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선교 여왕' 김순덕(헬레나)씨
"하느님 만나면 이렇게 행복한데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한 사람이라도 더 전교하려면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며 성당을 나서는 김순덕씨.
마산교구에서 '선교의 여왕'으로 통하는 김순덕(헬레나, 62, 창원 명서동본당)씨. 지난해 교구 복음화대상 냉담교우 회두부문 대상 및 선교부문 최우수상을 동시 수상하는 등 해마다 1ㆍ2위를 독차지해왔다. 김씨가 그동안 전교한 영세자와 냉담교우가 수백 명에 이른다. 대녀도 100명 가까이 된다. 투철한 선교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씨의 선교방식은 '생활 밀착형'. 식당에 가도, 병원에 가도,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가도 만나는 사람에게 늘 "성당에 다닐 마음이 없느냐"는 말을 건넨다. 종교가 없다거나 냉담 중이라고 하면 일단 전화번호를 받아 수첩에 적어둔다. 그가 가방에 넣어 다니는 노트에는 선교 대상자와 냉담교우 100여 명의 이름ㆍ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일단 '점찍은' 사람은 그야말로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간다.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특유의 친근감으로 다가가 다른 신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사람도 여러 명 성당으로 인도했다. 냉담교우도 결코 그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지요. 제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고해성사를 자주 보고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제 자신을 성찰하다보니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게 됐어요."
한 번이라도 더 만나려고 선교 대상자가 운영하는 식당이나 상점의 단골이 되는 것은 기본. 집안일을 돕고 애를 봐주거나 일부러 밥을 사기도 한다.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될 때까지 지속적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주님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교한 후에도 예비신자교리와 주일미사에 동행하면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후관리 없이는 쉽게 냉담교우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려서 세례를 받았지만 저도 그저 그런 미지근한 신자였어요. 스물넷에 결핵에 걸려 13년을 투병하면서 한쪽 폐를 들어내야 할 정도로 악화돼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았지요. 1986년 12월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하느님을 버리고 천리교 기도원을 찾아가려던 찰나에 거짓말처럼 성령을 체험했어요. 저를 괴롭히던 병마도 기적적으로 서서히 사라졌고요."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김씨는 화장품 총판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 사랑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틈나는 대로 선교 대상자와 냉담교우를 찾아 다녔다. 병에 걸려 '차마 죽지 못해 산다'고 했던 그가 이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전교하고 냉담교우를 모셔오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가 됐다.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결국 장사를 접고 온전히 냉담교우 회두와 선교에 투신했어요. 지금은 월 35만원씩 나오는 장애인 생활보조금과 전국으로 선교강의를 다니며 받은 강의료를 아껴서 활동비로 써요. 선교를 위해서라면 밥값으로 수십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아요."
김씨가 속한 '공경하올 어머니' 쁘레시디움(단장 김행숙) 단원들도 모두 그의 인도로 냉담을 풀거나 세례를 받은 이들이다. 이들이 지금은 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단원들 역시 사비를 털어 선교 대상자와 냉담교우를 방문하고, 몸이 불편한 입교자를 매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성당에 모셔온다. 2010년에는 김씨와 별도로 교구 복음화대상 단체부문 선교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느님 만나면 행복한데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힘이 다할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전교하고 냉담교우를 회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김씨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하느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며 선교 대상자를 만나러 나섰다
첫댓글 주님! 헬레나 자매님의 걸음 걸음마다 축복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