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보낼 시간을 생각하니 멀리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금쪽 같은 설 연휴를 집에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가까운 바다로
나가자. 길게 펼쳐진 갯벌과 짭짤한 바다 냄새가 기다린다. 겨울이 기운을 웅크리는 때, 바닷바람 속에는 벌써 봄기운이 배여있다.
● 제부도(경기 화성군)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부도는 힘겹게 찾아가는 곳이었다. 용산에서 시외버스로 사강리에 간 뒤, 반나절을 기다려 감뿌리행 시골버스를
탔다. 감뿌리에서 마냥 바다만 쳐다보다가 썰물이 되어 길이 열리면 걸어 들어갔다. 운이 좋으면 소달구지나 경운기를 얻어타는 정도였다.
민박을 치는 집은 달랑 한 곳. 주로 MT를 온 대학생들이나 낚시꾼들이 방을 차지했다. 대학가에 최루탄이 난무했던 때, 낚시꾼들은
대학생들이 ‘빨갱이’가 될까봐 장탄식을 하며 걱정을 했고, 대학생들은 낚시꾼들을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제부도는 급속히 관광지로 바뀌었다. 섬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골고루 품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와 바람이 조각해
놓은 기암(奇岩), 넓은 백사장, 각종 조개와 게가 숨어 있는 갯벌, 늪지와 갈대밭….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서울서 불과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시와 단절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 두 번 열리는 2차선 연육(連陸)도로를 따라 섬에 들면 매바위(鷹岩ㆍ응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섬 남서쪽 곶부리에 나란히 서있는
4개의 돌봉우리이다. 만조 때에는 3분의 1이 물에 잠기지만 물이 빠지면 걸어들어가 바위에 닿을 수 있다.
과거 매 둥지가 많아 이름이 붙여진 이 바위는 30여년 전까지 두개였으나 풍화에 갑작스레 깎여 두 바위의 가운데가 각각 패이더니 이제는 네
개의 기둥처럼 되어버렸다. 매바위는 제부도에서 용왕과 속세를 연결하는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바위를 돌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매바위 서쪽에서 시작해 약 1.5㎞가량 하얀 모래밭이 뻗어있고 나란히 갯벌이 펼쳐진다. 갯벌은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폭이 1㎞에 달한다.
굴, 맛살, 삐쭉, 바지락, 동죽, 피꼬막, 모시조개 등 조개들의 천국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바닷가재와 겉모습이 비슷한 ‘쏙’을 잡아내기도
한다.
돌맹이 하나 없는 완벽한 안전지대여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배우기에 더없이 좋다. 갈아입힐 옷과 장화만 준비한다면
아이들에게 최고의 하루가 보장된다.
● 영흥도(인천 옹진군)
2년 전 육지가 된 섬이다. 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두 개의 붉은 기둥을 바다에 꽂아 긴 다리를 놓았다. 그 동안 인천 연안부두나
선재도까지 배를 타야 육지로 나갈 수 있었던 섬 주민들은 이제 육지 사람이 됐다.
영흥도는 옹진군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 풍광과 운치가 빼어나다. 행정구역은 인천이지만 경기 화성시, 안산시, 시흥시에서 더 가깝다.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 시흥시 시화산업단지에서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에 들어가거나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IC에서 빠져 대부도행 지방도로를
타는 방법이다. 대부도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선재도, 선재도를 관통하면 북동쪽 끄트머리에 영흥대교가 놓여있다.
영흥도에는 큼직한 갯벌 두 곳이 있다. 용담이와 십리포 해수욕장이다. 여름이면 인근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지금은 쓸쓸하리만치
한산하다. 겨울바다의 정취에 푹 빠질 수 있다. 영흥도 배터에서 서남쪽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용담이해수욕장은 수 년 전 새로 개발된 곳으로 약
1㎞에 이르는 백사장이 백미다.
용이 승천한 연못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연못 근처 샘의 물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수령 100년을 자랑하는 해송군락이 운치를
더해준다. 갯벌에는 낙지, 굴, 바지락, 동죽, 고동, 게 등이 많다.
영흥도 북쪽 끝에 있는 십리포해수욕장에는 전국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명물이 있다. 서어나무 군락지이다. 약 150년 전 내동마을의 주민들이
심어놓은 인공림이다. 바람이 심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주민들이 방풍림을 조성하려 했지만 땅이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나무도 살지
못했다. 그래서 척박한 땅에 강한 서어나무를 구해 왔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흙을 넣고 식재 후 정성껏 가꿔 지금의 모습이 됐다. 십리포해수욕장 뒤편으로 약 700m정도 길게 펼쳐져 있다.
여름에는 피서객들에게 그늘을 주고 피서철이 지나면 방문객에게 멋진 오솔길을 제공한다. 멋지게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보는것 만으로도 보람이 있다.
● 석모도(인천 강화군)
석모도는 행정구역상 인천 강화군 삼산면이다. 낙가산, 해명산, 상봉산등 200~300m급 나즈막한 산 세 개가 나란히 있어 삼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낙가산 기슭에 1,400년 가까이 서해 바다를 굽어 본 명찰 보문사가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희정대사가 창건했다. 경남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원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전남 여수시 돌산도
향일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기도터를 찾는다고 미리 엄숙해질 필요는 없다. 석모도 가는 길은 너무나 즐겁다. 차 타고, 배 타고, 걷고…. 본격적인 여행은 강화
외포리에서 시작된다. 외포리는 석모도행 카페리가 출발하는 곳. 여행객 대부분이 차를 갖고 섬에 들어가기 때문에 포구에는 사람 대신 차가 줄을
선다. 카페리는 대형이다. 승용차 48대가 들어간다.
배를 타기 전 새우깡 한 봉지가 필수. 하얀 갈매기떼가 배를 따른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먹는다. 새우깡에 길들여져 직접 물고기를
잡는 본능마저 잊은 듯한 이 갈매기들은 가끔 식당가의 쓰레기통까지 뒤진다. 그래서 ‘거지 갈매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10분 남짓이면 석모도 선착장에 닿는다. 석모도의 도로는 전장 20㎞. 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이 길기 때문에 가급적 승용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보문사 입구 주차장은 규모가 꽤 크지만 불교 명절이나 여행 성수기 때에는 북새통을 이룬다.
입구 먹거리촌 아주머니들이 일회용 소줏잔에 따라 권하는 인삼막걸리를 어쩔 수 없이 한 두 잔 시음한다. 절에 가는 길이지만 권유가 워낙
집요한데다 시음은 공짜이기 때문에 외면하기 힘들다. 길은 길지 않다. 그러나 가파르다. 허술한 슬리퍼나 굽 높은 신을 신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보문사의 명물은 절 가장 꼭대기에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1928년 보문사 주지 배선주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이
조각한 것. 일명 눈썹바위라 불리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의 밑부분을 깎았다. 문화재적 가치 보다는 기도 성지로 더 중요시된다.
민머루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걸출한 갯벌이 펼쳐져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갯벌이다. 멋모르고 마냥 나갔다가 밀물이 들어오면
전력질주를 해서 돌아와야 한다. 특히 해수욕장 언덕에서 보는 낙조가 장관이다.
오후 3~5시면 하얀 소금탑을 볼 수 있는 삼량염전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정식 숙박시설은 없지만 민박 시설이 훌륭하다.
● 갯벌 탐사 요령
겨울 갯벌은 여름 갯벌과 많이 다르다. 여름철에는 갯벌 생물이 지천으로 널려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모를 정도이지만 겨울에는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다. 그래서 더욱 진득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햇볕을 맞으러 흙 바깥으로 나온 갯벌 생물은 생명의
경이를 더욱 진하게 전해준다.
겨울이지만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도구가 꼭 있어야 한다. 하늘에서 내리 쪼이는 햇살도 만만치 않지만 갯벌의 물기에 반사된 빛도 강하다. 별
생각없이 갯벌에서 한나절을 보내다간 여름철 해수욕장에서처럼 얼굴이 탈 수 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해야 한다.
갯벌탐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참고 자료. 시중에 갯벌 생물에 대한 도감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집에서 미리 공부하는 두꺼운 도감과 갯벌에
직접 가지고 나가 갯벌 생물의 정체와 섭생을 알아보는 작은 도감을 함께 준비하면 좋다. 행선지의 갯벌이 모래인지 진흙인지를 미리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준비물이 달라진다.
겨울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여벌의 옷과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갯벌을 뛰다보면 계절도 잊고 마구 구르기 일쑤이다. 세탁하기
편하고 방한성이 좋은 옷을 입히고 탐사가 끝나면 갈아 입힌다. 갯벌 근처의 목욕탕이나 식당 등 옷을 갈아입을 공간을 미리 알아놓는 것이 편하다.
갯벌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 가능한 한 다치지 않게 관찰하고, 꼭 필요한 것 외에 잡은 갯벌
생물은 모두 놓아준다. 물론 어민들이 정성껏 가꾸어놓은 양식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첫댓글 안댁님 안녕!!! 여름 휴가 갈 곳 물색 중이던차에 섬으로 움직여 볼까싶네요. 감사의 사랑을 드리며....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