기사들을 쏟아냈다. 아마
그가 한국의 대통령으로 출마한다면 문제없이 당선될 만 했다.
매체들, 평론가들은, 그것을 진정으로 ‘소통’을 잘하는 행보라고
칭송했으나, 그러나 그것은 마치 정치꾼들이나 하는 스타일의
인기영합주의적 행보였다. 종교지도자는 정치꾼들의 소통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3. 북한의 참상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용서, 화해, 평화만
주장한데 대하여는 다시한번 분노를 금할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유일의 비극적 분단국,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적의 도발이 계속되는 한반도땅에 와서, 저 북한
인민의 참상,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나치의 수용소보다 더 참혹한 ‘
강제수용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비참한 형편의 탈북자들을
강제로 죽음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는 중국에 대해서 ‘축복’을
내렸다. ‘비바 파파’를 외치는 군중의 소리에 화답하여,
한다는 소리는 ‘화해, 평화, 용서’였다.
프란치스코교황에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전 이탤리의 마피아에
대해서 강하게 지탄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을 파문하였다. 왜
그들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만들지 않았나?
‘마피아’세력을 용서못하고 파문했다면, 한반도에 와서는 그들보다
몇백배 몇만배 더 악독한 북한의 김정은 일당에 대해서는 ‘용서, 화해’
가 아니라, 파문선고를 하고 돌아갔어야 했다.
4. 교황이란 호칭이 합당한것인가?
현대의 교황의 위치는, 세계를 지배하던 '황제'같은 위치가
아니고, ‘서방교회’ 즉 로마캐톨릭교회라는 한 종단의 수장일
뿐이다. 물론 바티칸 시(市)국의 수반이라고는 하지만,
바티칸시는 명칭만 ‘시국(市國)’이지 사실상의 국가라고
볼수 없는, 0.44 제곱km의, 인구 8백여 명 정도의, 한국의
한 동(洞)보다 못한 작은 규모다. 유엔 회원도 아니고 소수의
교황 경호대외에는 군사력도 없다.
프란치스코교황은 한국 및 아시아 국가에서, ‘pope'를 ‘황제’를
의미하는 교황이란 ‘칭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
낮은자리’를 자처하면서 왜 ‘황제’칭호를 받고 있는것인가?
캐톨릭 신학자 한스 큉의 말대로 “교황도 ‘성직자’(clergy)로서,
‘섬기는자’(servant)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