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전역한 직후,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기로 결심한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허나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이다 보니 여행 정보부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기후와 지형이 독특한 아이슬란드로의 배낭여행이 부모님께 조금은 무리한 여행은 아닐지, 힘들게 가는 만큼의 만족감을 얻으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 땅 위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8일 동안, 아이슬란드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그 어떤 여행보다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선사해주었다.
글과 사진 염현교 에디팅 이소윤 기자
염현교 l 경기도 성남시 이매동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지만 컴퓨터보다 예술과 사진, 여행을 더 좋아하는 대학생이다.
아이슬란드 최고의 인기 투어, 골든서클Golden Circle
겨울철의 아이슬란드를 차량 없이 이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행객들은 차를 렌트하거나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투어 상품을 이용한다. 관광이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인 만큼, 다양한 여행사들이 계절마다 다양한 투어 상품들을 내놓는다. 그중에 계절에 상관없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투어가 바로 ‘골든서클 투어’이다. 골든서클 투어는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ik 인근의 인기 관광지 세 곳을 묶어
하루짜리 일정으로 만든 투어이다. 우리가 이 투어를 신청했을 땐 70인승 대형 버스가 빈자리 없이 가득
찼었다. 유럽 각지에서 주말을 이용해 아이슬란드에 온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투어는 먼저 ‘싱벨리르 국립공원Thingvellir National Park’으로 향한다. 이곳은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의 경계 위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판이 벌어지는 판의 경계를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서기
930년에 세계 최초의 의회가 열렸다고 한다. 불모의 땅이라고만 생각했던 극지방에서, 흔히 야만족의 대명사로 생각되는 바이킹족이 ‘세계 최초의 의회 정치’를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가치덕분에 2003년에 공원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다음 들린 곳은 ‘황금 폭포’라는 이름을 지닌 ‘굴포스Gullfoss’이다. 넓은 협곡을 가로지르던 세찬 물살이 물안개를 일으키며 절벽 아래로 시원스레 떨어진다. 마침 우리가 굴포스에 간 날은 햇살이 무척 좋아
황금빛 폭포를 볼 수 있었다.
황금폭포 굴포스의 자태. 신비로운 얼음동굴의 모습
게이시르의 간헐천 지대. 곳곳에서 간헐천들이 수증기를 뿜는다.
간헐천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싱벨리르 공원에서는 판 운동으로 생겨난 협곡 사이를 걸어볼 수 있다.
골든서클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게이시르Geysir’이다. 게이시르는 ‘간헐천’이라는 뜻인데,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지열지대이다.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간헐천들이 모락모락 뜨거운 증기를 내뿜으며 끓고 있다. 그리고 3~5분 간격으로 하늘 높이 물이 솟아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남부 해안South Coast
골든서클 투어를 다녀온 다음날, 우리는 2박3일 남부 투어를 떠났다. 남부 투어는 레이캬비크를 출발해 남동쪽에 있는 아이슬란드 최대의 빙하지대인 ‘바트나이외쿠틀Vatnajokull’과 근처의 ‘스카프타펠 국립공원Skaftafell National Park’, 빙하 호수인 ‘요쿨살론Jokulsarlon’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남동부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요쿨살론 보트 투어와 트레킹을, 겨울에는 얼음 동굴과 오로라를 체험해 볼 수 있어 장기간 아이슬란드에 간다면 꼭 들려봐야 할 장소이다. 처음 아이슬란드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얼음 동굴과 오로라였기 때문에 나는 어느 때보다 남부 해안 투어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 결과는 역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얼음 동굴은 기대 이상으로 환상적이었다. 설원 한가운데 드러난 틈 속으로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건 온통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얼음뿐.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지구상에서 ‘breathtaking’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비록 시기가 맞지 않아 오로라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아이슬란드에 다시 와야 할 이유로 남겨두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고요한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레이캬비크는 위도 상 지구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이다. ‘Reykja’는 ‘연기가 나는’, ‘Vik’는 ‘해안, 만’이라는 의미로, 정착 초창기 바이킹들이 근처의 간헐천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보고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20만 명 내외로, 한 국가의 수도임에도 복잡하거나 번화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시 외곽이나 주요 교차로에만 4차선으로 차가 지나다니고 그 외의 골목은 심지어 일방통행로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시내 관광은 더욱 아기자기한 맛이 났다. 레이캬비크 관광은 명소를 찾아다니기 보다는 골목골목을 누비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여유롭게 거리를 실컷 거닐어 본 후, 이른 저녁 숙소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여유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그래도 도시 내에서 가봐야 할 명소들은 몇 군데 있다. 우선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Halgrimskirkja’가 있다. 이는 루터교 교회로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독특한 모양새의 건축물이다. 안쪽에서는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레이캬비크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항구 근처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항구 바로 옆의 아름다운 콘서트홀 ‘하르파Harpa’, 박물관과 360도 전망대가 있는 남쪽 언덕의 ‘페를란Perlan’ 역시 둘러보는 것이 좋다. 바이킹들의 레이캬비크 정착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정착박물관인 ‘8712 박물관’도 추천한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온천 블루라군Blue Lagoon
여행의 마지막에는 원래 푹 쉬면서 노독을 풀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전날에는 다함께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블루라군 리조트는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대형 여행사에서 데려다주고 다시 시내로 또는 공항으로 태워다주는 상품을 운영하고 있어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 도착해 입장권을 구매하고 샤워를 한 다음 온천에 들어가면 된다. 해수 온천인 블루라군에서는 온천수 안에 들어있는 미네랄 성분이 피부에는 좋지만 머릿결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샤워장에 비치되어 있는 컨디셔너를 꼭 사용하는 것이 좋다.
쌀쌀한 겨울이었지만 뽀얀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주변을 두르고 있는 화산 지대와 산, 하늘을 바라보면 추위도, 피곤함도, 걱정도 모두 사라진다. 그저 여유를 즐기면 된다. 온천 한가운데에 바가 있어 맥주나 칵테일, 과일 스무디 등의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온천 가장자리 곳곳에는 피부에 좋은 실리카 머드Silica mud를 담아놓은 통이 있다. 얼굴에 바르고 5~10분 후에 씻어내면 각질 제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리조트 출구에서 실리카 머드를 이용한 미용 제품들을 팔고 있는데 뛰어난 미용 효과와 더불어 살인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춥지만 포근한 이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아이슬란드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정말 친절하다.”라고. 실제로 내가 만난 사람들 역시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고, 유쾌했다. 자기네 나라 이름 앞에 ‘N’을 붙여 ‘나이슬란드NIceland’라고 불러야 한다던 사람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This is Iceland!”라며 웃어넘기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이슬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평화로운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아이슬란드의 새하얀 풍경들과 사람들의 맑은 웃음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슬란드를 떠나던 순간부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와 여행 초기 어머니께서 편찮으셨던 힘든 기억들도, 되돌아보면 추억들로 남게 되었음을 느낀다. 아이슬란드 곳곳을 다니며 겪은 잊지 못할 색다른 경험들, 이러한 새로움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재산이 되어 계속 마음 속 깊이 자리할 것이다. 또 이따금씩 다른 여행을 꿈꾸게도 한다. 이 재산을 쌓아가는 맛에 여행을 끊지 못할 것 같다.
끝으로, 부족한 아들과 함께 이런 난이도 높은 여정을 함께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블루라군 온천.
할그림스키르캬 전망대에서 보이는 레이캬비크 시내.
스비나펠스요쿨에서의 빙하 트레킹.
호수와 이어진 해변은 이런 얼음들로 장식되어 있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요쿨살론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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