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김 영 일
삼돌인 햇볕 잘 드는 장독대 옆에 해바라기씰 심었다. 봉선화실 심었다. 분꽃, 나팔꽃도 심었다.
참새가 보고 있었다. 담장 위에서 저회끼리 귓속말 하며하며 보고 있었다.
한 밤 갔다. 두 밤 갔다. 세 밤 갔다. 그래도 씬 나오지 않았다. 지루하다. 정말 지루했다. 어째 씨가 나오지 않을까? 누가 삼돌이 몰래 씰 파버렸을까? 그렇지 않음 참새가 씰 콕콕콕 쫘 먹었을까?
그렇담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삼돌이 혼자 심은 씨. 해바라기씨, 봉선화씨, 분꽃, 나팔꽃씨.
삼돌인 실 파봤다. 살살 파봤다. 그냐 씬 그대로 있었다.
삼돌인 썰 다시 묻었다. 참새 몰래 다시 묻었다. 그리고야 안심했다.
한 밤 갔다. 두 밤 갔다. 세 밤 갔다. 그래도 씬 역시 나오지 않았다. 속상했다. 정말 속상했다. 어째 씨가 나오지 않을까? 삼돌이 혼자 심은 씨, 해바라기씨, 봉선화씨, 분꽃, 나팔꽃씨.
“엄마, 엄마.”
“왜 그러니?”
“씨가 안 나와.”
“무슨 씨, 당추씨?”
“누가 당추씨랬어.”
“금, 호박씨?”
“누가 호박씨랬어.”
“금, 무슨 씨냐?”
“해바라기씨지. 봉선화씨지. 분꽃, 나팔꽃씨지.”
“오오라, 네가 그런 씰 어디다 심은 계로구나.”
“앗차, 엄마.”
“왜 그러니?”
“엄마, 누구보구 말함 안돼.”
“왜?”
“파버림 어떻게 해.”
“싫어.”
“금 안하마.”
“엄마, 엄마.”
“왜?”
“씨가 안 나와.”
“언제 심었길래?”
“세 밤 갔어.”
“세 밤 자고 되나.”
“열 밤은 자야지.”
“열 밤 싫어.”
“싫어도 할 수 없지?”
“어째 할 수 없어?”
“안 나오는 씰 어쩌니?”
“어째 안 나와?”
“누가 아니?”
“어째 몰라?”
“모른다.”
“나오게 해야지.”
그렇다. 나오게 해야 한다. 삼돌이 혼자 심은 씨, 해바라기씨, 봉선화써, 분꽃, 나팔꽃씨.
이제 이제 싹이 나고 꽃이 핌, 곱게 곱게 핌, 삼돌인 그때만 생각하고 있었다.
열훌! 열흘은 싫다. 당장 나와야한다. 그래서 당장꽃이 피어야한다. 근데,
엄만 삼돌이 맘 모른다. 정말 모른다. 안타깝다. 속상했다. 울고 싶었다.
“엄마.”
대답없다.
“엄마.”
대답없다.
“엄마.”
꽥 소리쳤다.
“왜 그러니? 시끄럽다.”
엄마도 꽥 소리쳤다
“엄마.”
“글세 왜 그러니, 왜 그래?”
“엄마, 하얀꽃이 피우, 노량꽃이 피우?”
“피어봐야 알지.”
“피지 않음 몰라?”
“금, 피지 않은 걸 어떻게 아니?”
“피면 다 알 것 아냐?”
“금, 피어야 알지 어떻게 아니?”
“어째 몰라?”
“얘가 괜한 떼거지야.”
“누가 떼거지야?”
“금, 나오지 않는 씰 나오게 해내라고, 또 피지도 않은 꽃을 아르켜 내라니,
이런 질색할 노릇이 어디 있냐?”
“어째 몰라?”
“모른다.”
“하얀꽃이지, 노랑꽃이지, 빨강꽃이지, 분홍꽃이지.”
그렇다. 하얀꽃, 노량꽃, 빨강꽃, 분홍꽃이 핀다.
삼돌인 노랠 불렀다. 좋기만 했다. 나비들이 놀고 있었다. 나풀나풀 놀고 있었다. 해바라기꽃에 앉았다. 봉선화꽃에 앉았다. 분꽃, 나팔꽃에 앉았다. 회롱희롱 놀고 있었다.
참새들이 보고 있었다. 담장 위에서 저희끼리 귓속말하며 하며 보고 있었다.
참새들이 꽃을 콕콕콕 쫘 먹음 어쩔까?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삼돌인 눈을 떴다. 번쩍 떴다. 그나 해바라기도 봉선화도 분꽃, 나팔꽃도 피진 않았다. 쓸쓸했다. 안타까왔다.
“엄마.”
대답없다.
“엄마.”
“엄마.”
대답없다
“엄마.”
꽥 소리쳤다.
“엄마 골났수?”
“그래 골났다, 골났어.”
“골남 싫어.”
“금, 나가 놀아라.”
“엄마가 심어줘야지 뭐.”
“네가 심었다면서?”
“응, 그래도 엄마가 다시 심어줘.”
“왜?”
“나오지 않으니까 말이지.”
“내가 심음 나오나?”
“나오게 잘 심어줘.”
“내가 심어도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른다.”
“어째 몰라?”
“글쎄, 나오게 그냥 내버려둬야지, 어떻게 당장 나오게 하니?”
“그래도 싫어.”
“싫음 그만둬라.”
“누가 그만둔댔어?”
“금, 어쩌자는 거냐?”
“엄마가 심어줘야지.”
“그래, 그놈의 씨 어디다 심었는지 알기만 함 박박 파내버리고 말 테다!”
“파내버림 싫어.”
“정 그놈의 씨가 원수다, 원수야.”
“어째 원수야?”
“요 깍정아, 그래도------”
엄만 꽥 소리치고 빗자룰 내던졌다. 그 바람에 낮잠 자던 아기가 깨서 울었다.
“삼돌아, 이리 온.”
엄만 조용히 말했다. 그나 삼돌인 잘 안다. 이런 때가 삼돌인 젤 무섭다. 엄마한테 맬 맞음 그때뿐이다. 그뒤는 엄마한테 아양도 실컷 부릴 수 있고, 엄만
더 삼돌일 귀여워해준다.
그나, 지금마냥 웃지도 않고 삼돌일 부르는 건 싫다. 아니 무섭다.
아기는 더 느끼며 울었다.
“칵 죽어라, 죽어.” ·
엄만 아기 머릴 쿡 지르곤 누워서 젖을 물렸다.
엄만 가만히 생각했다. 삼돌이가 어디다 씰 심어놓고 조르는 건지 모른다. 나오지 않는 씰 당장 나오게 해달라는 떼거지 삼돌이 같은 아이는 이 세상 천지에 없을 게다.
엄마가 죽음 어떻게 될까? 삼돌이가 커서 제 잘못을 깨닫고 울게다. 그나 그땐 엄마가 죽고 없다. 칵 죽어버리자.
엄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함 서러웠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란 의지할 곳이란 없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6·25 때에 삼돌이 아버지가 공산군에게 끌려간 뒤로 삼돌이 남매률 데리고,
이제 그나마 삼돌이에게 정을 붙여 살 만한데, 삼돌인 엄마 맘도 모르고 속만 태웠다. 들들 볶았다.
“칵 죽어버리자.”
엄만 가지가지 설움이 한데 복받쳐 눈물이 나왔다. 자꾸자꾸 나왔다.
삼돌인 뜰 안에 우두커니 서서 방안만 들여다봤다. 엄만 암말 없다. 아기는 도로 자는지 울지 않았다.
삼돌인 홱 밖으로 나왔다. 쓸쓸했다. 울고 싶었다. 엄만 삼돌이 맘 모른다. 산마루에 올라갔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삼돌인 소나물 돌았다. 자꾸자꾸 돌았다. 어째 씨가 나오지 않을까? 어째 엄만 삼돌이 맘 몰라 줄까?
삼돌이 혼자 심은 씨. 해바라기씨, 봉선화씨, 분꽃, 나팔꽃씨, 이제 이제 싹이 나고 꽃이 핌, 그때 그때는---
삼돌인 그때만 생각했다. 꽃이 핌 아버지가 돌아오신다. 엄만 늘 그렇게 말했다. 그나 꽃이 피어 꽃이 지고, 다음 해 또다시 꽃이 피어 꽃이 져도 아버진 돌아오지 않았다. 영 안 돌아왔다.
몇 해를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그나 이 봄엔 꼭 아버지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노랠 불렸다. 봉선화의 모양은 처량하지 않았다. 곱다. 예쁘기만 했다. 해바라기 노래도 불렀다. 분꽃, 나팔꽃 노래도 불렀다. 좋기만 하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소나물 돌았다. 자꾸자꾸 돌았다. 역시 좋기만 했다. 소나무 위에 올라갔다.
저어기 아름다운 마을에 예쁜 꽃이 폈다. 해바라기꽃이 폈다. 분꽃, 나팔꽃도 폈다.
나비들이 놀고 있었다. 나풀나풀 놀고 있었다. 해바라기꽃에 앉았다. 봉선화꽃에 앉았다. 분꽃, 나팔꽃에 앉았다. 회롱회롱 놀고 있었다.
삼돌이도 아버지와 같이 놀고 있었다. 꽃인 양 나비인 양 희롱희롱 놀고 있
었다.
삼돌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함 아버지가 그리웠다. 더 그리
웠다.
가자! 해바라기 심은 집, 봉선화 심은 집, 분꽃, 나팔꽃도 심은 집, 삼돌이 집.
엄마가 삼돌이 없는 새에 씰 박박 파내버렸음 어쩔까 ? 그렇담 큰일이다. 정
말 큰일이다.
삼돌이 혼자 심은 씨, 해바라기씨, 봉선화씨, 분꽃, 나팔꽃씨.
삼돌인 소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쭈루루 미끄러져 내려왔다. 어디로 가는지 이름 모를 새가 혼자 울며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삼돌인 엄마도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엄말 못 본 것 같았다. 아까 엄마한테 떼거지 쓴 건 잘못이다. 엄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 아니, 아니, 그 새에 꽃이 피고, 아버지가 돌아오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엄마와 같이 삼돌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꼭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삼돌이가 떼거질 썼다고 죄다 일러바침 어쩔까? 그래서 아버지가 도로 어디로 가버렸음 어쩔까 ? 그렇담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아버지.”
앞산이 쩔렁 올렸다.
“아버지.”
또 앞산이 쩔렁 울렸다.
“아버지.”
삼돌인 줄달음쳐 집으로 돌아왔다.
빠알간 저녁놀이 뒤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