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고
강흥구
밭에서 작업하다 연장이 필요해 찾으러 갔다.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짜증난다. 찾기를 포기하고 밭 가장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문득 군대서 무기고 보초를 설 때가 생각났다. 무기를 보관하듯 농기구 및 기타 작업 도구를 정리해둘 장소가 필요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기고를 지을 준비를 했다.
흔한 일이지만 쉽게 잊게 된다. 호미로 풀을 뽑다 밭둑을 깎으러 갔다. 낫을 찾아들고 한참 동안을 깎다가 다시 돌아와 풀을 뽑으려고 호미를 찾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다른 호미를 가져다 뽑기 시작했다. 몇 포기 뽑아나갔는데 풀 속에서 호미에 걸려 나온다. 이렇게 조금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때그때 보관할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멧돼지 고라니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구가 동원돼야 한다. 그런데 꼭 필요할 때 찾으면 없다. 여기에 둔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면 없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작업을 마치면 그때야 보인다. 어처구니가 없다. 보관소를 마련하여 제자리에 보관하기로 했다.
내 몸을 관리하는 데도 필요하다. 어느 해부터인가 우리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었다. 미세먼지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착용했던 마스크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실내, 외에서 마스크가 필수가 되었다. 마스크가 내 몸을 지키는 무기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매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최고의 백신이다.’라며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에 부닥쳤다. 그러므로 마스크는 ‘코로나 19’로부터 내 몸을 지켜주는 무기가 된 것이다. 집집마다 진열장 안에 마스크가 가득하다.
우리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보호가 필요하다. 적으로부터, 치한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나를 지키며 살아가려면 마음속에 독한 무기가 필요하다. 당하고만은 살 수 없다. 때로는 선제공격도 해야 하고, 멀리 피신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보호하며 살아가려면 마음속에 무기를 갖추고 평소엔 무기고에 잘 보관하며 내보이지 않고 살아야 한다.
무기고를 짓기 시작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 벽엔 송판을 붙여 못을 박고 괭이, 삽, 호미 등 농사용 도구를 걸었다. 그 옆에는 몽키, 톱, 망치 등 작업 도구를 걸었다. 아래쪽엔 수납장도 설치했다. 농약과 엔진오일 휘발유 등 위험성 있는 농자재를 보관하기 위해서다. 전동 농약 살포기며 비료 퇴비, 관리기 로터리 발까지 정리했고 유해 조수 퇴치용 가시 철망도 보기 좋게 진열했다.
눈 감고도 찾을 수 있게 됐다. 필요로 하는 도구나 재료 모두 한 번에 찾아낸다. 작업을 하다 다른 작업을 하게 되면, 사용했던 연장을 제자리에 걸어둔다. 바로 다음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 들고 이동한다. 시간도 절약되고 작업 능률도 향상된다.
이젠 어떠한 전투도 승리할 수 있게 됐다.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나만의 무기고를 바라보며 마음 뿌듯함을 느꼈다. 어떠한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즉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모든 기계 기구가 한눈에 들어오니 더 필요로 하는 것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러다보니 자꾸 사들이게 된다. 꼭 필요로 하지 않는 도구까지 사게 된다. 욕심이 과해지기 때문이다. 전투력을 향상하려면 무기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신형 무기를 계속 도입한다. 어느새 나의 무기고는 더 이상 다른 무기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른데.
집이나 밭이나 무기고를 갖추고 있어 든든하다. ‘코로나 19’는 마스크가, 멧돼지와 논밭 관리는 농사 전용 무기고가 안전하게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깊은 밤. 군부대에서 무기고 근무를 하며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 무기가 없다면 무기고가 필요 없고, 전쟁도 사라질 거라고. 그랬던 내가 지금 무기고를 짓고 있다. 전쟁용이 아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첫댓글 ㅎㅎ 수고하셨어요 강선생님. 그 무기고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무기고>인 만큼 열배백배 더 행복하시기를요^^
코로나19로 내 몸을 지키는 마스크가 무기고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모두 무기고를 잘 갖추고 살아야겠습니다.
모두가 지녀야할 무기고에 대해 생각하고 무기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강선생님 댁엔 어떤 침입자도 어른거리지 못할 겁니다.
강선생님처럼 튼튼하고 철저한 문지기가 있으니...
발상의 전환이 좋은 글로 연결이 되었네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정리를 잘 해놓으면 보기에도 좋지요. 효율성도 있고
마스크와 무기고라~~ 둘 다 버리고 싶은 단어를 함께하며 살아가고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모두가 지녀야할 무기고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해 주시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