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1칙] 전생에 지은 업인과 현전하는 연분을 알면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자기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아 원망하지 않고 남 탓하지 않는다
천하의 일은 모두 인연이 있다. 그 일의 성공 여부는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 비록 성패를 좌우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실제 권력은 여전히 나의 전생에 지은 업인(前因)에 있지, 그의 현전하는 연분 상에 있지 않다.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깨닫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자기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 탓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전후인과를 안다면 난처함과 순조로움, 획득함과 상실이 모두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니, 어떠한 역경을 만날지라도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아래로는 남 탓하지 말라. 다만 자신에게 덕행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뿐 다른 사람과 하늘에서 어떤 과실도 보지 말라.) (그래서 《중용》에 이르길 ), “(군자는)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행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지 않음이 없다.”
【역주】 속세를 간파하고 인과의 이치를 환히 밝혀서 반드시 집착하지 말고, 마음은 인연에 수순할 수 있어야 하며, 원망과 탓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법은 번뇌하는 마음을 끊어 없애고 원망하는 마음을 평온히 하는 가장 빠른 속도의 가장 좋은 방편의 수행법(修法)이다. 그것을 수행법으로 여기는 연유는 구체적인 인과의 실정은 아마 결코 모두 이렇지 않을 것이고, 너무 맹목적으로 곧 「숙명론」의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문제에 대한 지견에 속한다. 오탁악세의 지금을 살펴보니, 악인이 횡행하고 법을 어기고 기강을 어지럽힘이 어느 것이나 다 그것이다.
피해자 자신의 「전생에 저지른 업인(前因)」이 모두 나쁘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과는 삼세에 통하나니, 숙명론은 금생에 받는 과보를 전생에 저지른 업인에 미루고, 금생에 받는 과보는 또한 내세에 받을 과보의 업인일 수 있음을 모른다. 독이 든 분유를 유통하는 악인 ‘갑’이 수만 내지 수십만의 피해자인 ‘을’에게 손해를 끼치니, 수십만 피해자인 ‘을’이 모두 자신이 전생에 저지른 업인으로 금생에 독 분유의 악과를 먹는 악보를 받는다는 말인가?
인광대사께서 여전히 세상에서 계시다면 절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필경에 삼세인과는 지극히 복잡하니, 오직 대신통의 성자만이 비로소 숙명통으로써 진실로 여실히 분간한다 말할 수 있다. 아라한조차도 전후 오백세만 관할 수 있을 뿐, 구경이 아닌 곳이 없다.
수행인의 경우 숙세인과를 분간하기 어렵기에 만약 어떤 역경을 만날지라도 빚을 갚아야 하고 업을 끝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속이 저절로 담담하고 평온해질 것이다. “(군자는)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행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스스로 답을 찾아내지 않음이 없다(素位而行 無入而不自得矣).”
[제 232칙] 문자는 세상의 지극히 귀한 보배로 글자와 종이를 소중히 여겨 복을 양성하길 권한다.
인간세상에서 덕을 이루고 재능을 이루며, 공을 세우고 사업을 일으키며, 한 가지 재능 한 가지 예능이 있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질은 모두 「문자」가 주지하는 힘에 의지해 성취할 수 있다. 「문자」는 세상의 지극히 귀한 보물이니, 범부는 성자로,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빈천한 사람은 부귀한 사람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은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고대 성현의 도맥이 천고의 세월에 전해 내려오고, 자신과 집안이 경영한 재산이 후손에게 남겨짐에 있어 문자의 힘에 기대지 않음이 없다. 만약 이 세상에 글자가 없다면 일체의 사리는 모두 성립되지 않고,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미 이러한 공력이 있다면 당연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오히려 지금 사람들은 글씨 쓴 종이를 함부로 얕보고 더럽혀 그야말로 지극히 귀한 보배를 하찮은 것과 같게 여기는 모습을 보니, 어찌 현생에서 복이 나가고 요절하여 내생에 지혜와 지식이 모자란 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과거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경서 유통은 매우 적당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대부분 손으로 사경하여 유통하니 법보를 얻기 어려움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인쇄술이 발달하고 또한 네트워크 통신기술이 선진화되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곧 유불선 경전을 열람할 수 있다. 이는 옛날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고 지금 사람이 옛날 사람보다 복보가 큰 측면이다.
정성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면 竭誠盡敬 그 경계가 묘하고 묘하고 묘하니라 妙妙妙 간절한 마음에서 나는 빛 懇心放光 그것을 아미타불이라 하느니라 是彌陀 ㅡ인광대사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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