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빈 교수(서울사이버대학교)
분단이 60년이상 지속되면서 실향민 1세대들이 점차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찾아달라고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신 분 중에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고령으로 유명을 달리 하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실향민 중에 고향을 기억하는 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나 통일에의 절실한 염원이 희박해 지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분단이후 출생한 대부분 국민들에게 분단해소와 평화통일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통념으로 되어갑니다. 통일에 대한 회의론과 무관심에 이어 거부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6.25의 난리 중에 잠시 피난한다는 것이 아예 생이별이 될 줄 알았다면 실향민 1세대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얼마쯤 지나서 난리가 진정되면 가족의 품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나요? 휴전 결사반대와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열열히 지지하던 실향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의 길로 '先건설 後통일'의 정책을 제시하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공산당을 이길 힘을 키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한 결과 우리는 드디어 40여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막상 경제성장과 국력의 압도적 대북우위가 확보된 지금 통일문제는 거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전후세대들이 민족적 과제보다는 개인적 삶의 풍요와 행복을 추구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분단 상태에서 이룬 경제성장의 결실을 통일로 인해 북한과 나누는데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민족적으로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는 민족사적 과제라고 봅니다.
최근 매년 3,000명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옵니다. 이들도 실향민이자 남북이산가족입니다. 살기 힘든 북한을 잠시 벗어나 있다가 통일이 되면 다시 고향과 가족을 찾을 예정입니다. 빨리 통일되길 날마다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겪는 답답함 중 하나가 남한사람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통일의 필요성을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통일에의 한(恨)을 남기고 세상을 뜨는 고령 실향민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습니다.
탈북자 한 명이 고향에 남긴 가족을 최소 두 명으로 잡아도 매년 남북이산가족이 1만명씩 늘어나는 셈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개인주의화 하더라도 절실한 통일 염원은 이들을 통해 피같이 진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고령 실향민의 사망으로 남북이산가족 문제가 자연 해소될 것이라는 어둡고 잔인한 농담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先건설' 과제를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 주저 말고 “後통일” 과제도 착수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이 가족의 행복은 고사하고 이산 고통 속에 있는데 선진국이 되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남북이 화해하고 교류 협력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미룰 수 없는 평화통일의 길이며 선진국의 자격요건을 갖추는 길이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