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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악마인가 p.506
철학자들은 감정이 이성과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고,
특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과 반대가 된다고 생각해 왔다.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
감정은 종의 생존에 유익한 짝 선택 기능과 사회적, 적응적 기능을 수행한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감정이 없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는가? 감정이 없으면 판단력 장애가 생긴다. p.506
인간은 감정이 있다. 희로애락애오욕구(喜怒哀樂愛惡慾懼)의 8정(八情)이 그것이다. 감정은 (깨달음과 지혜를 획득하는데) 부정적인 것이고 반드시 없애야 하는 대상인가? 도통(道通)하면 이런 감정은 다 없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감정은 궁극적으로 사회생활에 부적절한 것인가?
사고로 뇌의 특정 부위가 다치면 감정이 없어진다. 문자 그대로 감정이 사라진다. 감정 중추에 이상이 와서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대뇌변연계가 감정을 담당한다). 감정이 없으면, 쓸데없는 감정이나 기분에 휩쓸리지 않아서, 결정을 더 잘 내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임상 관찰 결과에 의하면, 뇌 부상으로 감정이 사라진 사람은 일상적인 판단ㆍ결정을 하는 데조차 심하게 어려움을 겪는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냉철한 지도자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부하들에 대한 애정ㆍ신뢰와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다. 명태조 주원장은 개국공신들을 거의 다 주살(誅殺)했지만, 명장 서달은 천수를 누렸다.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일관하며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여 그들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충성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조세핀에게 급히 달려가겠노라고 매번 열정적인 편지를 보냈다.
장고(長考)로 유명한 바둑기사 이창호가 속기에 약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속기전(速棋戰)에서도 많이 우승했다. 프로 바둑기사들이 시간을 쓰는 것은, 대체로, 다음 수를 발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직감적으로 떠오른 수가 최선의 수라는 것을 확인하는 논리적인 과정이다(물론, 직감도 당연히 질의 차이가 있으며, 각자의 능력 즉 기재(棋才)에 따라 처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수의 품질이 결정된다). 직감적으로 떠오른 수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라 할지라도, 그 몇 개만 검토하면 되므로, 아무 수도 안 떠오르는 것보다는 무한히 유리하고 효율적이다.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수가 없으면, 무지막지하게 많은,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느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즉 제한 시간 내에 다음 수를 두지 못한다. 감정은 지극히 평등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그러면 인간은 그 질서를 따라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감정이 없으면 인식 기능 장애가 생긴다. p.508
안면실인증(顔面失認症-prosopagnosia)은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양 등 동물의 얼굴은 구별하지만, 유독 사람의 얼굴만 구별하지 못하는 신기한 증상이다. 사물의 모양과 감촉을 처리하는, 측두엽과 후두엽 사이에 있는, 방추회가 뇌졸증 등으로 손상되어 일어난다. 유명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한때 이 증상에 걸린 적이 있다.
비슷한 증상으로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란 망상이 있다. 시신경은 말짱하지만, 시신경과 변연계 사이의 신경회로가 끊어진 사람이 겪는 증상이다. 이런 사람은 아는 사람을 만나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보고 "누구신지 몰라도 우리 엄마하고 무지 닮았네. 당신, 우리 엄마 행세를 하는 사기꾼 맞지?"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보는 사람의 모습이 형상으로서는 어머니 모습이라고는 알아차리지만, 친밀감, 사랑 등, 어머니에 대한 특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로의 신경회로가 차단되어 시각 정보를 변연계로 전달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그 결과, 자기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고 어머니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없으면 이런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
참나론자들과 범아일여 힌두교도들은 코타르 증후군 환자 p.508
증세가 심한 경우,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코타르 증후군(Cotard's syndrome) 또는 ‘걷는 시체 증후군(walking corpse syndrome)’이다. 희귀한 경우에는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믿는다. 자아존재에 대한 인식 기능의 결핍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어디서도 자신을 볼(찾을) 수 없으니,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참나론자들 역시 코타르 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 자아, 즉 나의, 공(空)함을 보고는 지금의 (번뇌로 더럽고 고통스러운) 자기는 존재하지 않고, 따로 (번뇌가 없어 깨끗하며 즐거운) 불멸의 자아(참나)가 존재하고, 사실은 자기가 바로 그 '상락아정의 참나'로서 불멸의 존재라 믿는다. 이 증세가 전문 수행자들처럼 장기간의 강렬한 참선의 결과 뇌에서 일어난 커넥톰(connectome-신경망 작업)의 구조변화로 일어난 경우는 (자기가) 진짜 그렇게 불멸의 존재라 느끼므로 코타르 증후군이지만, 장기간 강렬한 참선의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뇌 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생생한 의식 경험이 없이, 그냥 "나는 불생불멸의 참나다"라고 하며 앵무새처럼 흉내나 낼 뿐이므로 코타르 증후군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타인성(他因性) 과대망상증이다. 그 증거로는 자기가 불멸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겠노라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불 속으로 뛰어들거나 목재소 대형 전기톱으로 돌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감정이 없으면 직관(直觀)도 없다. p.509
감정이 없으면 감정이 제공하는 직관이 없다. 그래서 감정이 없는 경우, 시간 내에 즉 위험이 닥치기 전에 결정을 내리려면, 이성을 맡은 뇌용량이 엄청나게 커야 한다. 이성은 직관이 아니므로 가능한 경우를 모두 검토하여야 한다. 실제로 체스(서양장기)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1997년 5월 IBM이 만든 체스 컴퓨터 딥블루(Deep Blue)는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격파했다.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이었다. 어마어마한 용량을 지닌 슈퍼컴퓨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인간을 이긴 것이다. 딥블루는 가능한 천문학적인 모든 경우를 검토하고도 제한 시간 내에 인간을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 경기 결과(3.5점 대 2.5점)는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었으므로 인간의 체스 능력은 슈퍼컴퓨터나 동일하다는 말이다. 즉, 역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직관을 지녔으므로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컴퓨터공학이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하면 컴퓨터의 능력은 인간의 뇌를 넘어서게 될 것이며, 그때는 컴퓨터 칩을 뇌에 내장함으로써 기억ㆍ추리ㆍ계산 등의 뇌의 기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그 후, 20년 만에 작은 방만했던 딥블루는 사람 손톱 크기로 줄어드는 기술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면 신인류의 출현이다. 뇌에 칩을 삽입하여 뇌의 활동을 돕는 것은 이미 동물실험이 성공했다. 지난해 2014년에, 팔이 없는 사람에 인공 기계팔을 연결하여 남아있는 팔 부위에서 (뇌에서 보낸) 전기적인 신경신호를 포착하여 인공 팔과 인공 손가락을 움직여 컵을 쥐고 놓는 일이 성공했다;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YouTube 참조). 미래학자들은 40년 내로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컴퓨터가 출현할 것이며, 심지어 의식을 지닌 컴퓨터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인간의 낙(樂) 중 많은 부분이 감정의 만족으로부터 나옴을 볼 때, 과연 감정이 사라진 인간이 여전히 행복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인간 불행의 주요 원인인 점을 보면, 구(舊)감정이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감정이 나타나도 꼭 해롭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탄생할 수 있다! 물고기,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이 그들과 전혀 다른 감정과 행복감을 지닌 것을 보면, 그리 상상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감정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p.511
우리 마음에 있는 감정은 직관적ㆍ본능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옳건 그르건, 그 결정은 대체로 옳거나 도움이 될 것이다. '대체로'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결정도 안 내리는 것보다는, 틀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대체로' 옳거나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존은 확률이기 때문이다).
공포(懼)는 그 상황이 생명에 직결되는 중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 (호랑이거나 늑대일 수 있다. 혹은 절벽이나 구덩이이거나), 노(怒)는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는 감정이다. 애(愛)는 좋은 열매나 좋은 짝짓기 상대를 본 것일 수 있으며, 오(惡)는 싫은 상대를 본 것, 즉 전염병에 걸리거나, 거렁뱅이이거나, 우리와 같은 도덕을 공유하지 않아서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떠돌이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볼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그런 감정이 일어난다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특정인을 볼 때 안 좋은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많은 경우 과거에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과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기계적인 감정이며,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단, 면밀하게 살펴서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살필 일이다. 감정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포(懼)와 증오는 적대적인 타 부족이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낯선 사람을 상대할 때, 꼭 필요한 감정이다. (지금 브라질 열대우림에 사는 석기시대 원시인 야노마뫼족은 방심하는 사이에 적의 활이나 몽둥이에 맞아 죽고 부인을 강탈당한다) 위험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지 않거나, 해를 주는 존재를 증오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는 것보다 생존에 불리함은 명확하다. 증오는 해를 주는 존재는 피하게 하는 회피기능을 한다. 경보장치가 없으면 화재ㆍ홍수 같은 재난에 크게 피해를 당할 위험이 큰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감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죽어도 그만’이라는 수행자에게는 없어도 되지만, 만약 그 수행자의 후원자들과 추종자들조차 공포와 증오의 감정이 없어서 외부 위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멸종한다면, 그 교단도 멸종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큰 이념을 지닌 (고등) 종교일수록 큰 지지그룹을, 즉 큰 국가나 사회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우주적으로 큰 이념을 지닌 종교는 문화나 국가가 클 때 나타난다. 즉 집단의 큰 규모로 인하여, 생존에 대한 위협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큰 이념을 지닌 종교는) 증오와 공포가 별로 필요 없는 거대(巨大)집단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국가는 서로 전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이와 같이 ‘희로애락애오욕구’ 즉 8정이라는 8가지 감정은, 현재 상황을 8가지로 분류하여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46억 년 진화과정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매번 의식적으로 정보처리를 할 필요 없이, 뇌가 즉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계산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8가지 감정이라는 서로 다른 색깔을 이용하는 이유는, 색깔이 같으면 정보의 구분이 어려우므로 색깔을 달리해서, 즉 크게 나누어서 8가지 다른 방법으로, 반응과 대응을 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도 그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세속인간은 감정의 증폭(amplification)이 일어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것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았을 때, 알아차리기 힘든 미약한 통증만 일어난다면 크게 화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다른 인간들과 경쟁하면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면, 경보가 예민하게 그리고 확실히 울려야 한다. 그러나, 가족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에게는, 그리고 죽음이 즉 생물학적인 멸종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실제로, 숲에서 살다가 맹수 밥이 된 수행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맹수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는 수행자들의 증언도 남아있다).
육체적 통증을 못 느끼는 병을 무통증(無痛症, analgesia)이라 부른다. 말초신경, 척수, 뇌 등에 이상이 생겨 뇌로 지각ㆍ촉각ㆍ통각ㆍ온도각 등 감각 정보가 전달되지 못하거나, 전달되어도 통증을 못 느끼는 증세이다. 통증이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위경련이나 맹장염이나 치통으로 지독한 고통을 받아 본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무통증 환자는 경하게는 모기, 거머리한테 물려도 통증이 없어 물린 줄 몰라 그냥 피를 다 빨리며, 심하게는 끓는 물을 끝까지 다 마시다 혀와 식도에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으며, 맹장염에 걸리고도 통증이 없어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위궤양이 있어도 통증이 없어 모르고 지내다가 위벽의 천공(穿孔 구멍뚫기)으로 발전하여 죽을 수 있으며, 또 암이 생기더라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방치하다가 말기 암으로 진행해 급사(急死)할 수 있다. 감정을 잃는 것은 정신적 무통증에 해당한다.
감정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p.513
감정이 없으면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 자폐 환자와 같은 상태에 빠져,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다. 그 결과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서로 감정의 교환을 통해서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취감 자부심 등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일체감을 통해서 자아의 확장과 고양감(高揚感)을 경험하기도 한다 : 월드컵 경기를 보며 집단적으로 응원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감정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먹이이기도 하다. 같이 웃고 울며, 또 같이 기뻐하고 성을 내며, 타인과의 감정을 교환함으로써 감정은 증폭이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슬픈 감정 역시 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고 읽으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음은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심지어 공포조차도 먹이이다. 여자들은 여고생 괴담 같은 영화를 보며 공포를 참다못해 작은 연약한 주먹을 꼭 쥐고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을 찾는다. 자두, 콩국수, 쇠고기, 삼겹살 등 특정 음식을 몹시도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공포도 몹시 땡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강병균 교수 역저.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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