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밤
강순예
“오늘 밤에 온단다, 신 없는 아이.
고샅마다 집집마다 들어가
이 신발 저 신발 죄다 신어 보곤
맞갖은 걸 골라, 하무뭇 해낙낙
홀딱 신고 가 버리는…….”
할머니 말씀에
동생 눈 내 눈 똥그래진다.
“정, 정말요?”
“이렇게 문 앞에 체를 걸어두면
수 세기 좋아하는 그 아이,
요 촘촘한 구멍을 세다가, 세다가, 세다…,
동살이 잡힐 무렵 ‘아이코, 내 신발!’ 하며 돌아간단다.”
“밤 오면 또다시 안 오나요?”
“안 오긴, 이듬해에 또 오지!”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내다 놓았다.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우리말 뜻
섣달그믐: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고샅: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또는 골목 사이.
맞갖은맞갖다: 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는. 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
하무뭇: ‘하무뭇하다(매우 하뭇하다: 마음에 흡족하여 만족스럽다)’의 어근.
해낙낙: ‘해낙낙하다(마음이 흐뭇하여 만족한 느낌이 있다)’의 어근.
촘촘한촘촘하다: 틈이나 간격이 매우 좁거나 작은. 틈이나 간격이 매우 좁거나 작다.
동살: 새벽에 동이 틀 때 비치는 햇살.
이듬해: 바로 다음의 해.
또 다른 우리말 뜻
동살(이) 잡히다: 동이 터서 훤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다.
우리말 동시 풀이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섣달그믐 밤,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꼭 맞는 것을 가져간다는 귀신이 있다. 바로 ‘야광귀’라 불리는 신발 귀신이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리 세시 풍속을 담은 이 시에는 할머니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는 아이들 모습을 정겹게 담았다.
이 시에서 신발 귀신이 제 발에 꼭 맞는 신을 찾은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하무뭇’과 ‘해낙낙’을 썼다.
신발 귀신이 하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동이 트기 전. 체 구멍 하나하나를 세고 또 세다가, 결국 다음 해에 또다시 신을 찾으러 온다는 신발 귀신. 신을 뺏기지 않으려면, 신발 귀신이 들어올 수 없는 안방에 신을 숨겨 두거나, 밤을 하얗게 새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