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II, 가을은 깊어가고...
a, 포도맛
오후 길이라 앞에서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인야는 정말 맘껏 포도를 따먹으며 길을 갔다.
마침 비가 활짝 갠 오후여서 기온도 적당했고, '비에르소(Bierzo)' 근방의 머루포도 같은 작은 알맹이의 포도가 어찌나 달던지 그는 행복하기까지 했다.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니 또다시 포도밭이 펼쳐졌다.
그런데 거기는 굳이 가꾼 포도를 따 먹을 필요도 없었다. 잡초가 우거진, 그러니까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포도밭의 포도만 따먹어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니 굳이 사람들 눈치 볼 이유도 없었는데, 역시 그 근방의 포도맛도 너무 좋았다.
물론 스페인의 가을 길을 걸으면서는, 이렇게 포도를 따 먹으며 걷게 되리라고 머릿속에 그리고 왔기 때문에 전혀 생소할 일은 아니었다.
막 벗어났던 '부르고스(Burgos)' 지방은 웬일인지 전체적으로 포도도 귀했고 그 흔하던 산딸기도 눈에 자주 띄지 않았다. 그런데 포도 수확이 한창인 요즘, 때를 맞춰 정확하게 찾아온 것처럼 '라 리오하(La Rioja)' 지방에 접어들자 포도도 다시 많아지고 산딸기도 많은 게 이상하기까지 했다.
'내가 거꾸로 걷고 있다고 세월마저 거꾸로 가는 건 아니겠지?' 하고,
인야는, 거기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이 리오하 지방이 과수가 잘되는 이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인야가 아는 건 오직 하나, 이 지방의 흙이 붉고 차지다는 것뿐이었다.
어쨌거나 리오하 지방에 접어들어서는, 주변에 포도가 널려 있어서 인야는 눈치 볼 일 하나 없이 손만 내밀면 잡히는 포도를 맘껏 따 먹으며 걷고 있었다.
특히 '아소프라(Azofra)', '나헤라(Najera)'에 이르기까지 포도밭 지역이기도 해서, 정말 말 그대로 신물이 나도록 포도를 따 먹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번 가을 길을 떠나오면서는 포도 따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포도 따 먹는 행위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물론 이젠 죄의식(?)도 거의 느껴지지 않으니(잘못된 행동 같지가 않다), 차라리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긴 했다.
그리고 포도를 따 먹다 보면 그 많은 포도들의 맛 역시 일률적이지 않아, 어떤 건 기가 막히게 달기도 하지만, 또 어떤 건 상대적으로 그 맛이 떨어져 괜히 큰 것을 잘못 따서 먹다간 아까워서 그대로 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양심상?), 가능하면 빨리 손을 털어야 하는데 큰 것은 한참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지팡이도 있고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도 있다 보니)도 있다 보니, 후회하기 십상이라 굳이 큰 것을 욕심내 딸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큰 포도송이 옆에 보면 항상 자그마한 자투리 포도송이도 있게 마련인데, 그런 건 따기도 쉬울뿐더러 심적인 부담도 적어서 주로 그런 걸 따먹게 되었는데,
수로 보면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안팎의 알이 작은 송이는, 그 꼭지와 줄기도 연해서 톡톡 잘 따지기도 하는 데다, 으깨지지 않은 상태로 직접 입으로 두드득 포도 알갱이를 떼어 먹을 수 있는 편리함도 있다 보니 나중엔 큰 포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 즈음의 인야는, 포도를 따면 포도씨와 껍질까지 한꺼번에 먹곤 했는데, 우드득 씹히는 맛에 달고 상큼한 물도 가득해서, 집에서 한 알 한 알 먹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포도알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잘 익은 단물이 입안에 쫙 퍼질 때는, 어쩐지 이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이거나 야생의 감정까지가 그대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던 것이다.
그렇게 인야는 그 자연(과일)의 맛인 과일만으로 목을 축이거나 배를 채우며,
'아, 정말 가을 까미노의 참맛이 이런 건가 보다.' 하며, 원 없이 길에서 포도를 섭취하면서 가을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구름이 해를 가리자 갑자기 추워져서, 인야도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거꾸로 가려니,
'이렇게 거꾸로 가는 게 얼마나 덧없는 길인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하고 대상도 없는 푸념을 뱉으며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날 여정도 꽤나 길었다. 오후 내내 인야는 긴 구릉길을 혼자 걸었는데, 어찌나 포도를 많이 따 먹었는지 포도즙으로 자줏빛 나는 손이 끈적끈적해서 식수로 가지고 다니던 물로 씻기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포도를 따먹어서인가?
어째 인야의 긴 행로가 이젠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는, 그러니까 종착역이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째 그럴수록 뭔가 아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모레 '에스뗄랴(Estella)'에 도착하고, 그 뒤에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닿으면 한 고비는 넘기는 거니까.
나바레떼는 그냥 미련 없이 통과했다.
다만 도심을 지나는데 한 호텔에 태극기가 보이는 것으로만 봐도, 이제 이 길엔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옛날엔 동양으로는 일본기만 있었을 텐데.
언덕을 다 오르자 멀리 '로그로뇨(Logroño)'가 보였다. 어느새 날은 활짝 개, 시야가 확 트여 깨끗하고 상큼한 오후가 돼 있었다.
그렇지만 인야의 입장에선 하루 여정의 막바지로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전에는 도심 인도를 통과했어야 했는데 이젠 공원으로 조성된 조금은 한가롭고도 전원적인 분위기가 나는 길로 바뀌어 있어서, 지루함이 덜했다는 것이다.
인야는 도심으로 접어들면서 이틀 뒤에 닿을 에스뗄랴에 사는 스페인 친구 이사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로그로뇨에 도착하고 있으니, 낼모레 에스뗄랴를 지날 것이라고.
전화를 걸고 났더니 마음마저 한층 안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2km 정도가 남았던 알베르게까지, 인야는 퍽 지친 모습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겨우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빨래도 생략하기로 했다.
어차피 낼모레 이사벨 집에 가서 하면 될 테니까.
다음 날,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니 그의 앞자리 프랑스인 등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알베르게에선 2.5유로에 아침을 제공하는 모양으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또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런 쪽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가려는데, 뒤쪽에서 왔던지 그 전날 밤의 프랑스인이 인야가 가는 방향을 보더니,
"왜, 그쪽으로 가요?" 하고 말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야가 자신은 거꾸로 걷고 있다고 하자, 깜짝 놀라던데, 아마 자기 딴에는 인야와 동행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아 영어로나 조금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는 그제야 그 뜻을 알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긴 했는데, 그의 얼굴에선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야 역시 조금은 감상적이 되어,
'그러고 보니, 나도 너랑 함께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누고 싶구나. 그러다가 뜻이 맞으면, 오늘 밤에는 같은 식당에 가서 비노라도 한 잔 마시면서 이 길을 걷는 여수도 함께 나누고. 그런데 난, 매일 아침 이런 식으로 독해져야만 한단다.'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그와 헤어진 뒤, 인야는 로그로뇨 도심의 다리를 건넜다.
'비아나(Viana)'로 가는 길은 조금 쌀쌀했고(아니 추웠고), 손이 시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산길을 내려가다가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길을 잃었다.
한참을 가는데,
'어? 이상하네! 왜, 비아나 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 하며 정신을 차려 보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겐 호재도 하나 있었는데,
마침 길 아래쪽에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있었는데, 잘 익은 무화과로 가득했다. 나무가 크기까지 해서, 인야는 절로 나오는 탄성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구나 너무 익었던 과일이 바닥에도 많이 떨어져 있는 걸로 봐서는, 주인이 없는 나무이기도 할 터라,
'야,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하면서, 인야는 아예 배낭까지 내려놓은 다음 무화과를 따먹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안타까운 건, 그렇게 잘 익고 많은 무화과였지만 따서 가져갈 수 없음이었다.
다만 몇 개라도 가져가고 싶었지만, 길을 가는 나그네에겐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모처럼(은의 루트에서 그런 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화과를 배가 터지도록 따먹을 수 있는 기회를, 길을 잃었기 때문에 맞기도 한 셈이었다.
아침부터 넉넉한 기분으로, 그렇지만 또 한참을 헤매다 제 길로 찾아왔는데, 해가 돋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은 해가 돋는데도, 어째 세상의 분위기는 쓸쓸하기만 했다.
이젠 가을도 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긴, 시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그런데 길이 이상했다. 그동안 세 번의 길을 왔을 땐 모두 아스팔트였는데, 알고 보니 흙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거꾸로 걸어서 비아나에 도착하다 보니, 도심이 보이면서 빤하게 보이던 아스팔트를 타고 들어갔었는데, 이번엔 거꾸로 걷다 보니 진짜 길도 그 얼마 떨어지지 않은 들에 있었던 것이다.
인야는 부근의 포도도 따먹으며, 역시 한가롭게 길을 갔는데, 알베르게에서 빈속으로 나왔던 자신은 이렇게 길에서 과일들로 배를 채우면서 가고 있는 게 우습기까지 했다.
가을 길의 혜택일 것이었다.
앞에서, 서서히 한두 사람씩 걷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야는 이제 '라 리오하(La Rioja)' 지방을 벗어나, '나바라(Navarra)' 지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를 지나, 거기서 '산솔(Sansol)'까지는 퍽 아름다운 길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좋아서, 그는 포도 따먹는 일밖에 없는 나그네처럼 정말 여유 있게 가을 길을 만끽하며 걸었다.
그렇게 큰 고개를 넘어가다 한 조그만 기도소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 뒤 내리막을 만났는데, 조금 가다가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한 영국인과 그룹이 되어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들 관계가 퍽 좋아 보여 좋았다.
그래서 그들과 웃어가면서 한참을 떠들다 헤어졌는데,
얼마를 걷다가 인야의 눈에, 파랗고 깨끗한 하늘이 보이면서,
'정말,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쪽빛의 하늘에,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네!' 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
왜 그렇게 갑자기 이 세상이 허무해지는지, 자신이 서글퍼지는지, 하늘색만큼이나 깊고 파란 눈물을 펑펑 쏟아버릴 것 같은 감상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얼른 감정을 추스르면서 인야는, 가능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며 머릿속을 비웠다.
그렇게 얼마를 걷다 보니 주변에 있던 포도밭의 수확하는 트랙터 소리만이 분주할 뿐, 그는 그저 기계처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뜻 생각해 보니, 그는 정말 나른한 오후 기분에 젖어 아무 생각도 없이 걷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큰일 날 뻔했다!'
그런데 정신이 들다 보니, 또 감상에 젖으려고 해서 얼른 그 옆의 포도 한 송이를 따서 입에 쑤셔넣었다.
포도는 말할 수 없이 달았다.
다음 날이었다. 대낮인데도 인야는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갈림길이 나오던데, 그중 발자국이 많은 길을 택했다. 그건 옳은 선택이어서 얼마 뒤에 제 길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부근도 포도밭이었다.
인야는 여전히 포도를 따 먹으며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조금 뚱뚱한 한국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시커멓게 그을린 건 물론 비쩍 곯아서 빈티가 줄줄 흘렀을 자신에 비해 그 여자는 뽀얀 살결에 몸집도 푸근해서 여러모로 인야 자신하고는 대조적이었다.
당연히 그녀와도 인사를 나누며 인적사항 교류도 했는데, 그녀는 외모만큼이나 푸근하고 부드럽게 인야를 대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헤어지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인야는 뭔가 그녀를 위해 해주고 싶었지만, 점심 무렵 한 한국인 젊은이를 만나 또르띨랴와 초콜릿 등을 줬기 때문에, 이 여자에겐 아무것도 줄 게 없었다. 그래서 거기 가까운 포도밭에 올라가 중간 크기의 포도송이 하나를 따주는 걸로 대신했다.
그녀도 그 훔친(?) 포도가 싫지만은 않은지, 환한 얼굴로 받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자마자 인야도 그 포도를 먹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달던지 기가 막혔다.
'아마 그녀도 이 맛을 즐기며 걸어가겠지?' 하는 생각까지는 했다.
그런데 인야는 아직도 한 자투리의 까미노 '프랑스 코스'도 남아 있고, 또 170여km의 '아라곤 코스'도 남아 있어서, 당시엔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여자가 인야가 이번 길에서 만난 한국인으론 마지막 사람이 돼버렸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