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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명문한의학회(명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양종순
반갑습니다.
저는 경산시민교회를 섬기는 양종순집사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잠시 돌아보며 한없이 부족한 제가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힘이될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랍니다.
저는 나이롱신자였다고 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무늬만신자인..교회뜰만 밟고 다니는 허울뿐인 신자였다고 고백합니다.
어릴 때부터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 안에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깨닫지는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청년시절 80년대 데모로 얼룩진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스크럽을 짜고 거리를 활보하며 췌루탄까스속에서 전경들과의 몸싸움으로 수업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았던것 같습니다.그래도 밤이면 ywca 여성기독단체에서 운영하는 야간학당에서 만학도들을 가르키며 많은 체험을 할수가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제손을 잡고 계셨던것이지요.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주말과 주일이면 많은 약속과 모임속에 주일성수를 멀리 했고 세상적인 화려한 삶속으로 빠져들어 잘 살고만 있는줄알았어요.지금생각하면 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손을 놓아 버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저만 외도를 하고 배신했을뿐 여전히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올 이죄인을 잡고 계셨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둘을 키우면서 세상적으로 성공적인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어머니회장으로 사회에서는 미술선생님으로 낮에는 강의실로 밤에는 개인랫슨으로 경제적으로도 풍족했고 존경받는 바쁜 삶을 살고 있었죠.주일이면 친구 가족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관광을 다니고 연유가 길면 설악콘도로가서 휴식을 취하다 오는그런 생활을 하면서 포항으로 남편이 발령을 받게 되면서 저의 삶은 변화가 오게 되었지요.
황장로님께서 극동방송 지사장으로 오시면서 방송사에 사람이 부족한지라 방송국은 저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동안 포항극동방송에서 방송선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항극동방송 개국과 동시에 "쉼터가있는오후"를 이피디와 생방송으로 함께 하면서 개스터로 오시는 많은 목사님들과 전도사님 성도님들의 간증과 말씀안에서 하루하루 영적인 성장을 할수 있도록 해주셨고 남부교회 목사님과 신앙상담코너도 할수 있어서 무늬만 신자가 변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소망의 기도 시간 정원근 목사님의 불같이 뜨거운 무릎기도로 많은 병든자가 치유를 받고 고통중에 있는자들이 회복을 하는 모습을 직접 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죠.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고 있음을 느꼈을때 방송사에서 개척교회 목사님을 만나게되었고 은평교회 박 우석목사님과 함께 이훈목사님이 사역하고계신 포항구룡포 석병교회 하늘마음양로원을 취재차 방문하였고 그것을 인연으로 매달 두번씩 점심식사수발과 누워계신 중증지체장애 할머님들의 목욕과 미용부분을 봉사를하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아쉬움으로 남은일들이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먼저 신앙 안에서 변화시키게 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힘만으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말씀들고 전도 하고자 할때 많은 분들은 접근을 꺼려했고 두번 이상의 만남을 피하는 것을 보고 복음이 들어 가기 이전에 먼저 떡을 먹이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제가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고 기도하는 일밖에는 없었습니다. 프로가 개편되면서 "기아대책, 섬기는사람들 경북지역본부" 와 함께 손을 잡고 "주님사랑 온누리에~"라는 프로를 맡아서 빈곤결손가정 아이들과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알리며 떡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고 마흔일곱명 아동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방송을 통해 소개하면서 간증이 아닌 지난시간을 돌아보는 열정적이었던 소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빈곤 결손가정 아이들과의 인연을 통해서 가슴아픈 사연들도 많았지만오히려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들을의 모습속에서 많은걸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 이기도 하였습니다.
방송사역을 하면서 미션스쿨인 대동중학교 학생상담교사를 맡아 개별상담과 집단상담 성교육을 담당하면서 다시한번 주님의 사랑을 전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흔일곱가정을 돌며 많은 아이들에게 영적 부모를 연결해 주고 어느아동하나 가슴속에 남아 있지 않은 아동이 없지만은 특별히 너무도 어린나이에 많은 상처를 입고 지속적인 방문과 사랑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용서를 구한 가정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할머니랑 행복하게 살고싶어요"라고 말하는 첫번째 취재한 4학년여학생 미진이..
미진이의 어머니는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급기야는 부부싸움이 격해지자 어린 미진이를 잠깐 나가라 하고는 방문을 잠그고 아버지를 부억칼로 살해해 교도소에 5년형을 받고 수감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미진이와 동생 혜진이는 이 사건 이후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며 근처에 사는 고모가 엄마처럼 보살펴 줍니다. 그 당시 미진이는 7살 동생 혜진이는 2살이었습니다.
그 후 미진이 친가 쪽과 외가 쪽은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이없는 사건에 하루아침에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매일 불면증과 화병에 몸져누우셨고 설상가상으로 외가 쪽에서 아이들을 달라는 친권재판을 소송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살해한 살인죄를 저지른 그런 여자에게는 아이들을 양육할 자질과 성품이 전혀 없다며 아들까지 빼앗겼는데 손녀들까지 빼앗길 수 없다며 시작된 재판이 수 차례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또 재판에 참여해 진술하는 할머니는 "지금 나는 너무 억울해 내 뼈 속까지 통곡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치십니다.
고등법원까지는 법이 할머니에게 손을 들어 주다가 대법원에 가서 결과가 뒤집혀 재판결과는 어머니가 키우는 쪽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어머니 쪽이 아마도 보험금 때문에 그렇게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일거라며 남편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아이들까지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4년 동안 수 차례 재판을 하는 동안 생계를 뒤로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할머니와 고모는 거의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아이들을 줄까 생각을 하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며 다시 생각을 고칩니다.
미진이가 밥 잘 안먹을 때 말 안들을 때 마다 "엄마에게 보내줄까?" 라고 하면 미진이는 아빠를 죽인 엄마가 너무 싫다며 대성통곡하면서 "할머니나 혼자 가라 나는 여기서 살거야, 나 엄마한테 보내면 집 나가 버릴꺼다"라며 엄마에게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매일 긴머리를 만져주던 아빠 까칠까칠 수염 난 볼로 얼굴을 비비며 뽀뽀해 주던 아빠가 미진이는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가끔씩 친구들이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해 울고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쉽게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사랑이란 말은 참 흔하게 쓰이지만 책임지는 사랑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듯 합니다.
미진이의 가정을 볼 때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의 결과가 어떤지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의 불화와 imf로 인한 연쇄부도로 파괴되어버린 가정... 그 사이 버려진 아이들...
그 상처를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미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미진이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 마음을 위로하시고 아픈 상처를 딛고 멋진 선생님의 꿈을 이루어 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자라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방송이 나가고 바로 후원자가 연결되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가정은 구원이 되었고 미진이 어머니 역시 하나님을 영접하면서 서로가 미워 하기 보다는 불상히 여기며 화해할수 있는 놀라운 사랑의 기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 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려면 안 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되지요.
저는 순종이 왜 중요한 지 방송을 하면서 알았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모두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명령을 내리시지요. 예컨대 아브라함에게 목적지도 없이 이 땅을 떠나라고 하신다든가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고 하신다든가
그 많은 군사를 다 보내고 300 명만 남겨서 싸우도록 하신다든가 하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결론은 어땠나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마다 많은 복을 받았고 또한 그 때서야 하나님의 놀라운 숨겨진 섭리를 깨닫곤 했지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설교중 달란트에관해 설교하신적이 있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재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 한다고요.
생명, 시간, 재능, 물질 그 모든 것을..
설교중에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달란트를 받은 종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인가? 그리고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 없는 종"이라는 책망을 듣지 않고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앞에서 옳게 사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려죽으시고 구속하여 주신 일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보다는 마음의 양식으로 늘 함께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그 말씀아래 몸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순종하며 노력하고싶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태산을 옮긴다는 말씀이 있듯이 우리는 무조건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약함으로 강함을, 절망으로 희망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새삼 깨닫게 해준 시간들이었고 영적으로 많이 성숙시켜준 귀한 시간들임을 이시간 고백합니다.
방송하는중 마이크 앞에서만이 아닌 현장에서 만나는 개인과 가정 나라와 세계를 살리는 전도 기회를 많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남편과 함께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남편직장에서 많은 혜택을 주어 작은 비용으로 언어 공부를 할수가 있었답니다.
퇴근길 어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란히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길은 늘 데이트하는 연인들마냥 행복했었답니다.한단계한단계 준비하던중에 중국에서 오신 한동대 최지성교수님을 만나게 해주셨고 최교수님의 안내로 모든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3년간의 방송사역을 마무리 하면서 중국쑤저우로 아이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중국인민공화국의 교회는 삼자교회와 지하교회로
두가지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에서 인정을 해야만 십자가 탑을 지을수 있다는 교회 즉, 인민공화국에서 인정한 삼자교회와 또 하나는 함부로 허가도 없이 교회다 치고 가정에서 강대상 하나만 있으면 예배 드릴수 있는 지하교회로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잡아 간다고 하는 가정교회.
그렇게 시작된 무더운 여름날의 중국지하교회의 생활
공안들을 피해서 두꺼운 커튼을 치고 찬양을 소리죽여 부르며 예배를 드릴때 늘 문밖에서 공안들의 동정을 살펴야 하는것이 저의 일이었지요.
가슴조이며 죽도록 갈망하면서 드리는 산제사...그때의 뜨거움은 말로서는 표현할수 없습니다.조선족 교포들이 예배에 참석하기위해 올때 문앞에서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감슴조이며 친척처럼 모시고 들어와야 하는 그마음..함께 식사를 하고 말씀을 배우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들에게는 성경책조차 살수 없는 형편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교사 자격증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를 보내와 학교측에서 인민공화국 교육국에 제출을 하였고 저는 인민공화국의 초빙교수로 인정이 되었고 인터네셔날 스쿨에 미술교사 자격증이 나오게 되었답니다.내적으로는 청소년선교가 목적이고 학교에서의 역활은 아이들 생활지도와 성교육을 맡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를 하는 형식이었고 함께 파송된 김중원전도사님의 역활은 태권도 사범으로 매일 오후 체육관에서 호신술과 태권도를 지도 한다는 명분이었지요.
학교측과 는 비밀리에 한국학생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지저스홀릭이라는 기도 모임이 구석진 강의실과 커튼이 쳐진 무용실등을 이용해서 전도사님의 인도로 학생예배가 시작되었답니다.그시간 저는 늘 창문밖에서 망을 보며 곳곳에서 경비를 서는 공안들을 지켜야 했고 혹 일이 생길시 바로 알려서 상황을 대처할수 있도록 숨막히는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학교안에서의 종교행위는 교육국과 인민공화국에서 철저히 막고 있는 상황이 중국의 상황입니다.발각될시에는 전도사님과 저는 현장에서검거되고 추방당하거나 감옥행을 할수 밖에없고 소리없이 총살당할수도 있는 실정이었지요.
이곳에 계신 성도님들 복받으신분들입니다.마음껏 찬양하고 통성으로 기도하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수 있다는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일년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아이들과 한국으로 돌아왔답니다.
남편이 포항에서 대구로의 발령을받아 결국이사를 하여 교회를 옮길수밖에 없었지요.
"브니앨기독서점" 이진형집사님께서 저희가정을 경산 시민교회로 인도해주셨고
지역빈곤결손가정을 우선으로 하는 무료미술교실로 어린아이들에게 하기를 예수님께 하듯이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겸손,순종을 바닦에 깔고 교만하지 말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교회”로 우리 몸된시민교회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새신자부를 섬기고 있답니다.
요즘 백화점이나 동사무소를 가보면 지나칠 정도로 직원들이 친절하게 손님을 대하는 걸 볼 수 있지요. 고객을 왕 같이 여기고 그들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얻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깨달음에서 친절정신을 배우기로 하였지요.
여러분 자신부터 생각해 보세요.전도는 열심히 하지만 용기를 내서 교회에 나온 이들을 친절히 안내를 해주고 보살펴 주었는지를.. 전도를 못하면 친절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특히 개척교회인 저희 교회에서는 들어온이상 절대로 놓쳐서는 않된다는 입장이지요.
주일날 주보 나눠주는 안내자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필요를 찾아 돕는 사람임을 알아야합니다.
내 집에 온 손님처럼 처음 방문하는 첫손님들에게 교회에 처음 나오던 날을 생각하며 '기분좋은 아는 사람'이 됩시다.
마지막으로 저의 부부는 퇴직후 해외선교를 목적으로 준비하는 중입니다.
현제도 기회가 있는한 국내의료봉사와 해외의료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물질, 명예, 권력..이러한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날 놓고싶지 않아도 이 땅에 놓고갈 헛되고 헛된것 입니다.
멀리 잡고 보니
이젠 좀 마음적으로 여유 있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즐기면서 준비하겠습니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삶 저희 가정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일에 충성하고 계시는 오늘 모인 여러성도님들에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삶이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지금의 저희 가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역경과 시련이 우리 가정안에 있었으며 명문스승님을 만남으로인해 남편이 변화되고 명문의술을 통해 많은 믿지않는분들을 향해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며 주님중심으로 변화된 가정으로 회복 되어질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분이시며 동행하시는 분이시고 고난을 유익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며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동안 여러 모양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서 늘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모든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이시간을 허락해 주신것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집사님의 가정을 이끌어 오셨고 앞으로도 이끌고 가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지나온 생애보다 남은 생애가 더 복되기를 소망하며 가정의 귀한 비전이 주의 은혜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