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해 인도 뉴델리에서 첫 직책을 맡으며 외교부에 들어갔다.
외무부에서 그는 겸손하고 능숙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6년 2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반기문은 처음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은 승산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반기문은 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으로서 사무총장 선거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는 전략으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모든 나라를 순방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13일 유엔 총회에 의해 제8대 UN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 1월 1일 코피 아난의 뒤를 이었다. 첫 달에 반기문은 유엔의 문화에 간신히 적응했으나, 곧 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되고 평화 유지와 유엔 고용관행에 대한 몇몇의 중대한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반기문은 외교상 조지 W. 부시에게 지구온난화 문제를 반복적으로 강조한 지구온난화와 평화유지군이 수단에 오게 하려 수단의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를 설득하며 거든 다르푸르 분쟁에 특히 강력한 견해를 가져 왔다.
반기문은 2013년 포브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한국인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전 세계에서 32번째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6월 13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때 에세이 경시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외국 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미국에 가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로 인해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 2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3월에 정부 부처인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UN 국제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소통한다.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다.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주 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 등을 지냈고, 주로 국제 조직을 거쳐 1980년 외무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
외무부 지원으로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에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과 차관보를 역임했다. 1996년 11월에는 김영삼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으로 지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지내다가 2001년에 외교통상부 차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동 본부 대사, 2003년 2월에 참여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2006년 2월 14일에 유엔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여 2006년 10월 14일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피 아난의 뒤를 이어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엔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던 당시 사무총장직을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하였다.[1] 하지만 8대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1차 예비투표에서 그는 15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중 13개국의 찬성을 받아 1위에 오르게 되고, 2차 투표에서 14표, 3차 투표에서 13표를 얻었고,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그는 7명의 후보를 제치고 안보리 15개 나라중 14개 나라의 지지를 받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특히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그에 대한 지지는 대단하였으나, 10월 2일의 최종 비공식 설문조사까지 일본은 기권표를 던졌다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찬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2007년 2월 6일 유엔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그는 비대해진 유엔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엔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사상 이례적으로 15개 상임이사국과 유엔 전 회원국을 대표하는 5개 지역그룹 의장의 연임 추천을 받아 유엔 총회에서 192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유엔 사무총장직에 재선되었다.
위키백과 자료
첫댓글 생전의 인물은 비석도 세우지 않는다 했는데
생가복원.기념관 건립.
너무 앞서가네???!!!!!!!!
지나는 길에 이정표를 보고 들렸는데 포토존 자리라며 동상까지 있어서...
그래요, 생가가 무슨 명당이란 말인가요. 나무 빨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