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과 자는 자춘(子春).
아버지는 도조(度祖) 춘(椿)이며 어머니는 알동백호(斡東百戶) 박광(朴光)의 딸이다.
부인은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이춘이 죽자
박씨 소생의 아들들과
후처인 조씨 소생의 아들들 간에
관직 세습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겼는데,
이때 형과 함께 이주민인 박씨세력의 지원을 받아
본래의 부원(附元) 세력인 조씨가를 물리치고
원나라 천호(千戶)직을 습직했다.
그러나 원나라에서
원주민과 이주민을 분리·차별하는 3성조마호계(三省照磨戶計)를 작성하려 하자,
1355년(공민왕 4)
반원정책을 취하던 공민왕을 만나
고려로 전향할 뜻을 표하고
소부윤(少府尹)의 벼슬을 받았다.
1356년
쌍성총관부를 공격한 밀직부사 유인우(柳仁雨)에 내응함으로써
고려가 99년 만에 이 지역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대중대부사복경(大中大夫司僕卿)이 되고
저택을 하사받아 개경(開京)에 머물렀다.
이후 동북면의 안정을 위해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되어
영흥(永興)으로 돌아갔으나 4년 만에 병사했다.
그뒤 아들 이성계가 직위를 세습하고
동북면의 토착적 기반을 이용하여
조선 건국의 기반을 닦았다.
1394년(태조 3)
환왕(桓王)으로 추존되었고,
1411년(태종 11) 환조로 추존되었다.
능은 함흥에 있는 정릉(定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