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5년 10월 17일 후백제 창업주 견훤의 장남 신검이 왕위에 올랐다. 견훤이 죽어서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 견훤이 이복동생 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데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3개월 만에 탈출해 고려로 망명했다.
견훤은 왕건의 사실상 선봉장이 되어 자신이 건국한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1등공신 노릇을 했다. 신검은 왕좌를 11개월 만에 내놓고 처형되었다. 후백제의 어처구니없는 멸망사는 처음 듣는 사람이 “실화입니까?”라고 물을 만큼 비상식적이다.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이 시작되었다. 종신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박정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그는 이미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유신 체제는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는 체제입니다. 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자유는 일시적으로 희생할 줄도 알고, 또는 절제할 줄도 아는 슬기를 가져야만 우리는 보다 큰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예고했었다.
하지만 그는 7년 뒤인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을 받아 비상식적으로 사망했다. 벌써 18년이나 절대권력을 휘둘렀어도 죽을 당시 아직 62세에 지나지 않았다. 10월유신 단행 이후 '임금 노릇'을 즐겼지만 그 기간은 7년이었으니 ‘작은’ 연장을 노리다가 자연사라는 ‘큰’ 수명을 놓쳤던 것이다.
1967년 10월 17일에는 중국 마지막 왕조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이승을 떠났다. 기원전 221년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이래 약 2130년 동안 이어져온 황제 군주국가가 1911년 신해혁명으로 무너졌다. 신해혁명은 중국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을 수립했다.
밀려난 선통제는 일본 괴뢰 만주국 황제를 지내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범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사람들은 흔히 “명색이 황제였던 자가 어쩌면 저렇게 비상식적으로 비루할 수 있나!”라고 한탄하면서 선통제의 말년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 <마지막 황제>에 공감한다.
신검의 참담한 종말은 영화화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게 자명하다. 선통제는 그래도 ‘대청'의 마지막 황제였지만 신검은 후백제의 단명 왕에 지나지 않아 상품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견줘 박정희에게는 아마도 그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대통령'이라는 제목은 얻기 어려울 터이다. 전두환이 있는 까닭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마지막 사람’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이런저런 집착과 욕심에 빠져 비루하게 살지만 머지않아 삶의 시간과 이별한다. 그래도 신검 수준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나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으로 자부한다. 세상 대부분 사람과 비슷하게 산다고 해서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