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번동 지나 외 1편
강희근
오후, 녹번동 지나
은평구 끝에까지 와서
오른 켠으로 거듭 북한산 올려다보는데
어,
경기도의 경계를 넘어섰구나
왕도의 끝에 생겨 있던 전율이
죽지 않고 살아서
조선의 소리로 살아서
여태 계곡으로 흐르는구나
생각해 보면
누리는 자들은 다 경계에 있었거나
넘어섰거나
비집고 들어온 밥집의 밥그릇 같은 것으로
남아 있거나
피서철의 피서 같은 떠돌이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어스름 내리고
불은 켜이고 불 켜인 곳에서
사람 도란거리는 소리 나고 한 발 건너 왕도는
자고 있다
경계를 데리고 나는 오던 길로 돌아가리라
경기도를 놓아두고
남아 있는 은평구 밀림을 지나 한옥마을
지나
녹번동 그 주차장까지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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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비
1.
중림동 언덕배기 돌아앉은 곳
숨어 있듯이 서 있다
서소문 밖,
박해의 피냄새는 마르고 찌는 더위
푸른 잎새들이 주인이다
외진 변두리, 여기까지 끌고 오면
목숨 떼는 것도
별일이 아니라 생각했을까
2.
지독한 여름이 소나기 한 줄기
퍼붓는다, 세차다
퍼붓고 퍼부어라
둥 둥 둥
그때의 눈 먼 북소리 엎드려 날 때까지
논두렁으로 밭뙈기로 퍼져 나갔던
역사의 헛간으로 번져 나갔던 그 소리
눈 뜬 소리로 둥, 두둥, 두둥 되살아나기까지…
중림동 비는
푸른 잎새들, 두드리고 내린다
강희근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경상대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66년 신인예술상, 2012년 산청 함양 인권문학상, 2013년 김사삿문학상, 2015년 송수권문학상 등 수상
시집 『연기(演技) 및 일기(日記)』, 『풍경초(風景抄)』등 16권의 시집과 수많은 저서가 있음
첫댓글 이곳 청주에는 죽림동이 있답니다.
중림동에 가서 소나기 오는 여름 향기를 맡고 싶어요^~
선생님 올 한 해도 무탈하게 강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