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야니스카시’ |
코야니스카시고드프리 레지오 감독 · 1983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 발음하기조차 만만치 않은 이 말은 ’o미? 바로 호피족(미국 애리조나주 북동쪽 그랜드캐니언에 살던 인디언)의 언어로 ‘균형 잃은 삶(Life Out of Balance)’이란 뜻이다. 접미어 카시(qatsi)가 바로 인생(life), 즉 삶이다. 그럼 건축영화 코너에서 갑자기 이 어려운 말은 왜 나왔을까? 1983년에 발표된 고드프리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 개봉 당시 배우 장동건이 내레이션을 맡았던 ‘지구’(Earth·2007)와 같은 유의 다큐와 비슷한 영화이다. 당연히 보통영화가 가지고 있는 줄거리나 대사, 혹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자연의 풍광이나 도시의 이미지를 관찰자, 즉 인간의 입장에서 기록한 다큐로 어떨 땐 느려터진 슬로 모션으로, 또 좀 졸릴 만하면 긴박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패스트 모션으로 관객을 리드한다. 이런 영화는 스크린에서 보느냐, TV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영화계는 할리우드를 위시한 오락과 흥행영화가 아니면 수입 자체를 하지 않는 현실이다 보니 작품성 있는 영화는 영화관에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나라치곤 이런저런 영화제가 상당히 많아 매니아들의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하니 열심히 찾아보면 기회도 있다.(이 영화는 2003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요즘은 홈시어터가 갖추어진 집이 많으니 혹시 가능하다면 대형 스크린을 갖춘 친구 집 신세라도 지길 적극 추천한다. 뭐 그도 안 된다면야 컴퓨터 모니터든 TV든 보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과 역사적 장면들이 이어진다. 인간 군상의 삶 자체가 스토리나 출연 배우 없이 하나의 이미지로만 제시된다. 느낌은 순전히 관객의 몫. 현재도 가톨릭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감독의 의도와 상반된 느낌이 든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백인백색의 느낌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는 것조차 이런 영화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것이니까. 미니멀리즘의 거장 필립 글라스의 음악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으나 필자에겐 그다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이 영화는 다른 두 편의 영화와 더불어 ‘카시 3부작’으로 불린다. ‘포와카시’(Powaqqatsi·Life in Transformation 변형된 삶·1988)와 ‘나코이카시’(Naqoyqatsi ·Life as War 전쟁의 삶·2002)가 그것이다. 흔히 전편보다 나은 후편이 없다는 말이 있다. 거의 5년 간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들은 사람마다 평이 다르지만 필자에겐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의미와 느낌과 감동이 전해온다.
코야니스카시에 비해 좀 더 다채로운 표현방식을 가진 포와카시는 인간들의 도시와 환경 이미지를 주로 다뤘다. 나코이카시는 전편의 두 영화와 달리 컴퓨터 그래픽적 요소와 이미지의 변형을 포함했다고 해서 부정적 평을 많이 받았지만 필자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오히려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1편인 코야니스카시의 제작연도가 29년 전이니, 지금의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가 시대적 격차를 인정하는 건 생각일 뿐 눈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무튼 이 세 영화는 말보다 느낌이다. 필자 역시 여러분들의 감상의 범위와 해석의 자유를 빼앗을지 모르니 더 이상의 글은 자제해야겠다. 사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진을 수천 편 슬라이드 쇼로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딱이다.
바라카론 프릭 감독 · 1992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신의 은총’ 또는 ‘축복’이라는 의미의 ‘바라카(Baraka)’가 있다. 론 프릭(Ron Fricke) 감독이 자신의 1992년 작품에 이 단어 ‘바라카’를 썼다. ‘코야니스카시’ 당시 각본과 촬영감독을 맡았던 론 프릭 감독이 총 24개국 152개의 로케이션으로 완성한 영화이다. 70㎜ 필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 영상을 자랑한다. 이 영화에 대한 검색어를 보면 ‘위대함’ ‘신비로움’ ‘미학적’ ‘철학적’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인 만큼 놓쳐서는 안 될 영화다. 미장센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영화로 타셈 싱 감독의 ‘더 폴’(The Fall·2006) 역시 이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원래 아이맥스로 제작된 영화로 현재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있다. 까다로운 우리의 눈뿐 아니라 5.1 채널 서라운드로 오감을 만족시켜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서 소개한 ‘카시’ 시리즈 영화들처럼 대사 하나 없이 영상으로만 던져진 메시지는 필자에겐 끊임없는 질문으로 와 닿았다.
“난 어디서 살고 있을까?”
“난 왜 살고 있을까?”
론 프릭 감독의 영화도 마치 카시 3부작처럼 3편의 영화가 존재하는데, 이 영화의 전편 격인 ‘크로노스’(Chronos·1985)와, 작년 완성된 따끈따끈한 영화 ‘삼사라’(Samsara·2011)가 있다. 20년 가까이 론 프릭 감독의 새 영화 ‘삼사라’를 기다려온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처럼 필자 역시 그 기대감이 다르지 않지만 우리나라 개봉(미국은 2012년 8월 개봉)은 언감생심. 블루레이 출시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대한민국 영화 애호가들의 아픔이다.
라이프인어데이케빈 맥도날드 감독 · 2011
“지금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와 똑같은 시간에 세상 다른 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라이프 인 어 데이’(Life in a day·2011)라는 영화는 세상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수백 명의 하루를 담아낸 영상이다. 케빈 맥도날드 감독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위의 3가지 질문과 더불어 2011년 7월 24일 하루에만 촬영된 삶의 영상을 모았다. 197개국 8만여개의 영상클립은 1125편으로 추려져 하나의 영화로 탄생했고 2011년 현재 세계 곳곳의 인간 군상들이 누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미래의 후손에 건네는 타임캡술이라고 표현했다.
“이 짧은 영상들이 어떻게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길까?”
“지금 이 순간, 나의 인생은 행복한가?”
건축의 본질은, 시선을 사로잡는 기가 막힌 형태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한 번에 시선을 빼앗은 건물이 몇 년도 되지 않아 지겨워진다면? 오히려 살수록 새로운 경험과 느낌이 생겨나는 건물이 있다면? 너무 관념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바로 그 사람만이 가진 추억과 향수일 수도 있고 그 사람만이 가진 느낌일 수 있으며 그 사람만이 가진 경험일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은 건축영화로 분류한다면 가장 기초가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런 분류를 떠나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서 반드시 보셨으면 하는 영화들을 추렸다. 그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