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1. ‘혹성탈출’ 시리즈의 새로운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는 말 그대로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생존을 위한 충돌과 지구를 쟁취하기 위한 경쟁을 예고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가 인간을 파멸시켰고 반대로 유인원들의 지능을 향상시켜 지구의 주도권은 유인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인간은 ‘에코’라 불리는 저능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인원 들 중에는 과거의 인간에 의해 당했던 핍박의 시간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인간을 멸절시키려는 세력이 있으며 이들은 과거 인간이 남긴 문명을 활용하여 강력한 힘을 얻고자 시도한다.
2. 이번 작품은 3개의 집단 간의 긴장과 경쟁이다. 하나는 인간을 제거하고 완벽하게 유인원 독재체제를 갖추려는 유인원 극단주의 집단. 두 번째는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아 인간의 지능을 유지하고 인간의 영광을 회복하려하는 인간 집단. 세 번째는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이라는 이상을 꿈꾸는 특별한 소수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우선 두 번째와 세 번째 세력이 협력하여 독재체제를 구축하려는 세력에 맞서고 저항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의 핵심은 유인원의 완벽한 독자권력을 주장하는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나머지 세력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협력했던 두 세력 간의 묘한 긴장과 함께 마무리된다. 그것은 새로운 갈등과 경쟁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인간의 지배를 복원하려는 인간과 이미 높아진 지능으로 인간과의 공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유인원 세력은 쉽게 접착점에 이르기 어렵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인간의 지배에서 유인원들의 지배로 다시 두 집단 간의 대결로 이어지는 ‘혹성탈출’의 무대는 강렬한 긴장을 자아내는 새로운 시대로 안내하는 것이다.
3. ‘혹성탈출’은 ‘차이’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요구한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종교나 지역 그리고 신분과 계급에 따라 벌어진 갈등은, 민족이나 인종간의 차이에 이르러서는 갈등의 강도나 폭력적 대응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져 간다. 갈등은 때론 적대적 타자에 대한 완전한 궤멸을 책동하는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 그러한 파괴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그렇기에 ‘혹성탈출’이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성찰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종끼리의 경쟁에서 윤리적 문제는 더욱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같은 인간 사이의 경쟁보다도 더 잔혹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수행되기 쉽다. 그렇기때문에 ‘혹성탈출’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른 종일지라도 모두가 지구에 살고 있는 동일한 거주자라는 점에서 무조건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그들 존재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4. 인간들인 우리는 여전히 ‘진화론’적인 우위에 대한 관념에 의해 움직인다. 더 뛰어나고 더 지혜로운 집단의 우위는 불가결한 것이며 그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에 의해 지배된다. 그런 이유로 지구상에 모든 생물에 대한 우위는 정당화된다. 하지만 만약 어떤 종이 ‘혹성탈출’처럼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확보하고 인간에 대항하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 결국 각자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대결과 오래 전 과거에 벌어졌던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벌어졌던 파괴와 경쟁의 반복이 되어야 할까? 지금의 지구는 지혜가 부족했던 시대에서 분명 성장했다. <혹성탈출>의 소수는 ‘공존’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안은 결국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차이’를 이유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의 해결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종 사이에서도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같은 인간으로서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성탈출>의 다음 작품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 가능성 찾기, 만약 그대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갈등과 증오로 파생되는 거대한 위험에 대한 영화적 탐색이다.
첫댓글 - 뉴 사피엔스의 출현(?), 진화의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