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른바 ‘연중론’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 하나는 홀리조이 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그러께 말{양무리 마을} ‘김성수 목사 신학 알아보기 토론’ 때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탈퇴하신 뒤, 홀리조이 님이 온갖 조소가 섞인 인격 모독의 언어로 강릉예명 목사님 인격을 살인하는, 이른바 군사용어를 빌리자면 “확인 사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에서 저는 ‘불신자들도 저러지는 않는데, 홀리조이 님 저 모습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열매가 아니다.’는 생각으로 ‘연중론’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 하나입니다.
물론, 홀리조이 님이 온갖 희롱의 글로 강릉예명 목사님 인격을 살인하실 때, 저는 홀리조이 님에게 “떠난 분 뒤에 대고 조롱하는 일은 덕스럽지 못한 일이니, 그만두셨으면 합니다.”는 ‘권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홀리조이 님이 제 ‘권면’을 받아들이시지 않자, 저는 “저에게는 홀리조이 님 조롱의 글들을 업그레이드하는 말장난으로 홀리조이 님 조롱의 글들을 홀리조이 님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재능이 있습니다.”는 댓글까지도 썼습니다.
제가 ‘피터 마스터스 목사를 절대로 여기는 홀리조이 님’의 ‘존 머리 목사님에 대한 적개심과 이른바 “순중론자”들에 대한 적개심’에 따른 ‘거짓증거’ 두 가지를 ‘텍스트(팩트)’를 적시해 증거했습니다.
엎은 물을 주어 담을 줄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거짓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증거’를 했을 때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에 심기신 율법’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 ‘거짓증거’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할 줄도 압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반 사역’으로 엎은 물을 주어 담을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증거’를 했음에도 그 ‘증거’가 ‘거짓증거’임을 깨닫지도 못하는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성경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 그대로 버려두신 자들’로 묘사합니다.
홀리조이 님을 존경하고 연중론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홀리조이 님의 이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셔야만 합니다. 무엇이 홀리조이 님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 ‘현실’을 직시하셔야만 합니다. ‘직시’하셔서 홀리조이 님과 함께 ‘양심에 화인을 맞는 길’로 가지 마셨으면 합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는 까닭으로, ‘내 생각으로는 연중론이 옳다.’는 생각으로 홀리조이 님 ‘거짓증거’를 가볍게 여기지 마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