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letter No.462 2017/3/21
그리스 신화에서 키메라는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을 가지고, 뱀의 꼬리를 가지고 불을 뿜는
상상의 동물이다. 다른 조직들의 공생체를 지칭하는데, 영어 사전을 보면 ‘망상’이나 터무니없는 계획이라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회를
생각하면 ‘키메라’가 떠오른다.
올해는 소위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다. 독일에서 루터가 시작했던 그리스도교 사건을
‘종교’개혁이라는 일반 용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교 개혁’이나 ‘개신교 운동’, ‘개신교 개혁’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용어의 문제와 무관하게,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세계 개신교회는 행사를 진행하거나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한국개신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스스로 그리스도교를 개혁했던 주체의 순혈 혈통이라고 자임하면서 500주년을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개신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그리스도교 개혁을 시도하고 개신교 개혁운동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문제의식이나 비판의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을까? 이제는 한국 개신교회가 개혁 대상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그리스도교에 몸담고 있는 개신교 신학자로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한국 개신교회의 풍경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풍경 하나. 얼마 전에 그리스도교신학대학의 손원영교수가 파면되었다.
김천 개원사에서 몇 개인교인에 의해 훼불사태가 났을 때, 손교수는 이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이를 돕기 위해 모금을 나섰다. 이 대학의 이사회는
이런 행동이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파면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종교 평화의 길을 닦고자 시작했던 소박한
작은 일이 사형집행에 해당 ‘파면’으로 돌아왔다. 그 대학의 외부인이 보기에 상식 밖의 결정이 대학이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정체성을 지키는 정당하고
당연한 결정이란다. 그리스도교 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종교간 평화와 화해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학대학과
개신교회, 그런 개신교인들은 이미 키메라가 된 것은 아닌가?
풍경 둘. 대통령 탄핵 용인을 선고 하던 날 헌법재판소 앞에 있었다.
선고 후 탄핵반대집회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한동안 그 주변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권사님, 수고하셨습니다.” 한 남자가 중년 여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하는 말이다. 주변에 몇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태극기
집회에 보수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이곳저곳에서 들었다. 서북청년단으로 유명한 한국 최초의 메가처치에서 나이든 월남민들을
중심으로 탄핵반대 집회의 참여를 호소하는 사발통문이 돌고, 세계 최대를 주장하는 2세대 메가처치의 대표 교회는 3.1절 기도회를 빙자해 집회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광고를 하고, 한국 주류 개신교단에서 이단으로 선언된 교회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이들 집회에 태극기와 미국국기와 이스라엘국기가 함께 나타났다. 태극기보다 두 배나 더 큰 성조기가 돌아다녔다. 탄핵된
전대통령의 삼성동집 담벼락은 ‘통곡의 벽’이 되었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와 이스라엘국기를 한 모둠으로 간주하는 행위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서울 강남땅에서 특정 개인을 위해 재현하는 한국 개신교인의 행태는, 내부자의 시선으로도 곱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신념과 이념과
경험이 함께 섞이면서, 한국 개신교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교분리를 해석하고 불을 뿜는 키메라가 아닌가?
풍경 셋.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밤(19일), 한국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가 공동의회를 열어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하고 김하나목사를 새로운
위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의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교단은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병이라는 합법을 가장한
변칙 세습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회의 (초)대형교회의 세습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을 감행하고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습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목사 한 사람의 의지로 세습이 이루어지는 경우
거의 대부분 교회 내부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지만 목사와 장로를 비롯한 평신도 지도층이 합의하는 경우, 외부의 비판과 무관하게 그 교회의
세습은 연착륙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해관계는 무엇인가? ‘돈’이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과 동산
자산을 갖고 있다. 또한 대형교회는 여러 기관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국내외에 대학을 비롯한 학교와 병원, 방송국을
비롯한 언론사, 여러 종류의 사회복지 재단 등 수많은 기관을 운영한다. 대형교회의 평신도 리더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운영하는 이런 부속 기관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이런 기관들은 자신들의 직장이고 생업이다. 대형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또
성장 결과의 혜택을 함께 공유하는 경제공동체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바뀌는 것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것과
유사하다. 기득권을 쥔 사람들은,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할 경우 나타날 혼란을 강조하는 위기 담론을 만들어내고, 세습을 통한 현상유지가 최선이며
그것이 교회를 위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은퇴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세습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자신의 얼룩을 그대로 덮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들에게 자신들이 속한 한국교회나 한국사회는 우선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교회를 매개로한 자신들의 생존과 비즈니스가 최우선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에서 성공한 세습은 이렇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기득권 연장의 암묵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하나님과 맘몬이 한 몸을
이룬 키메라 교회다.
개신교 개혁운동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의 개신교회 너무 멀리 나왔다. 키메라가 된 한국 개신교회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신재식_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