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약 20분 드라이브 거리에 Los Gatos라는 고급 동네가 있다. 산타크루즈 마운튼 산자락에 포근히 안겨있는 듯 아담하고 오밀조밀한 다운타운하며 약간 여성취향의 백인동네다. Apple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쿠퍼티노가 아시아 사람들에게 점령당하자 거기 살던 백인들이 몰려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아직은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부자동네 뒷골목에 Manresa라는 고급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건 불과 몇달전이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부인이 산타크루즈 바닷가에 있는 어떤 organic farm에서 일을 하는데 그 농장에서 나오는 유기농 재료를 그 식당에 공급하면서 우리에게도 한번 가 보라고 권고하여 알게되었다. 음식값은 쎄지만 가볼만 한 곳이라고 강력추천.
미슈랭 식당등급에 별을 두개나 받았다니 더욱 구미가 돌았다. 미슈랭은 별 세개가 최고인데 듣자하니 뉴욕에도 별세개 받은 식당은 네군데 밖에 안된다니 두개만 해도 대단하다 싶었다. 그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기분좋게 그 식당에 가기로 선언을 하니 동석했던 다른 한국 부인이 자기는 Dutch pay하는 조건으로 동참하겠다고 나선다. 결국 우리 내외와 다른 한 부인이 가기로 하고 날자까지 잡았다. 나는 한국 남성의 자존심으로 더치패이를 받아들일수 없다고 선언한다. 셋이 식당에 가는데 한 사람분을 따로 계산하는 것은 30여년을 해외에서 살았지만 내 방식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일이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문제는 그 다음. 예약을 하려고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앗 뜨거 이게 왠 일인가? 우선 메뉴는 손님이 정하는게 아니라 주방장이 정하는데 1인당 $125 코스와 $175 코스 중에서 선택해야한다. 물론 8.5% 판매세와 20% 팁은 별도. 거기에 와인을 마시면 무조건 1인당 $75 추가 (여기에도 세금과 팁 계산 별도). 아내와 단 둘이라면 무슨 핑게를 둘러대서라도 약속을 뒤집겠는데 다른 부인까지 초청하겠다고 장담을 해 놓은 마당에 음식값이 비싸서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참담한 심경이란.... 울며 겨자먹기로 $125 짜리로 3인 좌석 예약. 다시 전화를 걸어 와인을 손님이 가지고 가면 corking charge가 얼마냐고 물으니 물경 $50. 입이 딱 벌어진다. 보통 $15이고 최고급 식당이면 $20을 요구하는 곳이 가끔 있지만 $50은 난생 처음이다. 이 쪼잔한 좁쌀 영감에게 이건 너무 심한 고통이 아닐수 없다.
드디어 기다리던 (?) 그날 저녁. 예약한 시간에 정확히 식당에 도착하니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은데 놀랐고 모두들 잘 차려입고서는 예의를 한껏 갖추는 척 하면서 손님의 기를 죽이려는 듯 코스 음식이 나올 때 마다 웨이터/웨이트레스 세사람이 음식 한 쟁반씩 들고 와서는 로보트같이 같은 시각에 같은 동작으로 내려놓고는 그 중에 한명이 그 음식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 평생 먹어보지 못한 진기한 산해진미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맛있지도 않고 그렇게 감동받을 만한 서비스도 아니다. 집에서 맛있게 먹던 비빔밥에 된장국이 생각났다.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긴 하지만....
약 7-8개의 코스 음식으로 메뉴를 짜자니 눈꼽 만큼 쬐끄맣게 나오는데 그릇만 요란하고 음식은 별로였으니 그 날저녁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은 단연 빵이었다. 빵도 4종류를 서브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정말 혓끝에 감칠맛을 남겨서 그날 빵 담당하던 젊은 웨이터는 내가 먹은 빵의 분량에 놀라 자빠지는 듯 했다. 좌우지간 데저트가 나오는 데도 마지막으로 빵 하나를 더 집었으니 말해서 뭘하랴? 빵이라도 맛있게 먹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3인분 식사에 와인 cork charge, 세금, 팁을 합산하니 무려 $563. 거기다 들고 간 와인 한병 값이 $35. 총계 $598. 아이고 맙소사. 1인당 $200 이니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이건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에 날린것도 아니고 한국의 기생집에서 봉변을 당한것도 아니고 뭐가뭔지 머리가 띵하다. 그날 저녁 정중한 대접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3인분 합산하여 최고 $100 정도로 치면 아쉬움이 없겠지만, 나머지 $498은 대명천지에 날강도에게 빼앗긴 셈 치고, "강도 만나 몸 상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일세" 하면서 웃는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있겠나? 그래서 선인들의 말씀에 어리석게 호기부리지 말고 사람이 주제파악을 하라고 하지 않았나 말이다. 이 나이에 어처구니 없게도 이렇게 헛다리를 짚다니.
첫댓글 평생 남는' 추억 만들기'라고 생각하면 흐뭇하지 않는가!
미국의 조카사위가 몇년전 우리나라에 왔을 때 1인분 18.000원짜리 점심을 먹으며
"자네 프랑스 자주 다닌다는데 거기서 먹은 제일 비싼 요리는?"하고 물었더니
1인당 약 600$정도 대접받았다고 해서 놀래버린 일이 있음.
그녀석은 로펌의 파트너임.
나는 프랑스 여행에서 제일 많이(그것도 호기롭게) 주고 먹은 것이 기억에는 두사람이 약 60유로정도였는데!
삼진공도 좀 더 높은 것 어부인과 단둘이 한번 더 즐겨보심이 어떨른지?
평생 즐거운 추억이 아닌 씁쓸한 추억이면 뭘해? 북가주에서는 Napa Valley에 있는 French Laundry (불란서 빨랫집)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식당이 제일 비싼 모양인데 약 $500선 (?). Michelin Restaurant Guide에 오른 유일한 한식당은 NY에 있는 Danji 라는 곳인데 Owner/Chef Hooni Kim (김훈)을 한번 만난적이 있어요. 한국의 된장에 깊이 빠져있는 청년인데 Ivy League를 졸업하고 Wall Street에서 일하다가 Chef가 된 괴짜. 한식과 불란서식을 섞은 퓨전 스타일이라고 하네요. 나는 1인당 $100 넘으면 모래를 씹는 기분이라서 소화불량에 걸릴텐데 고급 식당 절대 사절. $20 + red wine 한잔이면 가장 행복합니다.
내가 먹어본 음식중에 또 한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1969년 5월 독일 연수를 떠나는데 김포출발 비행기가 연발하는 바람에 동경서 Lufthansa connection을 놓쳐 New Otani 호텔에 공짜로 투숙. 옥상 회전식당에 가서 coffee 한잔을 주문하니까 무슨 커피냐고 묻길래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달라고 했더니 구루마를 끌고와서 불을 켜고 난리를 치더니 커피 한잔을 뽑아내는데 그 가격이 자그마치 US$1.00.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 맥도날드에서 $0.53 짜리 커피를 즐기고 있습니다. 43년이 지난 뒤 절반 값에 더 맛있는 커피를 즐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