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혼의 동반자, 동자석

[원우]

영혼의 동반자, 동자석

2010년 05월 13일 (목) 09:05:52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에는 해마다 국내외 관광객 오백여만 명이 찾아들고 있다. 이러한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석상(石像)이 있으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이다. 돌하르방은 관아의 성문 앞에 세워졌던 수호(守護) 경계(境界) 금기(禁忌) 등의 기능을 가졌던 석상으로 모두 46기가 있다. 제주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상징물이기도 한 이 석상은 제주도기념물 제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 

  ▲ 무덤을 수호하고 망자의 시중을 들어준다는 동자석 한 쌍이 무덤 앞 좌우에 서있다.

제주에는 이 돌하르방처럼 사랑받는 또 다른 석상이 있다. 무덤을 수호하고 망자의 시중을 들어준다는 동자석이 그것이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총각처럼 뒤로 땋아 내리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마주한 다소곳한 모습이다. 대개는 한 쌍이 무덤 앞 좌우에 서있으나 하나만 있는 무덤도 있다.

• 

  ▲ 제주에서는 망자를 땅에 묻고 봉분을 세우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봉분 주위에 담을 두르는 일이다.

제주에서는 망자를 땅에 묻고 봉분을 세우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봉분 주위에 담을 두르는 일이다. 비석이나 상석, 동자석 등의 석물을 마련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예전에는 말이나 소를 야산에 방목하였기에 마소가 조상의 무덤에 올라가 풀을 뜯거나 발길질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봄이 되면 진드기 알이나 가축에 해로운 벌레들을 죽이기 위해 풀밭에 들불[野火]을 놓았다. 무덤에 담을 두르지 않으면 불길이 무덤에도 옮아붙었으므로 이에 대한 방지책인 셈이었다.

• 

  ▲ 조상 숭배가 여느 지역보다 강한 제주에서는 무덤에 산담을 두르고 나면 비석과 더불어 동자석을 만들어 세웠다.

또 하나의 까닭은 묘역을 침범 당했기 때문이었다. 추석 무렵이 다가와 벌초하러 가보면 다른 무덤이 바싹 붙어서 조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애기무덤이 생겨있기도 하여 묘소에 담을 두르는 ‘산담’은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었다.

조상 숭배가 여느 지역보다 강한 제주에서는 무덤에 산담을 두르고 나면 비석과 더불어 동자석을 만들어 세웠다. 그 기원이 언제인지는 아직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제주동자석연구소 이창훈 소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 1670년의 것이다. 비석에 적힌 강희 경술(康熙庚戌) 명을 근거로 해서 추정한 것이다.

▲ 동자석의 형태를 보면 얼굴이 거의 3/1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두 손을 가슴에 경건히 모으고 있는 몸의 상체 부분이다. 동자석의 형태를 보면 얼굴이 거의 3/1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두 손을 가슴에 경건히 모으고 있는 몸의 상체 부분이다. 대부분의 동자석 얼굴은 유난히 코를 강조하여 양각으로, 눈과 입은 명료한 선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동자석 중에는 코가 성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들 낳기를 소원하는 여성들이 코를 깎아 가루를 내어 먹으면 아들을 얻게 된다는 속신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동자석 중에는 조선시대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신선도에 등장하는 동자의 모습을 닮은 형태도 더러 있다. 머리모양은 쌍상투를 하고 있고 복식은 품이 넉넉하고 소매에 주름이 많은 형태이며 무덤을 향하여 두 손에 술잔을 받쳐 올리고 있다. 무덤의 주인이 신선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동자석은 주로 제주돌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무틱틱한 적갈색 현무암이나 비교적 재질이 치밀한 짙은 회색의 조면암,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어진 검정빛 용암석으로 제작되어 있어 제주만의 빛깔을 소박하게 뿜어낸다. 크기는 키 높이가 30cm에서 1미터 정도이며 누가 보더라도 무덤을 위압하기보다는 무덤을 지켜주고 시중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동자석들의 두 손에 받쳐 들고 있는 지물(持物)의 다양함과 그 상징성이다. 끝이 날카로운 창과 같은 것을 갖고 있는가 하면 무속(巫俗)에서 풍운조화를 부릴 때 신이 사용하는 부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청정무구를 상징하는 연꽃, 영혼의 자유를 상징하는 새, 신(神)의 음료인 술이 들어 있는 술병과 잔, 영원한 회귀의 원형(圓形) 고리 등등, 동자석들은 저마다 다른 상징물을 가지고 서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동자석의 지물에는 제주사람들의 내세관(來世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조상의 무덤에 영혼의 동반자로서 세워놓은 동자석의 표정들은 한결같이 속세의 희노애락을 초월한 무상무념(無常無念)을 나타내고 있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안타까운 것은 제주의 동자석이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도난, 외부로 반출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호와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정원의 장식물로 이용하기 위해 동자석 중에서도 뛰어난 조형미를 가진 것들을 가져갔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거의 무차별적으로, 조형미에 상관없이 동자석은 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비교적 마을에서 가까운 무덤의 것이 먼저 도난 되었으며 지금은 깊은 산속의 것들도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남의 조상 무덤의 수호신상을 훔치는 것은 문화재 도굴범과 같은 행위이다. 그런 동자석을 비싼 돈을 치루고 사다가 정원을 장식하는 호사가의 취미도 뭔가 잘못된 것이다. 동자석이 가장 제대로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는 자리일 것이다. 저 남향받이 산기슭 무덤 앞이야말로 동자석이 있어야할 자리가 아니겠는가. 하루속히 동자석의 수난이 불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김순이(제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사진/현명자(도정신문 편집위원)>