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삶을 저가화할 것인가
이승원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2007년, 흥미로운 책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된다. 경제부 기자 출신인 세라 본조르니가 쓴 <A Year without Made in China: one family’s true life adventure in the global economy>(중국산 없는 한 해: 글로벌 경제에서 한 가족의 살아남기 실화)이다. 제목을 읽고 어떤 상상이 가능했다면, 이 책이 묘사하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중국산 제품 없이 1년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시도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결론은 ‘중국산 제품 없는 정상적인 삶은 힘들다’는 것이다.
같은 해에 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가 방영되었다. 한국·일본·미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한 달간 중국산 제품 없이 살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 세 가정 모두 일주일도 채 안 되어서 중국산과 함께하는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와 유선전화기, 컴퓨터와 TV의 사용 불능은 애교 수준이다. 에어컨이 없어 아이가 탈수증에 걸리고, 중국산뿐인 전구로 인해 그들의 밤은 암흑이었다. 모든 학용품과 장난감이 중국산인 아이 방은 아예 폐쇄해버렸고, 비 오는 날 아이들은 우산 대신 비닐을 쓰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통한 ‘대국굴기’
원산지나 생산지가 중국이거나 부가재료 50% 이상이 중국산 제품이면 ‘메이드 인 차이나’이다. 2007년 중국산 우산의 국내 점유율은 80% 수준이었고, 대부분의 중저가 제품 중 50% 이상이 중국산이었다. 아직 먹을거리는 언급하지 않은 상태다. 중국산 찐 쌀이 이미 우리의 한 끼 이상을 책임지고 있고, 신토불이는 감사와 사치가 돼가고 있다. 중국은 단지 저임금에 기반을 둔 완성품뿐만 아니라 부품 생산과 저가의 식자재 생산까지 도맡으면서 명실상부 새로운 성장주의식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일어섬, 중국 <CCTV>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제목)를 이뤄내고 있다.
13억 대국의 힘에 잠시 놀랄 뿐 더 이상의 고민은 이어지지 않는다. 저임금과 소비시장이 국적보다 중요한 초국적 기업들은 한동안 중국의 파트너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국산’은 사치가 돼버린 현실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는 99%의 소비욕망을 채우는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성장주의와 소비욕망이 점차 사회적 적대로 악화되는 위기의 자본주의를 해결해줄 진정한 해법인가? 문제는 바로 저가 제품으로 인해 폭발해버린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양극화로 억제되었던 대다수 인민들의 소비욕망 ‘구조’이다.
중국발 저가 음식, 저가 소비제품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대중의 소비욕망 구조를 현실화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해진 모방 생활은 대다수 인민이 경제적 차이를 더 이상 문화적 차이를 만드는 장벽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적대감을 약화시킨다. 저가 제품의 확산이 임금 인상 욕구를 상쇄시키는 듯하고, 저비용으로 접근 가능한 컴퓨터, 스마트폰, 각종 O/A 시스템이 노동강도를 줄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여러 측면에서 저물가 정책은 인민의 삶뿐만 아니라, 통치의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이런 삶의 양식은 긍정적일 수 없다.
첫째, 현재 우리가 접근하는 대부분의 중국산 저가 제품들은 소비욕망의 한 부분은 일시적으로 채울 수 있지만 고통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주택, 교육, 의료, 교통, 에너지와 같은 필수적 자원과 제품이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다가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한 가정 제품의 70~80%를 차지한다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주택과 교육비, 그리고 단 한 번에 가정을 파멸시킬 수 있는 고액 의료수가는 중국산으로 대처할 수 없다. ‘메이드 인 차이나’ 의류와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잠시 즐겁게 해주고, 저가의 전자제품으로 여가는 보낼 수 있으나, 이것이 우리 삶에서 고통의 본질적 원인은 결코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재래시장에서 이제는 별 다른 느낌 없이 다가오는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우리의 소비욕망을 실현하는 착각에 빠져들수록,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현실의 잔인함은 점점 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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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1998-루이즈 부르주아 |
저가 제품, 소비욕망, 그리고 성장주의
둘째, 저가로 접근 가능한 하이테크놀로지는 오히려 노동시간을 24시간 전체로 분산시키면서 사실상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다. 물론 하이테크놀로지의 높아진 접근 가능성은 이른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혁명을 가능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공간적 팬옵틱 노동통제를 만들고 있다. 자료 전송의 확인과 은행 업무의 24시간 가능성은 작업의 효율성은 높이나 여가와 쉼은 철저히 붕괴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통신비와 각종 모바일 상품과 액세서리 구입 등은 소비를 위한 소비주의를 확산시키면서 소비주의에 감염된 자들이 심화된 노동강도에 더욱 순응하도록 만들고 있다. 모든 자원을 상품화하려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저가의 소비상품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세상에서 소비주의가 유지되는 한 성장주의는 지지받을 수밖에 없다. 상품 소비의 조건은 성장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경험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역설적으로 저가 상품으로 소비주의를 유지하면서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우리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성장주의를 맹신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든 제품이 성장주의의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핵심이 되는 역사적 해프닝이 진행되는 것이다.
긴장감 없는 한-중 FTA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언급된 이후 중국과의 FTA 협상을 위해 필요한 국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핵심적 국내 절차는 ‘경제적 효과 및 환경영향평가 연구 보고’와 국내 여론 수렴을 위한 ‘토론회’ 개최이다. 국무총리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소(KIEP)는 설 연휴 이후 각종 연구보고서 작성과 토론회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원론적 이야기이다. 기존 FTA 보고서와 토론회에서 그랬듯이, 언급되는 내용은 대부분 무역량 증대, 좀더 저렴한 중국산 제품 구입, 기업의 수출량 증대이다. 국내 중저가 기업, 특히 운송·농수산업·가공식품 관련 기업과 산업이 어려움을 겪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득이다.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에 일조할 것이라는 말 또한 빠지지 않는다. 이를 이른바 보수세력은 지지할 것이고, 진보세력은 협상전략, 절차상의 결함, 피해산업 대책 등을 중심으로 문제제기할 것이다.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 DDA)와 한-미 FTA 협상을 ‘시청’한 우리에게 한-중 FTA가 가져다주는 새로움은 경제적 효과, 정치적 갈등에서 그리 크지 않다. 현실을 살아가는 대다수 인민은 걱정하다가도 막상 더 싸진 저가 상품을 통해 자신의 소비욕망을 실현하려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더욱 감각적인 소비 행태 속에서 가족과 이웃인 농어민, 중소기업인, 노동자들이 쓰러지더라도 그 또한 스펙터클한 하나의 소비대상으로 취급해버릴 것이다. 적어도 여전히 소비주의가 유지되고, 이를 위해 성장주의가 이 사회의 신화이자 미래로 받아들여진다면 말이다.
통치담론으로서 FTA와 그 주변인들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조차 글과 거리행진을 통해 박정희의 쿠데타를 4월혁명의 완성으로 받아들였다. 박정희는 5·16 담화문을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반공주의에서 업그레이드된 한-미 동맹을 4월혁명 이후 완성해야 할 이 사회의 핵심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경제성장은 반공주의의 실질적 지표이자 민주주의의 선결조건이었고, 반공민주주의 시민들을 살찌우는 ‘밥’의 상징이었다. 장면 정권의 무능력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박정희의 한-미 동맹은 그 보증서였다. 민주주의, 경제성장, 한-미 동맹이라는 숙명의 삼각구도는 이후 한국 통치의 전형적 담론이 되었다. 스스로를 이전 정권과 다르다고 한 1997년 이후 10년간의 통치세력들도 이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당시 한-미 FTA 협상 추진은 자신들이 이른바 ‘민주주의’ 세력일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도 추진하는 한국의 전통 보수세력의 일원이며, 따라서 통치세력으로서 큰 결격 사유가 없음을 강변하는 위장전술이었다. 2008년 복원된 보수정권이 한-미 FTA를 결말지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박정희가 시작한 한국 보수의 통치담론이 반세기 이후 제도적 완결판으로 부상한 것만큼 그의 딸에게 큰 유산은 없을 것이다.
난해하게도 성장주의를 신자유주의로 한 단계 올려놓은 지난 10년 정권의 패족들이 결사적으로 추진했던 한-미 FTA를 이제 와서 반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역진방지조항’이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같은 것이 전혀 새롭게 추가된 것이 아님에도 자신들이 이미 합의한 이런 독소조항 때문에 현 정권의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성 같지 않다. 집권 시기 한국의 보수적 통치세력의 일원이고자 했던 그들이 뭔가 차이를 드러내고 싶은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한-미 FTA 비판은 적과의 차이가 아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약삭빠른 부정이 되고 말았다. 이와는 다르지만, 한-미 FTA를 반대하던 세력 중 일부는 자신과 손잡은 한-미 FTA 추진세력의 눈치 보랴, 중국의 눈치 보랴, 결국 과거처럼 FTA 자체에 대한 전면 반대보다는 차기 정권에서 한-중 FTA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발걸음을 뒤로 하고 있다.
대안 철학과 대안 세계에 대한 상상
FTA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조삼모사처럼 바뀌어가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판에서 과연 그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FTA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신뢰가 실릴 수 있을까? 저가 제품에 대한 접근이 주택, 의료, 교육, 에너지 같은 삶에 필수적 자원으로까지 확산되지 않고, 값싼 노동과 환경 파괴를 통한 손쉬운 방식의 신자유주의·성장주의 모델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FTA에 대한 찬반론은 히치콕 감독의 맥거핀(1)과 폭탄가방(2)처럼 우리에게 불필요한 서스펜스만 제공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가방과 같은 한-중 FTA가 정치인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의 이해갈등으로 가기 위한 안내장치에 불과한 맥거핀에 불과할지 모른다. 당선과 재집권을 위해서 현재 정치인들에게는 FTA뿐만 아니라 복지, 인권, 평화 모두가 맥거핀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맥거핀도 폭탄가방도 되지 않기 위해서는 FTA에 대한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세계의 상과 그 접근 방식에 대한 구체적 비전과 전략이 제시돼야 한다. 그 비전과 전략은 적어도 성장주의와 소비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